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을 준비하다
입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이를테면 조금 불편한 여행 같은 걸까?
되도 않는 생각을 애써 해보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터넷에 <수술 입원 준비물>을 찾아보면 평상복, 세면도구, 시간을 보낼 만한 것들, 정도여서 정말 여행이랑 비슷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나를 상상해보았다. 별일 없으면 멀쩡하게 걸어 돌아다닐테다. 아니면 아파서 정신을 못차리고 누워만 있을 지도 모른다. 이전에 그런 옷을 입은 친척을, 아는 사람을 병문안 갔던 흐릿한 기억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러나 내가 거기 누워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입원을 하게 되면 휴가 처리는 어떻게 하지. 회사 규정을 찾아보니, ‘수술 혹은 사고로 인한 입원의 경우에는 2주 미만의 의사진단이어도 처리 가능함’라고 안내하고 있다. 이전에 급성 허리 통증이 와서 일어나지도 못했을 때에는 정작 수술이 아니어서 병가를 낼 수 없었는데 이제는 자격이 충분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두어군데의 대학병원을 돌아보고선 그 중 한 군데로 수술할 곳을 정했다. 의사가 활기차고 긍정적이었다. 마음이 편하다고 실력이 좋은 건 아니지, 라고 엄마는 덧붙였다. 말의 내용은 처음 갔던 대학병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단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 그래도 어떤 검사를 어떻게 하게 되는지 간호사가 꼼꼼하게 설명해주니,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진다.
대학병원에 와서야 안 사실인데, 내가 받아야 하는 수술은 혹만 제거하는 게 아니라 혹이 자라나 비대해진 장기를 통째로 제거하는 것이었다. 장기가 1.2센치, 종양이 3.5센치. 가분수마냥 내 장기는 저보다 더 큰 혹을 단 채 1년 넘게 폭주기관차처럼 과다 업무에 시달려오다 마침내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것과 이별한다. 짝을 맞춰 있던 것 중 한 짝을 잃어버린다. 새삼 기분이 서글퍼졌다. 완전함에서 멀어진다는 감각. 나이를 먹어갈수록 앞으로는 이런 일 투성이일거다. 점점, 당연하던 것들은 안 당연한 것이 되겠지.
인간 존엄을 다소 상실하는 듯한 24시간 소변 검사까지 걸치고 나서, 내 호르몬 수치가 정상치의 약 8배 가량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의사는 종양을 제거하고 나면 해결될 거라며 외과 쪽을 연결해줬다. 수술 이후에는 남은 기관이 호르몬을 정상적으로 분비하기까지 1년 정도 경구 호르몬제를 복용하면서 호르몬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호르몬이 부족하면 나른함, 식욕 감퇴, 구토 증상이 나타나서 이를 보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과다 분비 상태였어서 정상 수준으로 보완해도 몸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라고 의사는 덧붙였다. 하여간에 이 모든 설명을 의사는 상큼하게 해버려서, 청승 떨고 있는 내가 무안할 지경이다.
마치 감기 걸린일마냥, 한 집 걸러 한 집은 다 이 정도는 아픈거 아니냐는 듯.
외과 예약은 한 달 뒤에나 잡혔다. 이왕 슬픈 김에 여름이 가기 전에 수술하겠다는 내 계획은 야무진 것이었다. 대학병원 일정은 절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또 체감했다.
특별히 컨디션 관리하실 것 없습니다, 그런다고 더 좋아질 병도 아니고.
외과의는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등쪽으로 구멍을 낼 것이고, 전신마취 후 수술 자체는 1시간 정도 걸리며 몇시간 뒤면 바로 스스로 걸어다닐 수 있을 거다, 총 입원기간은 일주일 정도 예상하면 된다. 실밥은 일주일 후 제거할 거고 한달 정도면 완전히 정상 생활 가능할 거다. 이러나저러나 겉에서 보기에는 정상인과 차이가 없을 테지만 낮은 호르몬 수치 때문에 기운이 없어서 많은 활동은 하기 힘들 것이다. 등등.
두 번의 입원 전 검사를 더 하고, 나는 날이 차가워지는 어느 가을의 끝에 드디어 병원에 입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