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성 대신 울린 심금
1982년에 태어난 데포는 어느덧 불혹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스코틀랜드 레인저스 소속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중입니다. 2019년 임대로 인연을 맺은 레인저스에서 지금은 플레잉코치로 활약 중이죠. 이름에 걸맞게 왕년에는 폭발적인 득점력과 대포알 같은 슈팅으로 상대 골문을 위협했습니다. 잉글랜드 출신인 그는 국가대표팀에서도 10년 넘게 뛰며 57경기에서 20골이라는 걸출한 기록을 남겼고요.
출중한 실력과 달리 성인 이후로 여러 팀을 전전했던 데포인데요. 유소년 클럽이었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의 데뷔를 필두로 본머스와 토트넘, 포츠머스와 선덜랜드 등을 거쳤습니다. 대부분 잉글랜드 내에서의 이적이었으나 2014년에는 토론토까지 날아가 다른 환경도 경험했죠. 저니맨의 인상이 강하게 풍기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몸담았던 클럽에서 충분한 역할을 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토론토로 이적할 당시 계약 기간은 4년이었습니다. 이미 한국 나이로 30살을 훌쩍 넘긴 공격수였기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한 결정인 줄 알았죠. 실제로 성실함의 대명사였던 데포는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토론토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요. 그러나 구단 관계자와 마찰이 있었습니다. 소속팀 회장은 데포의 태도를 비판했고, 데포 역시 이에 응수하며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죠. 결국,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위해 공격수 보강이 필수였던 선덜랜드의 눈에 포착되어 1년 만에 팀을 옮기게 됩니다.
해결사의 부재로 골머리를 앓던 선덜랜드에서 데포의 존재는 구세주와 다름없었습니다. 곧바로 주전으로 활약하는데요.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 시원시원한 그의 결정력에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직전 시즌에 소속팀에서 한 시즌 동안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위컴이었는데요. 리그에서 36경기에 나와 5골을 기록했죠. 모두가 주목하던 신예였으나 성에 차지 않는 모습에 실망하던 찰나 데포가 아쉬움을 확실하게 달래줍니다. 2015년부터 2년 연속 15골을 터뜨리며 소속팀의 잔류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요.
데포는 선덜랜드 시절 아주 특별한 인연을 추가하는데요. 주인공은 2016년 9월 12일에 만난 브래들리 로워리입니다. 2013년에 신경아세포종 진단을 받은 다섯 살 사내아이였죠. 선덜랜드를 너무 좋아했던 로워리는 사연이 알려지며 당시 에버턴과의 경기에 초청받았습니다. 함께 손을 잡고 입장한 선수는 그가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데포였고요. 둘이 경기장에 입장했을 때는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었습니다.
승패를 떠나 모두가 로워리를 응원했습니다. 우리는 너와 함께 있다는 문구를 걸며 5살의 사내아이를 응원했죠. 오랜 치료로 수척해진 얼굴이었지만, 로워리 역시 미소로 화답했고요. 훗날 데포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보자마자 달려온 로워리에게 형언할 수 없는 웅장한 느낌과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고 표현했습니다.
만남은 단발로 그치지 않고, 지속해서 이어졌는데요. 데포를 비롯한 선덜랜드 선수들이 상태가 더욱 나빠진 로워리를 위해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몰래 준비한 이벤트였기에 로워리가 느낀 행복은 갑절이었죠. 온종일 자신의 우상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 로워리는 놀다 지쳐 잠이 드는 순간까지 담요를 데포에게 양보해 감동을 자아냈고요. 가슴 벅찬 데포 역시 로워리를 힘껏 안아주었고,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며 추억을 회상했습니다.
로워리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병세는 심해졌지만, 그를 격려하기 위한 자리가 준비됐거든요. 로워리는 잉글랜드와 리투아니아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특별 에스코트 키즈로 초청되죠. 에스코트 키즈는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와 손을 잡고 입장하는 어린이들을 일컫습니다. 원래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주장인 조 하트와 손을 잡고 입장할 예정이었지만, 데포에게 양보했고요. 무려 4년 만에 삼사자 군단에 복귀한 데포는 선발로 출전해 로워리 앞에서 골까지 넣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로워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치료가 더는 효과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한편 데포는 2년간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친 선덜랜드를 떠나 본머스로의 이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선덜랜드가 최하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강등을 피할 수 없었거든요. 2017년 7월 6일 본머스에 입단한 데포는 기자회견에서까지 로워리를 언급할 정도로 많은 애정을 보였습니다. 사랑스러웠던 로워리는 기자회견 다음 날 눈을 감으며 우리 곁을 떠났고요.
참으로 슬픈 이별이 아닐 수 없습니다. 6살의 나이로 감당하기에는 종양이 너무나 컸던 탓이죠. 그와 깊은 인연을 지닌 데포 역시 비통한 심정이었는데요. 프리시즌 기간이었지만, 소속팀에 양해를 구하며 일시적으로 귀국했습니다. 브래들리의 이름이 적힌 6번 유니폼을 입고 장례식장에 찾아갔고요. 데포뿐만 아니라 수많은 축구팬들이 함께 로워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습니다.
데포는 1년이 넘게 흘렀음에도 여전히 로워리를 그리워한다며 자신의 팔에 로워리 브래들리라는 이름을 새기기도 했는데요. 평생 기억하기 위해 문신으로 남긴 것이죠. 얼마 지나지 않아 데포는 대영제국훈장 수여식에서 오피서훈장을 받게 됩니다. 이는 영국 연방 국민으로 사회에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예훈장이었는데요. 자신의 이름을 딴 자선단체에서 활발하게 선행을 베푼 공로가 인정받은 순간이었습니다.
대단히 큰 상을 받은 데포는 자신의 영원한 친구인 로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SNS를 통해 놀라운 날이라며 훈장을 최고의 친구인 로워리에게 바치고 싶다는 글을 남겼죠. 그야말로 영전에 바친 훈장인데요. 비록 로워리는 우리 곁에 없지만, 분명 하늘나라에서 데포에게 고마워하며 열심히 뛰어놀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