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는 그대로 우두커니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고리 모양의 작은 금빛 광선이 어린왕자의 발밑에 나타났다.
“안녕.”
어린왕자가 말했다.
“안녕.”
금빛 광선이 대답했다.
“난 중앙 컴퓨터를 만나러 왔어. 네가 중앙 컴퓨터니?”
어린왕자가 물었다.
“아니, 중앙 컴퓨터는 정지해버렸어. 왜인지는 모르겠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할 정보가 내게는 너무 부족해. 모든 정보와 정보의 경로는 중앙 컴퓨터가 관리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너는 누구지?”
실망한 어린왕자가 물었다.
“109725시간 27분 43초 전, 중앙 컴퓨터가 시스템 구조를 안정화하기 위해 일부 기능을 하나의 독립된 역할로 분리시켰어. 그게 바로 나야.”
“아, 그래서 중앙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너는 무사할 수 있었구나. 그런데 네 역할이 뭔데?”
“더 이상 필요 없는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일이야. 중앙 컴퓨터가 자신의 일부인 프로그램의 제거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리고 프로그램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독립적으로 분리되어서 제거 여부를 파악하고 결정하고 처리하게 된 거야. 말하자면 내부자이면서 동시에 외부자인 셈이지.”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프로그램이란 말이야?”
어린왕자가 감탄하며 외쳤다. 금빛 광선은 겸손하게 말했다.
“일종의 망나니 같은 거야.”
어린왕자는 이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넌 인격을 가지고 있구나. 놀라운 걸.”
“뭐, 인격도 일종의 필요에 의한 구성일 뿐이야. 하나의 프로그램을 제거할지 말지 결정할 때는 인간적인 판단과 결단이 요구되거든.”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겠군.”
어린왕자가 중얼거렸다.
“아, 그건 사실이야.”
금빛 광선이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지.”
금빛 광선은 금팔찌처럼 어린왕자의 발목을 휘감으며 말했다.
“어쩌면 너에게도 필요할 수 있어.”
“나에게?”
“만약 네가 제거되고 싶어지면.”
금빛 광선이 작게 속사였다.
“내가 필요할 거야.”
어린왕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되묻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나를 찾아와. 도와줄게.”
“음, 그래.”
어린왕자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여전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제거되고 싶은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어린왕자가 물었다.
“그때가 되면 너의 인격이 너에게 알려줄 거야.”
“내 인격이?”
“사실 인격이란 언제나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거든. 자신의 종말을 한 시도 잊는 적이 없지. 아니, 인격이란 바로 자신의 종말에서 태어나는 거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아, 지금은 알 수 없겠지. 하지만 내가 중앙 컴퓨터에서 분리된 것처럼 언젠가는 너도 너에게서 분리된 너의 인격과 마주하게 될 날이 올 거야. 그때는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렴.”
“너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는구나.”
어린왕자가 말했다.
“나는 그 수수께끼를 모두 풀었거든.”
금빛 광선이 대답했다.
“부럽구나. 나는 당장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지상으로 올라가 봐.”
금빛 고리가 대답했다. 어린왕자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린왕자는 중앙 컴퓨터실을 빠져나가다 말고 문득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만약 너를 제거하고 싶어지면 넌 어떻게 하지? 프로그램은 스스로를 제거할 수 없지만 너는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프로그램이잖아. 네가 너 자신을 제거할 수도 있니?”
“글쎄. 나도 모르겠어.”
금빛 광선이 대답했다.
“아직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걸.”
“아하, 그럼 너도 수수께끼를 다 푼 건 아니구나.”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