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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해 Aug 22. 2023

연기수업을 시작했다

연기도, 소설도 내가 아닌 타인에게 관심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0명의 수강생과 1명의 배우 선생님과 함께 하는 연기수업이 어제 개강했다.

수강생이 별로 없어서 2주 개강이 미뤄졌고, 나도 수업을 들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들었는데 첫 수업부터 참 신청하길 잘했다 싶었다.


나는 항상 나를 잘 알고, 자신과 확신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싶어질 때쯤 마침 수업이 개강했고, 이게 나에게 어떠한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함께 수업을 듣는 인물들이 정말 흥미롭다…. 소설 써도 되는지 물어보고 소재로 해도 되려나? 궁금한 그런 맘…. 담롱 양가족들에게 짧게 썰 풀어줬는데 연기수업을 소재로 옴니버스 소설 써도 되겠다길래 헉 진짜다~ 싶었음.

 집 오는 버스에서 이름까진 기억이 안 나지만 생생히 기억나는 그 사람들의 하는 일들을 메모장에 써뒀다. 그렇지만 집단 심리상담 같은 수업답게 교실 안에서의 일은 밖으로까지 가져가지 않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다섯 시간도 못 자고 간 회사. 제대로 마무리되지도 않은 회의를 후다닥 나와서 저녁도 안 먹고 수업에 갔다.

열 시 반에 집에 왔고 배가 너무 고프고 피곤했지만 긍정적인 자극을 느꼈다.


영화 보는 걸 좋아하니까~ 하고 가볍게 들어간 동아리. 부산국제영화제를 기점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 친구, 예술을 하고 싶은 친구, 뭘 만들고 싶진 않아도 영화 보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좋은 친구들과 술을 많이도 마셨다. 필름 카메라도 그때 시작했고, 끝내 완성하진 못했지만 다큐멘터리도 기획하고 찍었다. 친구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지금도 이해 못 하는 타인의 죽음 이후의 삶. 큰 고민 없이 시작한 연기. 캐릭터 여름이는 나를 많이 닮아서 그때 불리던 이름이 지금까지도 나의 활동명이다. (물론 너무 많은 여름이들이 있어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여름이다.)


이후로도 기회가 되면 가볍게 연기해보고 싶었고, 매체 연기도 좋지만 연극이나 뮤지컬을 꼭 해보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 배우는 수많은 장래희망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현실의 트랙에서 벗어날 용기는 없고, 그 정도의 애정도 아니어서. 업으로 연기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가볍게 접근하나, 싶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무엇인가 계속 만들고 세상을 따라가느라 바빴다.


‘그냥 취미로’, ‘직장인 소모임’ 같은 느낌으로 예술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술 하고 싶다고 엄마 아빠랑 싸울 때 시작도 안 해봤는데 취미로 하라는 말이 싫었기 때문에. 그리고 취미가 된다는 건 결국 포기같아서. 

어쨌든 당장 돈은 없고 불안하니까 나의 20대가 조금 안정이 된 다음 생각해 봐야지, 했다.

그러다 인턴 중인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교육비로 글쓰기 수업을 신청하다 연기 수업을 발견했고 마음의 여유 있고, 돈도 쪼금 있고, 업무 시간이 안정적인 지금이 아니면 계속 미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월까지는 월요일, 화요일에 퇴근하고 바로 수업을 간다. 매주 수요일 밤은 담롱 회의가 있고, 목요일 저녁마다는 홈시네마 예약을 해놨다. 조금 광기 일지도….


나는 지금까지 정말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아와서 ‘내가’ 관심 있는 사회 주제, 나의 정체성을 녹인 것들

그런 것에 주로 몰두해 왔다.

그래서 에세이를 쓰는 것을 좋아하긴 하나 보는 것은 그렇게 안 좋아했던 거임!

왜냐면 남의 에세이는 남의 얘기니까!!!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와~ 나는 에세이를 쓰려고 하면서 에세이는 안 보네… 모순. 이랬는데 어쩌면 이해가 가는 것이다.


내가 정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나(청춘유감, 여름 어쩌구, 요가 어쩌구 그런 것), 내가 너무 사랑하고 궁금한 사람 (초엽, 세랑. 근데 이마저도 에세이는 소설만큼 즐기지 않음)의 에세이가 아니면

걍… 관심조차도 없던 거임.

물론 사람들은 다들 자기밖에 모르고 자의식 있지만…

그리고 이슬아 글은 예외지만….


어제 연기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운 건 자의식을 버리는 것.

자의식과 자기화는 다르다.

연기하는 ‘나’가 아니라 그 상황과 상대 배우에게 집중하는 것.

그래야만 진짜 연기가 나온다.


연기도, 그리고 소설도

내가 아닌 타인에게 관심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예술가라면 무릇 자기애와 자의식으로 똘똘 뭉치고 내면세계를 탐구하면서 창작으로 승화하는…

뭐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조금 재수 없으면서도… 멋지면서도… 갓반인에겐 예술가인 듯 예술가에겐 갓반인인 듯 애매따리인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여기면서… 살아왔는데

좋은 예술을 하려면 다른 사람을, 세상을 많이 받아들이고 구체적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그게 나를 자유롭게 해 주고 더 좋은 표현을 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다음 수업도 기대된다! 


첫 수업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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