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연구실에는 임산부가 있었다. 이곳에는 잠시 들렀을 뿐이지만 어린왕자를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했다. 만약 어린왕자가 사람이었다면 깊은 우울에 빠졌을 것이다.
“뭘 하고 있어?”
여러 가지 색깔의 털실 한 무더기와 여러 가지 색깔의 털모자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뜨개질을 하고 있는 임산부에게 어린왕자가 물었다. 임산부는 불룩한 배 위에 반쯤 완성된 파란색 털모자를 얹어놓고 빠르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아기 모자를 뜨고 있어.”
침울한 표정으로 임산부가 말했다.
“왜 아기 모자를 뜨는 거야?”
어린왕자가 물었다.
“잊기 위해서지.”
“뭘 잊기 위해서인데?"
“죽은 아이들을 잊기 위해서지.”
“죽은 아이들이라니?”
“난 태아에게 해로운 약물을 감별하는 실험에 참여하고 있어. 인공수정으로 내가 임신을 하면 연구원들이 내게 여러 가지 약을 먹이지. 때로는 주사를 놓을 때도 있고, 때로는 수증기를 들이마실 때도 있어. 그러고 나서 태아의 상태를 관찰하는 거야.”
“그 후에 뱃속의 아기는 어떻게 되는데?”
“결국 유산되거나, 유산되지 않으면 낙태를 하지.”
“그럼 지금 뱃속에 있는 그 아이도 마찬가지야?”
“그래, 8개월 전에 2가지 약을 복용했어. 독한 약이라 아기가 곧 유산될 거라고 했는데 꽤나 오래 버티네. 빨리 낙태를 해야 하는 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오지를 않아.”
“혹시 이런 짓이 부끄럽지는 않아?”
어린왕자가 물었다. ‘부끄럽다’처럼 감상적인 표현은 어린왕자답지 않았지만 다른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임산부는 완성된 파란색 모자를 모자 더미 위로 던져놓고는 노란색 실로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글쎄. 하지만 덕분에 다른 많은 아이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걸.
“하지만 왜 이 아이들이 희생되어야 하지?”
“이 아이들이 아니어야 할 이유도 없잖아.”
임산부는 잠시도 뜨개질하는 손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어쨌거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야.”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매일 수많은 아이들이 낙태되고 있는걸. 게다가 이제 더 이상 낙태는 죄가 아니래. 뱃속의 아기는 생명이 아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나 권리도 없대. 원하지 않는 꽃은 뽑아버려야 하는 잡초에 불과한 것처럼 원하지 않는 아기 역시 그저 제거해야 하는 암덩어리에 불과할 뿐이지. 그러니 이제 여자들도 부끄러움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해.”
임산부는 문득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더니 어린왕자의 붉은색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언젠가는 너처럼 예쁜 아이를 낳고 싶구나.”
임산부는 어린왕자의 목에 방금 완성한 노란색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그리고 다시 하얀색 실로 뜨개질을 시작했다. 어린왕자는 곧바로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인간은 정말 이상해.”
어린왕자는 노란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