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되는 날, 나는 눈물 덕분에 어린왕자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어린왕자는 오랫동안 혼자 곰곰이 생각한 끝에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내게 물었다.
“사람은 왜 눈물을 흘리지?”
“그게.... 스트레스 때문에 과다 생성된 호르몬인가 뭔가를 분해하기 위해서라던데.”
나는 더듬더듬 대답했다. 나는 그때 부서지지 않은 라디오를 찾아내기 위해 편의점을 뒤지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분명 어딘가에 생존자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 희망이 나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정말 바보 같군. 도파민 얘기를 묻는 게 아니잖아.”
그럼 뭘 묻는 걸까?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어린왕자의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할 때는 오히려 역으로 어린왕자에게 질문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터득하고 있었다.
“너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니?”
“아니.”
“아, 그렇구나.”
나는 일면 당연한 듯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왕자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눈물이 없으면 영혼도 없다는 게 사실이야?”
“영-혼?”
영혼이라니. 나는 깜짝 놀랐다. 이 단어를 접한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책에서 활자로나 볼 수 있을 뿐이지 더 이상 그 어떤 대화에서도 들을 수 없게 된 단어였다. 너무 종교적이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아무 뜻도 없기 때문이었다.
“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흔히들 그렇게 얘기하잖아? 눈물을 흘리는 건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라고 말이야.”
“난 처음 듣는 말인데.”
“그래?”
이번에는 어린왕자가 놀란 눈치였다. 어린왕자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물었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어?”
어린왕자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아니.”
“거짓말.”
이번에는 어린왕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인간은 언제나 영혼을 믿고 있어. 영혼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설사 내가 그렇게 믿고 있다고 해서 영혼이 정말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잖아.”
나는 물구덩이에 반쯤 빠져 있는 라디오를 발견하고 흥분해서 대답했다.
“아하.”
어린왕자가 웃었다.
“언어가 또 장난을 치는구나. 믿음이 바로 존재인데. 존재가 바로 현실이고. 현실이 바로 믿음이지. 애초에 이것들은 분리할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영혼’은 완전히 실제적이고 본질적이라서…….”
“아, 그런 얘기는 그만 하자. 아무래도 좋아. 난 그냥 되는 데로 대답한 것뿐이야. 나에게는 지금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이야. 어쩌면 어딘가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
건전지, 물에 젖지 않은 새 건전지만 찾는다면 라디오가 작동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일이라고?”
어린왕자가 차갑게 말했다.
“다른 누군가가 살아있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살면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지금 모든 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리는 거야?”
어린왕자는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라디오를 다시 물구덩이 속으로 떨어트렸다. 그러나 그건 어린왕자가 화를 냈기 때문은 아니었다. 왜 다른 사람을 찾고 있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게, 아무도 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게, 내 시선을 다시 나에게 돌려줄 누군가가 없다는 게 견딜 수가 없었다. 나 자신마저 의심스러워져서 바닥이 없는 깊고 텅 빈 구덩이를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두려워졌다. 구덩이는 절대 비어 있으면 안 된다. 물이 가득 차있어야 한다. 수면에 내 얼굴이 비쳐야 한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거울이 필요한 법이다. 나는 어린왕자가 말했던 믿음과 존재와 현실의 등가 법칙에 또 하나를 추가하기로 했다. 타인. 과연 어린왕자를 ‘타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무표정한 어린왕자의 얼굴이 슬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린왕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너에게도 영혼이 있니?”
어린왕자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약 나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건 빨간색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