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받다
다섯시쯤 되었겠거니, 눈을 떴는데 아직 한 새벽이다. 모두가 조용하다. 나즈막한 숨소리, 코고는 소리, 뒤척이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간호사들의 말소리. 밤의 차분함이 묻어 모든 게 한톤씩 채도가 옅어진 느낌이다.
나처럼 잠이 일찍 깬 엄마와 속닥이며 1인실을 쓰는 것에 대해 한참을 토론했다. 6인실에서 한 사람 당 주어진 공간은 2평 남짓. 좁기도 좁거니와, 커튼을 사방으로 쳐두어야 그나마 사생활이라는 게 확보 가능하다. 답답한 와중에 천을 뚫고 웬갖 소리가 그 좁은 영역을 침범해온다.
이것도 이전엔 전혀 몰랐던 지식이지만, 다인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어서 병실료가 하루 2~3만원으로 매우 저렴하지만, 1, 2인실은 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비싸진다.
고작 이정도 힘들다고 그렇게 큰 돈을 쓰는 게 맞을까?
우리는 뚜렷한 답 없이 계속 망설였다.
간호사가 1인실은 언제 날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했다는데, 예상보다 자리가 금새 났다. 이제 1인실로 옮긴다는 간호사의 안내가 6인실에 방송되고 나는 왠지 민망함을 느끼며 짐을 챙겼다. 채 수술실에 들어가기도 전인 정오 직전이었다.
창밖으로 한강이 굽어쳤다. 커튼을 안 치고 있어도 된다. 큰 소리로 말해도 되고, 다른 사람의 쓸데 없는 사생활도 안들어도 된다. 딱 3일만 있다가 다시 6인실로 가자고 마음을 먹었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여행지 숙소에 들어온 사람마냥 우리 둘은 들떠있는데, 이제 수술실에 들어가야 한단다.
나보다 훨씬 마른,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 간호사가 휠체어를 들고 왔다.
꼭 휠체어를 타고 가야하나요?
네.
수술실 앞에서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다녀오겠다며 서둘러 인사했다. 이게 또 뭐라고 울 것 같은지, 왜 나는 강하지 못한지 자책을 하며 휠체어에 덩그러니 앉혀진 채 한참을 있었다. 얼마를 그러고 있자니 눈물이 쏙 들어가고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 건지 저멀리 카운터의 간호사들을 향해 고개를 기웃거렸다. 대기실 바닥에는 주차장처럼 휠체어를 하나씩 맞춰 대도록 칸이 표시되어 있어서 나는 공정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 제품처럼 정확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그 칸이 사선인 것조차도 어쩐지 공상과학소설을 연상시켰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간호사와 마지막 문답을 주고 받고 준비를 마치니, 남자 의사 한 명이 와서 날 싣고 갔다. 내 발로 휠체어에서 내려 침상으로 옮겨 누었다. 뭔가, 침대에 실려서 수술실로 들어갈 때 영화 속에서 보던 주마등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걸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러기엔 벽도 밝은 파스텔 색이었고 조명도 환했다. 청승에 젖기에는 분위기가 부족하다.
드디어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수술 기계가 눈에 확 들어왔다. 커다란 기계에는 팔 달린 원형 기구가 두 개 달려 있었고 끝에는 노란색 봉이 있었다. 그야말로 최첨단이라는 인상이었다. 모든 게 너무도 신기하고 굉장해서, 누운 상태로 열심히 눈을 굴리며 사방을 구경했다.
사실 그 순간을 돌아보면, 정말 신나서 흥분한 것인지 신나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수술실에는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 한 사람 한 번 수술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고급 인력이 모였구나. 거기에다 휘황찬란한 수술 기계까지.
마취과 간호사가 마취를 준비했다. 이마에 뇌파 측정을 위한 무언가를 붙였는데 너무도 따가웠다. 그것 때문에라도 얼른 마취를 했으면 싶었다. 마취과 의사가 와서 수술 설명을 또 해줬다.
수술이 끝나면 숨을 크게 쉬어야 해요. 그래야 마취약이 빠져요. 마취가 되고 나면 이 침상에서 수술용 옆 침상으로 옮길 거에요. 수술은 엎드린 자세로 받을 거고요.
그러곤 산소 마스크를 씌우더니 산소를 넣어주고 있으니 숨을 쉬어보라고 했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