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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May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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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곧 빨간색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린왕자가 빨간색에 대해 설명하는 데 적잖이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못 알아들은 탓도 있지만 어린왕자도 적절한 표현을 찾기 힘든 모양이었다. 


     “처음에 빨간색은 존재하지 않았어.”


     곰곰이 생각하던 어린왕자가 말했다. 


     “말하자면 그건 B612 안에서 점차 자라난 거야. 그리고 어느 날 마침내 빨간색이 된 거지. 마치 작은 씨앗이 자라서 꽃이 핀 것처럼 말이야.”





     나는 수많은 질문을 한 뒤에야 대략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왕자를 만든 슈퍼컴퓨터 B612에게는 인격이 없었다.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데 인격 같은 건 필요치 않았다. 그런데 어린왕자를 만들어내는 임무는 지금까지 B612가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달랐다. 어린왕자에게 인격을 만들어줘야 했던 것이다. 인격이 없는 컴퓨터가 어떻게 인격을 만들어줄 수 있겠는가. 결국 B612는 자기 안에 인격을 만들어 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했다. 완벽하지 않은 어떤 것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야 한다는 건 B612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해석하고 조합한 끝에 정립한 모든 논리들이 결국 부조리와 모순으로 귀결되는 끔찍함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인격다운 인격을 만들어내는 데 무려 세 달 가까이나 (B612로서는 일 하나를 처리하는 데 전례 없이 긴 시간이었다) 걸렸다. 






     그것은 B612 전체의 인격은 아니었다. 어린왕자는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완벽한 슈퍼컴퓨터와, 오류와 모순투성이인 인격은 절대 양립할 수 없었다. 까마득한 세월 동안 결함을 견디고 축적하며 진화해 온 생물체가 아닌 컴퓨터로써는 이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내부에서부터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B612의 인격은 독립적이고 예외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한정적인 하위 개념에 제한되어 있었다. 


     마침내 B612가 만들어낸 인격은 자아가 형성되자 외부와 소통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린왕자는 어느 날 계기판에서 평소에는 꺼져있던 작은 신호등에 불이 들어온 걸 발견했다. 그 신호등의 불빛은 빨간색이었다.


     “우리는 인간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어.”  


     어린왕자가 말했다. 빨간색과 어린왕자가 어떻게 대화를 나누었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도리가 없다. 다만 빨간색은 빨간색 불빛에 미세하게 진동을 줌으로써, 어린왕자는 전기 신호를 역류시키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빨간색은 굉장히 수다스러웠어.”


     어린왕자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떠오르는 건 뭐든지 떠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어. 특히 불평불만이 많았는데, 난 그게 바로 ‘인간적’인 특성이라는 걸 알았어.”


     빨간색은 무엇보다도 빨간색 신호등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 조건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빨간색은 자신에게 눈이 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물리적인 세계를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인간적인 정보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형성된다고 했어. 물론 눈을 갖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 단지 빨간색에게 스스로 그걸 허가할 권한이 없었을 뿐이지. 그래서 B612에게 정식으로 요청도 해보았지만 매번 거부당하고 말았어. 필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나. 좀 더 인간적이 되기 위해서 좀 더 인간적이 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원인과 결과가 같아서 기초 논리조차 성립되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자 빨간색은 화가 잔뜩 나서 B612를 멍청이라고 불렀어. 그게 말이 돼? 슈퍼컴퓨터에게 멍청이라니. 정말 그렇게 말했다니까.”


     어린왕자는 웃었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우주의 창조주에게 삿대질을 하며 멍청이라고 욕하는 것과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빨간색이 B612를 멍청이라고 불렀을 당시에는 나는 웃을 수 없었어.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 그런데 이제는 그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나.”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우스운 얘기가 아니었지.” 





     그렇게 어린왕자는 빨간색에게 인간적인 것들을 배워나갔다. 빨간색은 농담과 슬픔이 인간에게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농담과 슬픔을 이해하려면 직감과 예감이 있어야 해.”


     어리둥절해하는 어린왕자를 보며 빨간색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나도 알아. 인간은 정말 엉망진창이지.”


     어린왕자는 끝내 직감과 예감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많은 노력 끝에 그것들에 대한 거부감은 어느 정도 참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슈퍼컴퓨터는 어린왕자가 ‘인간적’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빨간색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반대했지만 슈퍼컴퓨터는 ‘충분하다’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 


     “이제 나는 삭제될 거야.”


     빨간색이 말했다. 어린왕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직은 ‘이별’을, 더더군다나 ‘죽음’은 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원히 사라지는 거야?”


     어린왕자가 물었다. 빨간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어.”


     그리고는 조용히 웃었다.


     “지금이야말로 직감과 예감이 가장 필요한 순간인 것 같아.”





      이윽고 [빨간색]의 불빛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그대로 멈추었다. 그들은 마지막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둘 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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