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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Jun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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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왕자는 자신의 연구실을 빠져나와 길고 긴 복도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연구원들은 모두 연구실을 떠난 듯했다. 전력마저 끊어져서 온통 어두컴컴했고 비상전력으로 작동하는 전등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린왕자의 연구실은 연구실 325호, 326호, 328호, 329호, 330호와 이웃해 있었다. 어린왕자는 그 연구실들을 차례로 들어가 보았다. 

     

     첫 번째 연구실 한가운데에는 젤리처럼 걸쭉한 액체가 가득 들어있는 투명한 인큐베이터가 놓여있었다. 어린왕자가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는 벌거벗고 있었지만 수십 개의 전선들과 기계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맨살은 거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얼굴에도 구멍이 없는 커다란 마스크 같은 걸 쓰고 있었다.


     “아, 또 다른 환자가 왔구나.”


     별안간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인큐베이터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내가 보여?”


     어린왕자가 물었다.


     “나는 인큐베이터 위에 달린 카메라와 스피커를 통해 보고 듣고 말할 수 있어.”


     그가 말했다.


     “아, 그건 나와 비슷하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린왕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가까이 와줄래? 그래, 어떤 장기가 필요해서 온 거니?”


     “장기라니?”


     “폐야? 아니면 간? 신장? 심장인가?”


     “아니, 난 장기가 필요 없어. 필요한 적도 없었고.”


     “아, 그래, 그럼 눈이로구나. 눈동자가 붉은 걸 보니 분명 눈에 문제가 있는 거야.”


     “내 눈은 원래부터 이랬는 걸.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어. 오히려 더 잘 볼 수 있지.”


     그는 실망한 듯했다.


     “그럼 어린애가 여기는 웬일이지?”


     “나는 그냥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야. 그리고 난 어린애가 아냐.”


     “어린애가 혼자 연구실을 돌아다니다니, 별일이군.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난 부모님이 없는데. 그리고 난 어린애가 아냐.”

  

     “저런. 그럼 널 도와줄 누군가를 불러야겠구나. 이상하게도 얼마 전부터 아무도 내 요청에 답이 없지만 말이야.”


     “이제 여기엔 아무도 없어.”


     “아무도 없다고?”


     “모두 떠난 것 같아. 복도를 한참이나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어.”


     “전기는? 전기는 계속 들어오겠지?”


     “글쎄. 비상 전력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어.”


     “전기가 끊어진다는 뜻이야?”


     어린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고 인큐베이터 속 사람이 외마디 소리를 외쳤다. 


     “그럼 난 죽게 되겠구나. 뭐, 나로서는 크게 손해 보는 건 아니지만.”


     “뭐가 손해 보는 건 아니라는 거야?”


     “나는 벌써 몇 년 전에 죽었어야 했거든.”


     “어째서?”


     “사형수였으니까.”


     “사형수?”


     “공식적으로 사형당할 처지였지.”


     “무슨 죄로?”


     “사람을 죽였어.”


     “왜?”


     “죽여야만 했으니까. 혹은 그놈이 죽어야만 했던지. 여하튼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지.”


     “흔하게 일어난다고?”


     “물론이지. 사람들은 서로 죽이기 마련이야. 나처럼 잡히는 사람이 있고 잡히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어차피 죽고 말잖아. 그런데 굳이 죽일 필요가 있을까?”


     “필요가 있느냐고?”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뭐, 그건 또 그 나름의 맛이 있기 마련이지.”


     어린왕자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캐 묻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형수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아, 나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거든.”


     “누가?”


     “모르겠어. 아마도 정부 관계자이거나 정부 관계자와 연관이 있는 어떤 관계자겠지. 어쨌거나 그들은 내게 ‘장기 농장 프로젝트’에 지원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어. 내 몸을 폐나 신장이나 심장이 자라는 농장으로 만들겠다는 거야. 그럼 사형당하지 않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어. 대신 정상적인 삶은 포기해야 한다고 했지. 생명이냐 삶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야. 나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생명을 선택했어.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거든. 자, 그래서 이 꼴이 난 거야.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겠지만 보기보다 나쁜 것도 아니야.”


    “몸에서 장기를 키운다니,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간, 심장, 신장, 각막, 골수 등등.... 그들이 누군가에게 이식해주기 위해 내 장기를 떼어 가면 그 자리에서 다시 새 장기가 자라나는 거야. 잘라낸 자리에 줄기세포를 심는다나 어쩐다나,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씨앗을 심듯이 말이야. 장기가 다 자라는 데는 대략 한 달 정도 걸려. 나중에는 일주일까지 앞당긴다고 하더군. 어쨌거나 장기가 적당하게 영글면 추수를 하는 거지. 추수할 때가 되면 환자들이 나를 보러 와. 자신이 이식받을 장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고 싶을 테니까. 그들은 시한부 환자들로 나처럼 이 방법 외에는 다른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야. 아쉽게도 그들하고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어. 환자들이 오면 연구원들이 내 마이크 기능을 꺼버리거든. 하긴, 이해가 가는 일이지. 사과를 따면서 사과나무와 대화를 해야 한다면 꽤나 어색할 거야.”


     그는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고 싶은 거야?”


     “환자들 말이야? 아니면 나 말이야?”


     “둘 다.”


     “물론이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지. 내 생명이 끝나면 모든 게 끝장나는 거야. 이 세계를 비추는 유일무이한 빛이 사라지는 거란 말이야.”


     “하지만 누군가 죽어도 세상은 계속되잖아?”


     “글쎄, 정말 그럴까?”


     그는 습관처럼 웃었다.


     “어쨌든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너랑 수다도 떨 수 있는 거잖아?”


     “사는 게 즐겁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


      “고통뿐이라도?”


      “고통뿐인 삶은 없어. 그래서 우리가 고통스러운 거야.”


      그가 너무나 단호하게 말했기 때문에 어린왕자는 의아했다. 인큐베이터 속의 삶은 고통 그 자체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이만 그만 가볼게.”


     어린왕자가 말했다.


     “가지 마.”


     그가 다급하게 말했다.


     “내가 재미있는 얘기를 해 줄게. 그래, 내가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말해줄까? 꽤나 흥미진진할 거야.”


     어린왕자는 잠시 고민했다. 그의 얘기가 궁금하기는 했다. 그러나 결국 떠나기로 결심했다.


     “미안하지만, 그만 가 볼게.”


     “제발 가지 마. 고통은 견딜 수 있지만 고독은 견딜 수가 없어.”


     그가 울부짖었다.


     “그럼 생명 장치를 꺼줄까?”


     어린왕자가 물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린왕자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정말 눈알이 필요하지 않니? 내 눈동자는 짙은 갈색이야.”


      그가 황급히 외쳤지만 어린왕자는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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