세대를 초월한 방패
2021년 기준 한국 나이로 44살인 부폰은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약 중입니다. 골키퍼가 다른 포지션에 비해 평균 은퇴 시점이 늦다는 점을 고려해도 상당히 독보적인 기록인데요. 1995년 17살의 어린 나이로 프로에 데뷔한 그는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최후방에서 골문을 든든히 지켜왔습니다. 주전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기에서도 후보 이상의 역할로 존재감을 발휘하다가 다시금 선택을 받고 있죠.
최고 수준의 자기관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40대 중반의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부폰은 평범한 선수가 아니라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수준의 골키퍼였고요. 커리어 대부분을 수호신으로 맹활약했습니다. 2021년 2월에는 소속팀과 국가대표팀 경기를 합쳐 1,100경기 출전을 달성했고, 조국을 대표해서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176경기에 출전했죠.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기록이며 자타가 공인하는 전설입니다.
오죽하면 동료나 상대로 만났던 선수들의 아들과도 발을 맞추고 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축구계에서 보기 드문 인연인데요. 파리 생제르망 시절 동료였던 티모시 웨아는 과거 상대했던 조지 웨아의 아들이었고, 유벤투스에서 같이 뛰었던 릴리앙 튀랑의 아들인 마르쿠스 튀랑과 맞붙기도 했습니다. 아주리 군단 시절 3년 동안 함께한 엔리코 키에사의 아들인 페데리코 키에사가 팀에 합류하며 특별한 인연을 추가했죠.
훈련 영상도 덩달아 화제가 됐는데요. 영상 속 부폰은 불혹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반사신경을 연이어 선보였습니다. 최근에는 본인의 SNS를 통해 직접 영상을 올리기도 했죠. 부폰의 아들로 추정되는 어린 소년이 공을 던지면 부폰이 점프해 공을 잡고 그대로 수영장에 빠집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업로드 시점인데요. 소속팀 유벤투스가 우승을 차지하며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얻은 휴가 기간 중이었습니다. 무려 9연패라는 대기록에도 부폰은 기본에 집중하며 훈련에 열중한 셈이죠.
부폰이 비록 원클럽맨은 아니지만, 20년 가까운 시간을 유벤투스에서 보냈습니다. 팀의 우승부터 강등까지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 겪은 산증인이었죠. 2018년 여름에 파리 생제르망 유니폼을 입었으나 1년 만에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지금까지 선수로 활약 중입니다. 유벤투스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는데 부폰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합니다. 방송을 보면 부폰의 마음가짐과 리더십, 매너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축구선수들이 금연과 금주를 하지만, 부폰은 의도치 않게 흡연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습니다. 와인도 굉장히 좋아해 개인 소유의 양조장이 있을 정도였죠. 활동량이 다른 포지션에 비해 적은 골키퍼라고 하더라도 다소 의아할 수 있는데요. 부폰 자기관리의 핵심은 믿음에 무게가 실립니다.
처음부터 부폰의 경력이 골키퍼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드필더로 뛰던 그는 골키퍼로 전향하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죠. 유소년 무대를 평정한 부폰은 바로 성인 무대로 향했고, 쟁쟁한 선수를 상대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이탈리아 축구 리그는 인기가 높지만, 당시 세리에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스타들의 집합소였습니다. 부폰은 상대 공격수의 명성에 주눅 드는 법이 없었고, 기량까지 날로 발전했습니다. 유벤투스가 부폰을 원했는데 당시 이적료는 5,300만 유로로 골키퍼 몸값 중 단연 최고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속 부폰은 습관적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되새기곤 합니다. 자신을 믿고, 꿈을 향해 나아갔기에 열매를 맺을 수 있었죠. 놀라운 성적을 얻기 위한 필수적인 덕목으로 자신감을 꼽았는데요. 나이가 들면 하락세가 찾아온다지만, 자신은 그러한 통념을 믿지 않는다며 남다른 클라스를 자랑했죠. 자기의 감각들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믿지 않았기에 누구보다 롱런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보여준 결실은 실로 대단했는데요. 골키퍼로서 온갖 명예로운 기록을 독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죠. 최장 시간 무실점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90분의 경기 시간을 생각하면 부폰이 세운 974분은 10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한 셈이네요. 2016년 3월부터 2개월간 단 한 골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2011-12시즌에는 38경기를 치르면서 무패로 우승하는 금자탑도 쌓았죠. 무엇보다 부폰의 역할이 돋보였는데 35경기에 출전해 무려 21경기나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유벤투스에서 함께 골문을 지켰던 알렉스 마닝거는 부폰을 향해 교과서 같은 선수라며 추켜세웠습니다. 심지어 자기보다 한 살 어리지만, 롤모델로 꼽을 만큼 존경심을 표했고요. 골키퍼 포지션을 놓고 치열하게 주전 경쟁을 벌였던 사이인데도 말이죠. 역대 최고의 골키퍼이자 메시, 호날두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부폰을 벤치로 밀어내고 주전으로 뛰는 슈체스니 역시 그와 함께 훈련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자기가 세계 최고인 이유는 부폰이 자신의 백업이라며 농담도 남겼고요.
축구선수로서 거의 모든 대회의 우승을 차지한 그에게 딱 하나 없는 타이틀이 빅이어입니다. 바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인데요. 예선전부터 토너먼트까지 신들린 선방을 펼치다가도 결승전에서 고배를 마셨습니다. 준우승만 3회에 그칠 정도로 유독 인연이 아니었죠. 2021년에도 16강에서 만난 포르투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21년 여름 파르마로 이적하며 2021-22시즌은 2부 리그에서 맞이하게 됐습니다. 2년 계약을 맺으며 당장 다음 시즌은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수 없게 됐죠. 승격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은 높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의 염원대로 챔피언스리그에서 부폰의 활약을 다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