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하다
정말이지 여행도 아닌데 입원과 수술은 딱 여행을 앞두었을 때마냥 나를 준비시키고 긴장시켰다. ‘한달 전부터는 금연 및 금주, 일주일 전부터는 항응고제성의 약제 복용 중단, 이틀 전에는 코로나 검사 진행’. 나는 순차적으로 다가오는 일정을 까먹지 않으려 잔뜩 신경을 쓴 채, 입원 준비물을 하나씩 쟁여두었다. 그리고 이 모든 긴장과 물건들을 실제로 캐리어 가방에 욱여담는 것으로 여행은 준비를 마쳤다.
입원 이틀 전 드디어 첫 ‘코쑤시기’를 경험했다. 코로나가 시작된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간 검사할 일이 딱히 없었다. 뉴스에서 보던 긴 줄은 없고 사람이 드문드문했다. 검사를 위해 마스크를 내리래서 엉겹결에 입까지 마스크를 내렸다가 코만 보이도록 내리라고 날카롭게 꾸중을 들었다. 면봉이 코 안 깊숙이 들어왔다. 듣던대로 얼얼하고, 찌릿했다. 신기하게도 왼쪽을 콧구멍을 쑤시니 왼쪽 눈만 눈물이 핑 돌았다.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입원 하루 전에는 입원동의서가 메신저앱으로 날라왔다. 참 신식이다.
입원 당일 또 여느 때처럼 동이 트기도 전에 잠이 깼고 그대로 일어나 마지막으로 집을 정리했다. 짐을 싸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불을 끄고 집을 나섰다. 새벽 여섯시 이십일분. 앞으로는 보름달이, 뒤로는 여명이 짙게 깔려있었다 . 몇년 전 몽고에서 딱 이런 아침을 여러번 맞이했었는데. 그런 시간들은 꿈같이 멀리 느껴졌다.
입원 동안 엄마가 간병인이 되어주기로 해서 나는 본가에서 엄마와 같이 마지막 식사를 하고, 언제 다시 할지 모르는 샤워를 꼼꼼히 하고, 작은 이삿짐 수준으로 짐을 챙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가 핸드폰을 두고 오는 바람에 가던 길을 돌아오는 작은 소동도 있었다. 둘 다 병원에 들어서기도 전에 한참 지쳐버렸다.
병원에 도착해 입원 수속 창구에서 순번을 기다렸다-황당한 소리인데, 이전에 입원’예정’일을 받기는 하지만, 만약의 상황에 입원이 안될 수도 있다고 했었다. 병실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빈 병상이 없으면 그냥 그대로 입원이 미뤄지는 구조임을, 그때 처음 듣고 알았다. 황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건지 바라지 않는 건지 약간 알 수 없는 마음으로, 나는 무사히 6인실을 배정받았다.
동관 12층 123병동 35호실 5번. 제일 가운데 병상이다. 이를테면 3-4-3 배열의 비행기 중, 제일 가운데 좌석인 셈이다. 괜찮겠지 하기도 잠시, 옆자리 할머니는 힘차게 울리는 벨소리를 만방에 뽐내며 보호자(며느리!)도 없이 혼자 입원해있는 본인 신세가 얼마나 처량한지 최소 사돈의 팔촌까지 다 알게할 요량으로 계속 통화를 한다. 맞은 편 자리의 간병인은 병실에 딱 하나 있는 수돗가 옆을 다 차지하고선 대 자로 누워 터줏대감 행세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다 간병인이 이 외로운 할머니의 호구조사를 하며 수다를 트느라 별 알고 싶지도 않은 남의 집 사정이 귀에 강제로 꽂힌다.
삶이 너무 생생하네.
엄마랑 어이없이 웃었다.
병실에는 참 사생활도 없고 인격도 없다.
밤이 될 때까지 옆자리 할머니의 하소연은 끝날 줄 몰랐고, 반대편 옆자리는 간병인인 딸이 무슨 소송 얘기를 하느라 입원한 환자인 그의 어머니를 붙잡고 끊임 없이 성토를 벌였다. 그러는 와중에 의사가 회진을 돌면서 내일 수술 설명을 하며 내 병력도 줄줄 읊는다. 이 시장 바닥에 내 개인사까지 방송해야 된다.
내 병은 그야말로 스트레스가 원인인데…라고 생각하며, 불편하게 잠이 들었다. 잠결에 깨보니 엄마가 없다. 잠시 뒤 엄마가 나타나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1인실 신청하고 왔어.
자정 무렵에는 건너편 창가 자리의 19살짜리가 너무 아픈지 계속 훌쩍이며 몇번이고 간호사를 호출했다. 마약 성분이 든 아주 강한 진통제를 놨다는데에도 영 아픈가보다. 잠결에 몇번이고 훌쩍이는 소리와 다독이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마냥 안타까워질 뻔했지만, 그러기에는 6인실은 조금 힘들다. 나도 내일 수술을 받아야 하고, 오늘 최대한 잘 자야하고, 혈압은 계속 높고…마음이 사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