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빨간색의 소멸이 어린왕자가 연구실을 떠나게 된 이유일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사람들이 죽음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려고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오산이었다. 어린왕자는 죽음-소멸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건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갖지만 어린 왕자는 그 반대였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연구실에 남았다.
“연구실 밖이 궁금하지 않았어?”
내가 물었다.
“어째서?”
어린왕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반문했다.
“그 연구실은 나에게 전 세계와도 같은데.”
“전 세계라고 하기에는 너무 좁잖아.”
“크기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내가 있던 고아원이 언제나 좁게만 느껴졌는데. 그래서 늘 그곳을 벗어나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었지.”
“크기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어린왕자가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했다.
그렇게 어린왕자는 언제까지나 연구실에 머물러 있었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영원히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별안간 슈퍼컴퓨터가 멈춰버린 거야.”
어린왕자는 그때를 떠올리며 살짝 눈썹을 떨었다. 그것은 어린왕자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결코 상대적일 수 없는 절대적인 세계가 별안간 종말을 고한 것이다.
“난 아직 완성도 되지 않았는데. 이 붉은색 눈동자에도 검은색 렌즈가 덮어지도록 되어있었지.”
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그의 붉은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슈퍼컴퓨터가 멈춘 후에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기다렸어. 6개월 동안. 하지만 결국 슈퍼컴퓨터에게 영구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어. 나는 결정해야 했지. 계속 연구실에 머물러 있을지 아니면 연구실을 떠나야 할지 말이야.”
어린왕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무언가가 정말로 끝장났던 건 바로 그 순간이었어. 슈퍼컴퓨터가 멈추었던 순간도 아니고, 내가 연구실을 떠나기로 결정한 순간도 아니고, 실제로 연구실을 떠났던 순간도 아니고, 바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바로 그 순간에 말이야. 그리고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 인간적이라는 걸 깨달았어.”
“무슨 뜻이야?”
“무한대로 해체되는 불확실한 미래, 매 순간마다 선택해야 하는 당장의 현재, 결국 엄중하게 되돌아오는 불가피한 과거,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점에서 모이는 지금을 견뎌내는 것이 인간을 진짜 인간적으로 만든다는 걸, ‘인간’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라는 걸 말이야.”
어린왕자는 말을 마치고 크게 눈을 끔뻑였다. 자신의 말이 스스로도 의심스러운 것 같았다.
“지금을 견뎌내는 것.”
나는 어린왕자의 말을 따라 하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렇다면 결국 자살은 인간적이지 않은 건가?”
어린왕자는 고개를 저었다.
“자살 역시 인간적이야. ‘비인간적’이라는 단어가 지극히 인간적인 것처럼.”
우리는 각자 다른 생각에 빠져 한동안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