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sco Cathedral, 페루 쿠스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기분, 그것은 이역의 낯선 마을에서 아침에 홀로 깨어날 때다(To awaken quite alone in a strange town is one of the most pleasant sensations in the world. You are surrounded by adventure).” - 영국 탐험가 프레야 스타크(Freya Stark, 1893-1993)
그다지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음에도 유독 여행을 가면 아침잠이 없어지는 편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녘에 눈이 떠지면 평소에 살아본 적 없는 이 시간을 무얼 하며 보내나 싶다. 여행의 설렘 때문일까 낯선 환경에서 깊게 잠들지 못해서였을까. 하여간에 다시 잠들기는 무언가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인천에서 미국 댈러스. 댈러스에서 다시 페루 리마. 리마에서 다시, 쿠스코. 두 번의 국제선과 한 번의 국내선을 거쳐 비행만 30시간이 넘게 걸려 나는 페루의 고산 도시 쿠스코에 도착했다.
Marqueses Hotel, Cusco
남미 여행의 첫 숙소였던 쿠스코의 Marqueses Hotel. 30시간의 비행에 지친 심신을 위로하던 아름다운 파티오와 친절한 직원들, 조식의 맛있는 파인애플 주스. 그러나 이곳이 얼마나 좋은 숙소인지 그때는 미처 몰랐지...머물 당시에는 인터넷 신호가 약하네, 그냥저냥 지낼 만하다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후 푸노, 라파즈와 같은 여행지의 숙소를 모두 거친 후 동생은 말했다. "거긴 아방궁이었어"
쿠스코에 거점을 두고 근교의 관광지를 둘러보며 그곳에 머물던 사흘째.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잠이 깼다. 멀뚱멀뚱 눈을 뜬 채 더 자야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생각하니 일출이 30분 뒤라, 지금 호텔을 나서면 아르마스 광장에서 해뜨는 모습을 볼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곤히 자고 있는 동생을 두고, 급하게 옷을 챙겨입고 호텔을 나서서 강렬한 뜀박질을 시작했다(무려 고산지대에서 말이다!). 나홀로 여행객인듯냥 낭만을 만끽하며 광각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광장의 일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치안이 살짝 걱정되었지만, 광장에 배치되어 있는 현지 경찰 몇 사람이 나의 재롱을 지켜보고 있어 든든했다.
Plaza de Armas, Cusco
쿠스코의 중앙 광장. 동이 터오는 이른 아침 동네 청년들 몇 명이 광장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 사진놀이를 하고 있는데, 어제 현지 가이드가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침 여섯 시 정도면 카데드랄의 정문을 열어준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났다. 마침 시간은 여섯시 8분 전. 과연 광장 맞은편 카테드랄 앞에서 서성이니 문이 열린다(원래는 입장료를 내야하는 곳이어서 공짜로 들어가자니 괜히 돈버는 느낌이 들어 더욱 신났다).
Cathedral del Cuzco, Cusco
성당 안을 휘휘 둘러보는데, 사랑의 성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성인은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소녀들이 상대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두면 그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제법 낭만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철장 너머 성인상 발치에는 그런 마음이 담긴 채 던져진 쪽지가 가득했다. 갑자기 나에게도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그렇지만 급하게 카메라만 달랑 들고 나온 나에게는 아무 적을 것이 없었다. 성당 직원한테 말을 걸어볼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필기류를 가지고 있는 사람 안 지나가나 한참을 서성인 끝에 드디어 손에 다이어리를 든 아주머니를 발견하고 용감하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친절한 아주머니는 지나가는 다른 사람을 붙잡고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봐주었고, 그렇게 3자 통역이 시작되었다. 아주머니는 그제야 내 뜻을 이해하더니, 망설임 없이 다이어리를 한 장 찢어주었다. 당황해서 그래도 괜찮냐고 묻는 내게 아주머니는 2016년이 적혀 있는 날짜를 보여주며 작년 다이어리니 괜찮다는 몸짓을 했다.
나의 충동적인 작은 모험을 기어코 성공을 거두었다! 쪽지를 철장 너머로 던져 넣으며 나는 계획에 없던 모험과 또 친절함에 잔뜩 신이 났다.
그러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데, 남자친구의 성을 'SHIN'이 아니라 'SIN'으로 써넣었다는 걸 깨달았다. 'SIN' 기독교 성인에게 소원을 빌면서 적어내기에는 좀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나? 그런지 아닌지조차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 찝찝한 마음으로 있는데, 동생이 "애초에 한글로 쓰면 될 걸 왜 영어로 써?"라고 되물었다. 그러게나...수호성인은 외국 사람이니까 어쩐지 영어로 써줘야 내 말을 알아들을 것 같았어.....
이 모험담의 끝은 결국 그 다음날 재방문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객실에 구비된 메모장에 이름을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적었다. 그걸 손에 꼭쥐고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달려나갔다. 카데드랄 앞에서 인증사진도 찍고 2차 투척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내가 이런 깜찍한 짓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
이역만리 낯선 여행지에서의 새벽이 나에게 뜻밖의 모험을 할 용기를 선사했다. 낮시간 동안에는 온 세상에서 모인 관광객이 북적이는 그 공간을 오롯이 혼자 맞이하고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말이다.
이 철저한 두 번의 모험 덕분인지, 내 소원은 잘 접수된 듯 하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밤을 새우고, 길거리 한복판에서 부끄러움도 모른 채 고성방가를 질러대던 싸움으로 분노를 넘어선 절망과 좌절, 설움이 휘몰아치는, 그야말로 이별의 고비를 넘나드는 결정적 순간들이 몇 번씩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때 기원은 지금까지도 무사히 유지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