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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해 Feb 18. 2021

울프에게

울프에게



어떤 글쓰기는 일종의 동경에서 시작되기도 해요.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열어봤던 칼럼이 너무 좋으면 나도 저런 문장을 써야지, 하는 다짐이 일고 그 다짐을 잊지 않으려고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에 정돈 안 된 감정을 써 두었다가 정작 집에 와서 책상에 앉으면 어떠한 언어도 떠오르지 않거나 까먹고 놀아버리거나 해도, 좋은 글은 내 글쓰기의 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글쓰기의 고리는 분명 세대와 국적을 막론하고도 아주 작은 공통적인 연대의식만으로도 찾아와요. 저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은 대개 행동을 하고 싶게 만드는 글이기도 해요. 화가 나고, 슬프다가도 그러한 에너지를 어떠한 방향으로 써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만들어주는 글이요. 그러한 글은 단지 언어에서만, 글자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의 행동과도 이어지며, 나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글쓴이와 나의 이어짐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라고, 들어보았나요? 이민경 작가가 코로나 시대에도 여성 간의 사랑과 연대를 잇기 위해 기획한 비정기적인 프로젝트인데, 자율적인 구독료를 내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메일로 편지를 보내줍니다. 영양가 없는 광고 메일들로 들어찬 메일함에 들어선 ‘이민경’이라는 이름은 그 글자만으로도 너무 든든해서 ‘코시사’라고 따로 분류해놓은 메일함에 차곡히 쌓이는 제목들을 보는 것이 참 좋았어요. 봄부터 메일을 받기 시작해 벌써 겨울이 되었는데, 새해를 맞이하는 마지막 편지에 당신의 이름이 나왔어요. <자기만의 방>에 추천사를 썼던 이민경은 당시의 문장을 편지를 쓰던 시점에 다시 발견해서,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들을 다시 상기하고 그 감정을 저에게도 보내주었어요. 12월의 영화였던 <디 아워스(2002)>, 1월의 책이었던 <자기만의 방>과 <댈러웨이 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제 저는 글을 쓸 차례인데, 어떤 식으로 작품들을 엮을지 고민하던 찰나였어요. <자기만의 방>을 읽으며 당신의 연설문은 물론, 그가 썼던 추천사도 기쁘고 벅차게 읽었던 그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한창 몰두하고 있는 주제를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또 만나게 되는 반가움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 가시나요? 그래서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보고 글을 쓰던 그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듯 당신께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스스로가 페미니스트인 것을 깨닫고 난 이후부터는 선배 페미니스트들의 존재가 자주 큰 위로가 되곤 했어요. 글을 쓰고 행동하는 여성들은 그 자체로도 일단 너무 멋져서, 어디든지 따라가고 싶지만 그런 감정 이상으로 든든한 이유는 사람들이 잘 택하지 않는 겁나는 길, 그 길을 용감하고 주저 없이 먼저 걸어보고 나선 어렵지 않다고, 오히려 좋다고 말해주는, 제가 따를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한 세기 전 용감하게 어떠한 길을 개척했던 당신에게 위로를 받은 여성들은 문장을 보고 반응하고, 자기만의 글을 써내려 갔어요. 그리고 그 여성들은 다시 저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줘요. 당신에게도 물론 선배가 있었죠. <자기만의 방>에서 제인 오스틴에 대한 사랑을 마음껏 표현했으니까요. 이렇게 앞서서 있었던 선배들, 언니들을 무수하게 떠올려보면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문장이 어떤 것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해가 돼요.


그 이름 자체로도 페미니즘 사에서 기념비적인 <자기만의 방>에서의 당신의 의심 하나 없는 주장, 여성에게는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그 메시지는 우리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자기만의 방이 아닌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서도 무수하게 생각하게 해요.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적이 없었고, 우리는 그를 위해서 지금도 투쟁하고 있어요. 안전하게 화장실을 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크게 하기 위해. 여성을 위한 미디어를 만드는 페미니스트의 청파동 여성 전용 칵테일 바 나, 글을 쓰고 정치를 하는 페미니스트가 당신을 따라 이름 지은 한남동 카페에서 같은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는 일, 애인과 파이를 먹는 일은 그 자체로도 어떤 동기부여가 되는 이상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안전하다는 보장이 있는 공간, 다른 손님과의 말 없는 연대가 가능한 공간. 우리는 그런 공간들이 더 필요하고, 동시에 그런 공간이 아니어도 안전하고 편안한 사회가 필요해요.





우리는 어떤 글을 쓰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그러한 물음을 항상 과거의 당신께 묻게 되는 것 같아요.


이 글은 당신의 글을 보며, 당신을 묘사한 영화를 보며, 당신의 사진을 떠올리며 쓰는 편지예요. <디 아워스>에 나타난 울프는 유약하고 우울한 면이 다소 두드러져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1920년대 당시에 <댈러웨이 부인>을 쓰던 당신을 니콜 키드먼을 통해 상상해 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었어요. 우울과 불안의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단어를, 어절을, 문장을 떠올리고 읊조리는 울프의 모습은 누구보다 강인하고 진정으로 살아있었어요. 이 편지는 동시에 저를 만들어주었던 다른 많은 페미니스트들을 위한 편지이기도 해요. 제가 손을 뻗었을 때 잡아주었던 친구들,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로 말과 글에 이끌려 찾아온 친구들과 작은 모임을 진행하며 행하고 쓰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계속 이야기해왔어요. 그래서 보고, 말하고, 쓰는 이 활동이 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 당신의 이름을 빌려 새삼스럽게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신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고, 그래서 <댈러웨이 부인>이 있었고, 그래서 <디 아워스>가 소설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고, 그 <디 아워스>를 보고 다시 당신을 이야기하는 우리가 존재하고, 우리의 목소리도 또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이어지는, 100년을 넘고도 치열하고 활발하게 이어지는 창작의 흐름이 가닥이 잡히고 눈에 보일 때면 감격스러워요.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정면으로 보던 당신. 당신의 삶은 이렇게 다른 여성들의 말과 글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앞서 선배 페미니스트들의 존재가 저에게 여러모로 의미를 갖는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가끔은 떠올려 보기는 해요. 당신은 어떤 길을 걸었을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소설을 쓰면서는 어떤 생각을 했고, 대학 강단에 서서 여학생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클로이는 올리비아를 좋아했다”는 문장을 말하는 당신의 상기된 얼굴과, 주먹 쥔 손. 그런 것들을 떠올려요. 당신이 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얼마나 더 외롭고 두려운 길을 선택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의 우울을 대상화하거나 동정한다거나 혹은 당신 자체를 과하게 우상화하고 싶지는 않아요. 결국, 당신이 원해서 선택한 길, 원해서 걸어온 길임을 잘 알아요. 인권 운동을 하다 보면 조금은 헷갈리기도 해요. 다른 사람을 위해 한다는 어쭙잖은 사명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하지만 결국 저는 나를 위해서, 내가 좋아서. 라는 그 간단하고 명쾌한 답이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여성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저의 목표지만, 그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또 아니죠. 다른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고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일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그걸 깨닫고 나서는 이제는 가는 길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은 사라졌고, 무엇보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당신 덕에 매우 많아요. 절대로 외롭지 않아요.






2021년 1월 19일

어떤 ‘메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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