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멈춘 영웅
축구팬 사이에서 유독 칭송받는 축구선수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2018년 은퇴한 드록바인데요. 본격적인 이름을 알린 건 역시나 첼시의 유니폼을 입은 후였죠. 마르세유 시절 보여준 맹활약 덕분에 당시 무리뉴가 이끄는 첼시로 이적합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입단 초기에는 눈에 띄지 않는 활약에 비판도 받았지만, 이내 적응을 끝내며 리그 최고 수준의 공격수로 성장했고요. 점점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최전방을 든든히 책임졌고, 팀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첼시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는 선수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리뉴 감독이 부임하며 시작된 첼시의 황금기에 크게 일조했거든요. 유독 중요한 경기에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면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숙원이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드록바의 머리와 발끝에서 비롯됐었죠. 바이에른 뮌헨에게 리드를 내주었으나 동점골에 이어 승부차기까지 침착하게 성공시켰고요.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는데요. 2004년 첼시에 입단한 드록바는 부적응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첼시를 떠나려고 했었습니다. 자신을 굳게 믿어주던 무리뉴 감독의 경질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요. 특히 스콜라리와 궁합이 좋지 않았습니다. 소속팀 역시 동반 부진에 빠지며 히딩크가 소방수로 투입됐죠. 다시금 부활의 조짐을 보였는데요. 힘들었던 시절 동료였던 램파드가 드록바에게 남아달라고 부탁까지 합니다. 나중에 함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자고 말해준 것이 마음을 움직였죠.
이후의 커리어 역시 박수받아 마땅했습니다. 중국과 터키를 거쳐 다시 첼시로 복귀한 그는 조커로 나와 쏠쏠한 활약을 펼쳤죠. 다시 첼시로 복귀했을 때의 감독은 드록바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무리뉴였습니다. 무리뉴 역시 드록바와 함께라면 전쟁에도 나갈 수 있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었고요. 고령에 접어든 자신을 원하는 이유가 인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여전히 좋은 몸놀림을 선보일 수 있다고 말해주어 고민 없이 스탬포드 브릿지로 향했습니다.
첼시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입증한 후에 미국으로 날아간 드록바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합니다. 1부 리그를 거쳤다가 돌연 2부 리그에서 선수 겸 구단주의 길을 택했거든요. 이는 축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선수로서 지금껏 쌓아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하는 동시에 구단주로서도 새로운 감정과 보람을 느껴 선택한 길이었죠.
마흔 살의 나이에 은퇴를 발표하며 20년이 넘는 기나긴 여정을 끝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승컵이 걸린 경기였는데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죠. 정작 드록바 본인은 주변에서 부담을 주지 않아 편안한 마음으로 은퇴할 수 있었다고 밝혔고요. 다행히 금방 축구계로 돌아왔습니다. 2019년 자신이 가장 오래 또 좋은 활약을 펼쳤던 첼시의 앰버서더로 임명되며 활동 중이죠. 나아가 코치로 복귀한다는 소문까지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조국인 코트디부아르 축구대표팀에서도 새로운 획을 그었는데요. 비교적 이른 나이였던 2002년부터 발탁되며 주요 득점 자원으로 자리매김합니다. 20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결정적인 패널티킥 실축도 있었지만, 월드컵에 진출하기까지 지대한 공헌을 했거든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끝으로 은퇴한 그의 기록은 104경기 65골이었습니다. 104경기는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에서 조코라와 콜로 투레에 이은 세 번째 기록이고, 65골은 최다 득점이었죠.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중에 전쟁을 멈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때는 독일 월드컵 진출을 위한 예선이 한창이던 2005년 10월이었죠. 월드컵과 인연이 없던 코트디부아르는 일명 죽음의 조에 속했으나 의외로 선전하며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첼시에서 주가를 높이던 드록바도 주장 완장을 차며 핵심으로 활약 중이었고요. 수단과의 최종 라운드에서 승리하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룹니다.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돌연 드록바와 동료들은 카메라를 향해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조국과 국민에게 호소하기 시작하죠.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5년이 넘도록 내전이 진행 중이었거든요. 정부군이 남부, 반군이 북부를 장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국토는 폐허가 되었으며 국민 모두 고난의 늪에 빠졌었죠. 월드컵 진출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드록바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코트디부아르의 모든 국민 여러분, 우리는 오늘 여러분께 코트디부아르가 함께 같은 목표를 위해 뛰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월드컵 진출이라는 목표 말입니다. 우리는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나라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지금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풍족한 나라인 우리가 전쟁으로 인해 이렇게 갈라질 수는 없습니다. 제발,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투표를 해주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점점 더 나아질 것입니다.”
굉장히 호소력 짙고, 진심이 느껴지지 않나요? 다행히 드록바의 마음이 코트디부아르를 움직였습니다. TV를 통해 수차례 반복해서 방송됐고, 꿈과도 같은 일이 펼쳐지죠. 실제로 일주일 동안 내전을 멈췄거든요. 나아가 2007년에는 길고 길었던 내전이 아예 종식하는 겹경사까지 이룹니다.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축구선수 신분으로 달성한 드록바는 코트디부아르에서 은인이자 영웅으로 자리 잡았고요.
전쟁을 멈춘 사나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사비 60억 원으로 코트디부아르에 병원을 짓고,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추진했습니다. 본인의 스폰서였던 나이키를 설득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교육 및 에이즈 예방을 강조한 일화도 유명하고요.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난 이후에도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절을 잊지 않았습니다. 축구를 통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 거죠. 2010년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에 10위를 차지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