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실험실은 다른 실험실보다 열 배는 더 넓은 곳이었다. 그 넓은 방을 거대한 컴퓨터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처음에 어린왕자는 컴퓨터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한 노인이 컴퓨터에 연결된 채 작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 이런 곳에 아이가 있다니.”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어린왕자는 이제 부정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아이를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난 아직 인간인 모양이구나.”
노인이 중얼거렸다.
“아직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어린왕자의 질문에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난 컴퓨터에 인간의 정신을 업로드 하는 실험에 참여하고 있단다. 바로 이 컴퓨터에 나 자신을 업로드하고 있는 중이지. 자아와, 기억과, 지식과, 성격과, 인격, 심지어 무의식적인 부분까지 남김없이 말이야.”
“왜 그런 실험을 하는 거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지.”
“하지만 그 한계가 바로 인간을 만드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는 인간 이상이 되려는 거야.”
“인간의 한계를 버리면 인간 이상이 되는 걸까? 인간 이하라고 할 수도 있잖아?”
“아하, 넌 말장난을 하려고 하는구나. 난 바로 그런 인간 중심의 평면적인 기준을 초월하려는 거야. 바로 컴퓨터가 되는 거지. 컴퓨터가 되면 생물학적이고 인격적인 간섭을 넘어서서 심리적인 결핍, 나약함, 혼동, 착각, 감각의 예민함, 욕망, 무의식의 역류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 거야. 보다 빨리 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되고 차원을 뛰어넘는 인식의 지평은 끝없이 넓어지겠지. 시간과 공간의 의미조차 사라져서 나는 과거와 미래에 동시에 현존하게 될 거야.”
컴퓨터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건 아냐, 하고 어린왕자가 얘기하려 했지만 노인은 어린왕자의 말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난 마치 신처럼 자유로울 걸.”
어린왕자는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이토록 괴상한 문장은 처음이었다. 이런 문장이 가능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개는 고양이다’라는 문장도 가능한 게 인간의 언어라지만 이건 더 심각해 보였다. 우선 어린왕자는 ‘신’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답이 없는 수수께끼였다. 아무것도 뜻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늘상 사용되는 단어였다. 분명한 건 컴퓨터가 되는 것과 신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자유’라니. 이 말 또한 ‘신’만큼이나 난해하고 애매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것은 일종의 ‘상태’도 아니고 ‘개념’도 아니고 ‘현상’도 아니고 ‘의지 표명’도 아니고 ‘상상’도 아닌, 그저 낯설고도 교묘한, 말하자면 지극히 인간 중심의 평면적인 발상이었다.
“그래서, 지금 몇 퍼센트 정도 업로드된 거야?”
어린왕자가 물었다.
“43%.”
“아, 그럼 완료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남은 거야?”
어린왕자는 컴퓨터가 된 노인과도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기 때문에 당분간 기다릴 용의가 있었다.
“글쎄. 지금까지 20년이 걸렸으니까 앞으로도 그 이상이 걸리겠지.”
“20년이라고?”
어린왕자가 놀라서 외쳤지만 노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인간의 정신 용량은 생각보다 크더구나. 더구나 내 나이가 일흔 살이 넘었으니 정보의 양도 많고 구조도 복잡한 모양이야. 지금 내 유일한 걱정은 업로드가 끝나기 전에 내 수명이 다할지도 모른다는 거란다. 하지만 견뎌만 낸다면 나는 영원히 살 수 있으니 한 번 해볼 만한 일이 아니겠니. 인간으로 70년 넘게 살았으니 더 이상 미련은 없어.”
노인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조용히 덧붙였다.
“인간이란 덧없는 거란다.”
어린왕자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인간적인 모든 걸 간직하려고 하잖아. 자아와, 기억과, 지식과, 성격과, 인격, 심지어 무의식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챙겨가려고 하네. 마치 계속해서 인간이고 싶다는 듯이 말이야.”
어린왕자의 말을 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할 말이 없는 건지 노인은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이만 가볼게.”
어린왕자가 말했다. 곧 전기가 끊어질 거라는 사실을 노인에게 알려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말하지 않기로 했다. 노인은 반은 컴퓨터인 채, 반은 인간인 채로 죽게 될 것이다.
“어디로 갈 셈이니?”
노인이 물었다.
“모르겠어.”
어린왕자가 대답했다.
“그럼 중앙컴퓨터에게 가보렴. 중앙컴퓨터는 모르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어린왕자는 중앙 컴퓨터실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