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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May 02. 2020

6





     어린왕자야. 나는 조금씩 너에 대해 알게 되었다. 너는 해가 지는 풍경의 쓸쓸함을 이해하지 못했지. 나는 그 사실을 네 번째 날 저녁에 알아차렸다. 해가 질 무렵 나는 유리창이 모두 깨져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폐허가 된 광대한 도시 위로 붉게 물든 해가 내려앉고 있었다. 그것은 퇴색한 전원풍 그림처럼 아름답고 쓸쓸했다. 지금 여기서 뛰어내릴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기가 막혔고 몹시 지쳐있었다. 희망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다가 대체 어떤 희망을 꿈꿔야 할지조차 몰랐다.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우는 거야?”


     어느새 따라온 어린왕자가 물었다.


     “그냥 슬퍼져서.”


     “그러니까 왜 슬퍼진 거야?”


     “해가 지는 풍경 때문이야.”


     “해가 지는 풍경이 어쨌다는 거야?”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설명하기 어렵다니? 지구의 공전과 자전의 법칙에 대해서는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아니, 그렇긴 한데, 그러니까, 그냥 상상해보는 거야. 이게 해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내일 또다시 해가 떠오른다는 걸 알고 있잖아?”


     “그래.”


    “사실은 해가 정말 뜨거나 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


    “그래, 알고 있어.”


    “이해할 수가 없네.”


    어린왕자는 자못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상상 때문에 슬퍼지다니. 사실도 아니고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그런 어린왕자를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어쩐지 어린왕자에게 알려주고 싶어졌다. 아니, 어쩌면 그저 누군가에게 떠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순간 세상천지에 내 얘기를 들어줄 상대라고는 어린왕자뿐이었으니까.


     “어쩌면 오늘 본 저 일몰이 내 삶의 마지막 일몰인지도 모르잖아.”


     “마지막?”


     “결국 나도 죽고 말 테니까. 반드시 끝나고야 마는 오늘 하루처럼.”


     “아, 죽음.”


     어린왕자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정말 죽음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너도 죽니?”


     내 질문에 어린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가 정말 죽음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럼 너도 자살할 수 있어?”


     어린왕자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일몰을 바라보았다. 사그라지는 붉은 일몰과 그 일몰만큼이나 붉은 어린왕자의 눈동자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나도 그만 웃고 말았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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