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왕자는 지상으로 이어지는 길고 가파른 층계를 올라가야 했다. 한참을 올라가던 어린왕자는 층계참에 앉아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연구원 가운을 입고 있는 걸로 봐서 연구소 직원인 듯했다. 그는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실험 대상을 제외하고 어린왕자가 만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안녕.”
어린왕자가 말했다.
“안녕.”
가운을 입은 사람이 말했다. 그는 어린왕자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왜 여기 혼자 있어?”
어린왕자가 물었다.
“이곳은 안전하고 조용하기 때문이야. 난 지금 그게 필요해.”
직원이 대답했다. 그는 여전히 딴생각에 빠져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어린왕자가 물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었어.”
직원은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전 세계 컴퓨터가 모조리 바이러스에 걸리고 말았어. 저장되어 있는 모든 것을 삭제해버리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지. 심지어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마저 삭제해버리는 거야. 이 바이러스가 한 곳에서 퍼져나갔다면 나머지 일부 컴퓨터는 구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살금살금 퍼져나간 바이러스가 컴퓨터 안에 꼭꼭 숨어 있다가 갑자기 한 날 한 시에 동시에 터져버리고 만 거야. 시한폭탄처럼 말이야. 이 끔찍한 재난을 피할 수 있었던 컴퓨터는 단 한 대도 없었어. 바이러스는 정보를 통해 이동하는데, 이미 모든 정보가 감염되어 있었거든. 정보가 바로 바이러스였던 거지. 그렇게 컴퓨터 안에 있던 모든 게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어. 정보와 정보 체계는 물론이고 백업되어 있던 것들까지 모두. 금융, 인터넷, 통신, 발전소, 언론, 교육, 정부, 군대까지 모두 멈추었어. 지금 지상은 아수라장이야. 더 이상 컴퓨터를 믿을 수 없게 되었고 사람은 더더욱 믿을 수 없게 되었어.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서로 불신하고, 범죄가 만연해.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미쳤거나 죽었거나 미쳐서 죽었단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지. 잘 되어가는 것 같았던 순간도 있었어.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작은 실망들과 불만들이 곧 눈덩이처럼 커지더니 결국 사람들을 깔아뭉개기 시작했어.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포기해버렸고, 다른 사람들에게 포기하라고 설득했고, 그게 안 되면 협박하거나 위협하기까지 했어. 자고로 밑에서 위로 차근차근 올라가는 건 쉬운 일이야. 그러나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순식간에 떨어져 내리고 나면 사람들은 다시 기어 올라가기보다는 차라리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길 바라게 되지. 아예 끝장을 내고 싶어지는 거야. 이제는 오직 괴상한 소문들만이 사람들을 몰고 다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린왕자가 물었다.
“다시 지하로 돌아가렴. 그곳은 안전할 테니까.”
직원이 말했다. 어린왕자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층계와 지하로 내려가는 층계 한가운데 서서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지하로 다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오직 꿈과 슬픔만이 가득했다.
“나는 지상으로 올라갈 거야.”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래, 네 결심이 정 그렇다면.”
직원이 말했다.
“안녕.”
어린왕자가 말했다.
“안녕.”
직원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