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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l 09. 2020

13

   



     네 번째 연구실은 입구 앞까지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이 잔뜩 쌓여있어서 들어가기 힘들 정도였다. 책, 컴퓨터, 실험 도구, 금속 상자, 괴상한 기계, 죽은 곤충이나 동물이 들어있는 유리병, 말린 식물, 돌멩이 등등 별의별 물건들이 가득했다. 물건들은 수십 개의 탑을 이루며 높이 솟아있었고 그 그림자들이 드리워진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자세히 보니 그 어두운 방 한가운데 한 사람이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그는 책상 앞에 바짝 붙어서 자기 일에 몰두하느라 어린왕자가 들어왔는데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안녕.”


     어린왕자가 말했다.


     “정말 물건들이 많네.”


     “아아, 그렇지.”


     그는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자기 일에 집중하느라 입을 다물었다.


     “좀 치우면 좋을 텐데.”


     다시 어린왕자가 말했다. 


     “너무 바빠서 치울 시간이 없어.”


     “왜 바쁜데?”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거든. 난 박사야. 청소같이 시시한 일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중요한 연구가 뭔데?”


     어린왕자가 물었다. 박사는 어린왕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는 더 이상 조용히 앉아서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리학 공식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야. 별의 수명을 측정하기 위해서 말이야.”


     “별의 수명이라고?” 


     어린왕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의 수명을 측정해서 뭐하려고?”


     박사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원론적이고 유아적인 질문이 지긋지긋한 모양이었다.


    “학문이란 게 그런 거야. 지식이란 게 그런 거지. 고개를 들었는데 밤하늘에서 별이 빛나고 있다면 연구하고 계산하고 공식을 만들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거야.”


     “만약 밤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별을 연구하고 계산하고 공식을 만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볼 수 없게 되지.”


    “만약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면 어떻게 되는데?”


     “글쎄, 죽어버리고 말 걸.”


     어린왕자는 박사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었다. 하지만 캐 물어 보았자 더 논리적인 대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어린왕자는 볼멘소리로 쏘아붙였다.


     “별의 수명이라니, 꽤나 거창하네. 찾아보면 이 지구에도 할 일이 많을 텐데.”


     “아, 물론이지. 이 공식만 완성하면 식물에 대한 연구를 해 볼 생각이야. 이 연구실을 멋진 밭으로 만들 거야.”


     어린왕자는 식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어린왕자는 그때까지 한 번도 살아있는 식물을 본 적이 없었다) 기뻐서 외쳤다. 


     “아, 그럼 내가 조수가 되어줄게.”


     “고마운 말이지만 나는 조수가 필요 없어.”


     “하지만 당신이 잠을 자는 동안 누군가 식물을 돌봐주면 좋을 거야.”


     어린왕자가 큰소리쳤다. 자신이 잠을 자지 않는다는 걸 은연중에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 그거라면 문제없어. 난 잠을 자지 않으니까.”


     박사의 말에 어린왕자는 크게 놀랐다. 그는 자신의 여러 능력 중에서도 불면을 (인간에 비해) 가장 월등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잠을 자는걸.”


     어린왕자가 항의하듯이 말했다. 박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난 아니야. 난 영구적으로 잠을 자지 않게 하는 실험에 참여했거든. 잠을 자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서 말이야. 길지도 않은 인생의 삼분의 일을 잠을 자면서 보내야 한다니 너무하잖아? 하고 싶은 일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 이렇게나 많이 쌓여있는데. 막 달려 나가려고 할 때마다 잠에 발목이 잡혀서 몇 시간씩이나 무기력하게 누워있어야 한다니 이런 낭비가 어디 있나. 잠이야말로 진보의 적이지.”


    “하지만 잠은 좋은 거라고 하던데. 부드럽고, 아늑하고, 달콤하다고. 그리고 꿈을 꿀 수 있잖아.”


     어린왕자는 ‘꿈’이 뭔지 너무나 궁금했다.


     “쳇, 잠은 그저 현실의 찌꺼기들을 갖다 버리는 쓰레기장에 불과해. 그리고 꿈이란 그 쓰레기장에서 진동하는 냄새 같은 거야.”


      박사의 말에 어린왕자는 쓰레기장 같은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잠이 이런 곳이라면 별로 대단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어떻게 식물을 키우겠다는 거야? 여기는 햇빛이 없잖아.”


     “내 실험의 목적이 바로 그거야. 햇빛 없이 식물을 키우는 거.”


     “왜 햇빛 없이 식물을 키우려고 해? 바깥으로 나가면 얼마든지 햇빛이 있는데.”


     “아하, 그런 발상을 뒤집어야 하는 거야. 가장 필요한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가장 당연한 것을 모호하게 만들고, 가장 근본적인 것을 부차적으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진보거든.”


     그리고 박사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어린왕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어린왕자보다 더 새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너야말로 그 진보의 산물이잖아?”


     어린왕자는 갑자기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바람에 당황했다. 숨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도 말이다.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나도 그 연구에 참여했었으니까.”


     박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사실 너뿐만이 아니라 지금의 인간들 모두가 다 진보의 산물이란다. 네가 인간적인 게 아니라 실은 인간들이 기계적인 거지. 그리고 그거야 말로 진정 인간적인 거거든.”


     그리고 박사는 어린왕자를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자, 그러니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알겠지? 그럼 더 이상 내 연구를 방해하지 말아 줄래? 나는 3년 동안 밤낮으로 이 공식에 매달렸어. 이제 완성되기 직전이지. 아, 잠을 자야 했다면 5년도 넘게 걸렸을 거야.”


     어린왕자는 조용히 그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인간은 정말 이상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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