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치즈
어른들을 지루한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엄마는 '이모'라고 불리는 친한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고 아빠까지 있으면 친척들끼리 모이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어른들은 음식 앞에 앉아 왁자지껄하게 몇시간이고 떠들고, 흥에 겨워했다. 다행히 그 기다림은 다른 어른들이 데려온 아이들과 함께였다. 어른들 옆에서 우리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온 공간을 휘저으며 정신없이 뛰어놀았다.
그러다 밤이 늦어지면 나는 졸음이 몰려와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야기에 취하고 술에 취한 어른들의 흥은 멈출 줄을 몰랐다. 졸린 눈을 비비며 집에 가자고 보채도, 아빠는 '조금만 더'를 외치며 벌건 얼굴로 나를 달랬다. '조금만 더'를 믿으며 있다보면 어느 새 잠이 들곤 했고 잠결에 내 몸이 들려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나는 내 방에서 깨어나곤 했다.
이런 어린 시절의 기다림을 떠올리면 늘 횟집의 콘치즈가 생각난다. 우리 집 식구들의 입맛은 해산물보다는 고기에 가깝긴 했지만, 그래도 종종 횟집을 갔었다. 그러나 아무런 간도 되어있지 않은 날 것의 생선회는 도무지 아이의 입맛에 맞을 수가 없었다. 물컹한 흰 살을 씹어도 이게 무슨 맛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관심사는 상차림에 딸려오는 반찬에 있었고, 그 중 최고는 콘치즈였다.
달콤하고 짭조름하게 절여진 캔옥수수의 낟알은 마요네즈에 버무려져 까만 철판 위에 지글거리고 있었다. 고소하고 기름진 마요네즈가 옥수수 낟알을 빈틈없이 감싸면 옥수수는 샛노란 보석처럼 빛났다. 온통 차가운 음식 투성이인 주메뉴 사이에서는 그 따뜻한 온도 또한 독보적이었다.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조리법은 아닌데도 결코 집에서는 먹은 적 없는 메뉴였다. 콘치즈에 맛을 들이고 나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갔던 횟집으로의 외식이 사뭇 기다려지기까지 했던 것 같다. 나는 콘치즈를 또 시키고 또 시켰다. 반찬이니까, 한국의 식당 인심상 그것은 무료였지만 세번쯤 '이것 좀 더 주세요'를 말해야 되면 엄마는 민망해하면서 이제 그만 시키라며 나를 타박했다.
그렇지만 이것말고는 내가 먹을 게 없는 걸!
나는 소심하게 볼멘소리를 중얼거렸다.
나중에는 집에 작은 철판이 생겨서 콘치즈를 직접 해먹은 적도 있었다. 그것도 엄마가 해준게 아니라 내가 직접! 대충 캔옥수수와 마요네즈를 넣고 가스렌지 위에서 익히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마요네즈가 말썽이었고, 옥수수는 방심하는 사이에 타버렸다. 그런고로 콘치즈는 영영 횟집을 가서야만 먹을 수 있는 그런 아련한 음식이 되고야 말았다.
얼마전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갔다가 초록색 건장한 요정 아저씨 그림이 붙은 옥수수캔을 발견했다. 정확한 이름이 '스위트콘'이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고, 아직도 이걸 파는구나 싶은 반가움이 밀려왔다. 그렇지만 이제 굳이 횟집의 콘치즈를 찾아헤맬까 싶다. 어른의 손에 이끌려 어른의 세상에 함께해야 했던 어린 시절 지루한 기다림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 사이에서 나를 기쁘게 했던 그 친구는, 이제 영 내 추억 속에서만 따뜻하고 노랗게 빛을 발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