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 Oct 30. 2022

병원에서의 시간들

수술 후 퇴원까지



수술일로부터 나는 5일을 더 병원에 있었다. 처음 예정했던 것 만큼이었다. 


헉 밖에서 혼자 걷는다고? 그럼 퇴원해라…
멀쩡하네, 어휴.


수술한 다음날부터 혼자 어기적 걸어다니는 내 사진을 보고서는 아빠와 동생은 아프지 말라고, 그렇게 한 마디씩 했다. 



그리고 잘 먹었다. 온종일 하는 거라곤 누워 있는 게 다인데도 자꾸만 배가 고팠다. 

병원에서 주는 삼세 세 끼도 열심히 챙겨 먹었다. 첫 날은 생각보다 맛있다고 싶었는데, 급식마냥 금새 물렸다. 그래도 때되면 내 병실엔 언제 식사를 갖다주나 문 쪽을 힐끔거렸다. 그걸로도 모자라 소풍 온 사람처럼 엄마랑 편의시설이 모인 지하로 내려 가 틈틈이 빵도 사먹고 밀크티도 사먹고 아예 식당가의 밥도 사먹었다. 일식당 알탕이 눈이 땡그래 질 만큼 알도 신선하고 양도 많았다. 인생에서 제일 맛있는 알탕을, 인생에서 제일 밥맛 없을 시절에 만나다니, 인생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잠은 잘 못 잤다. 입원이 길어질 수록 건강을 더 해치게 되는 거 아닌가? 건강의 기본이 좋은 수면이라는데, 병원은 그러기에 영 어렵다. 병실은 난방이 너무 절절 끓어 잠을 못잘 정도로 덥고 건조했다. 그리고 간호사들이 밤 사이에도 몇 시간에 한번씩 바이탈을 체크하고 여러 처치를 하기 위해 드나드는데다, 각종 기계들이 24시간 돌아가느라 소음을 내고, 병실 밖 복도는 늘 불을 켜두고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니 깊은 잠을 자긴 애초부터 영 어려웠다.



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어. 그렇게 귀가 예민한 양반이 병원 생활을 하려니, 이렇게 계속 소음이 들리는데...


엄마는 오래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병원 생활을 오래하는 게 과연 건강에 좋은 걸까 싶다. 하루종일 병실 아니, 침상에 갇혀있는 것도 정신 건강에 별로다-확실히 나는 그랬다. 



나는 병실에 있는 게 답답증이 나서, 하루종일 일정을 만들고 혼자만의 탐험 계획을 세워 병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아침에는 동 트는 것을 구경하러 옥상 정원에 오르고 점심 즈음에는 지하에 내려가 슈퍼를 구경했다. 오후에는 간식을 싸들고 한적한 곳을 찾아들어가 책을 읽기도 했다. 여기까지 했는데도 심심하면, 병원 한 구석에 장식된 병원 연혁을 구경했다. 다만 엄마와 쌍으로 자리를 비우니 간호사실에서는 자꾸 전화가 왔다. 간호사들의 눈총이 따가웠다. 



사람 구경도 많이 했다. 입원하고서야 깨달았지만, 병원은 마치 거대한 하나의 생태계 같았다. 의사와 간호사, 환자는 물론이고 그밖에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을 반복했다. 청소부도, 식당 직원도, 공조 시설 관리인도, 경비도 다 있었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드라마에서처럼 초록색 수술복이나 하얀 가운, 그리고 한 브랜드의 고무신발을 너나 없이 신고다니는 게 신기했다. 그 브랜드 신발을 애기들 말고는 누가 신나 했더니 죄다 병원 사람들이 사 신나보다. 신발에는 사람마다 알록달록한 장식이 가득했다. 때로는 간호사들의 카드 목줄에도 그 장식이 달려있었다. 뭐라도 재밌고 싶나보다. 고작 며칠밖에 안된 사람 마음에도 십분 그럴 것 같았다. 언젠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의사는 머리가 잔뜩 떡져있었다.    


우리가 지 종이야? 매번 깨워주게? 알아서 일어나라고 해. 


또 언젠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간호사 한 무리는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하루는 또 같은 층의 동지들은 누가 있나 둘러보는데, 죄다 어르신들이다. 병실 앞 환자 카드에 쓰인 이름이며 나이가 훨씬 다 내 앞세대의 것이다. 한 병실당 한명씩은 알록달록한 스티커가 붙어 있다. 주황색 얼굴이 마스크를 쓰고 있거나, 주황색의 손 스티커가 붙어있거나 가끔은 '손+'라는 스티커까지 덕지덕지였다. 위중 환자라는 의미 같았다. 하여간에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노인 환자인데, 내가 이 분과의 질병으로 입원을 하기에는 상당히 '분포 외'임은 확실히 알겠다. 6인실에서 잠시 같이 있었던 나보다 더 어린 친구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그런, 낯선 세계에 떨어져 버렸구나.



그래도 병실 창밖에는 저녁마다 한강 위로 지는 노을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걸 넘어서 참 속도 없이 휘황찬란했다. 이 병원이 '뷰맛집'이라고 했는데-이런 경박하리만치 발랄한 유행어가 어쩌다 병원 세계까지 침투했나 싶기도 하다-자본주의는 어찌나 냉정한지 한강이 보이는 쪽에는 모두 1인실 혹은 2인실만 있고 다인실은 반대편에만 있었다.


철교 위로 하루에도 몇번씩 지하철이 앞뒤로 지나갔다. 그러다 가끔 앞뒤로 지나가는 지하철이 다리 중간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나는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것처럼 혼자 즐거웠다. 티비도 볼 만큼 봤고, 책도 영 내 흥미를 끌지 못하면 그렇게 지하철을 셌다. 



아, 소심한 엄마와 나를 긴장시킨 병실료는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보험 처리가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선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불완전한 자유가 불편했는데, 뒤늦게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비용이 처리가 가능했다. 그런 줄 모르고 병원비 때문에 시무룩해하는 엄마를 위해 내가 간식까지 사줬었는데! 보험사를 통화한 아침 우리는 흥분해서 간호사실에 퇴원 때까지 1인실을 쓰겠다고 공표를 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수술한 사람치고는 잘도 돌아다니고 밥도 잘 먹고 사람도 쳐다볼 정신이 있었나 싶겠지만 사실 컨디션은 왔다갔다 했다. 반짝 좋았다가, 반짝 기운이 없어서 드러눕기를 반복했다. 힘들 땐 모래구덩이에 몸이 쑥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얼른 퇴원하고 싶었다. 억지로 기분을 쥐어짜내도 한계가 있었고 얼른 안전하고 편안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제발, 얼른, 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먹다가 피주머니를 빼고 점심을 먹다가 항생제 주사를 맞았다.



잘 잤다 잘 못잤다 하는 밤을 반복한 끝에 나는 딱 들어온지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날 봐주러 온 '선생님'은 인턴이었다. 호출기의 벨이 울리자 0.1초 사이에 짧은 호흡과 함께 스트레스를 삼키고는 재빨리 "인턴입니다"라고 응답했다. 아...지금 드레싱 환자가 너무 밀려서요. 11시부터는 수술실 들어가야 해요. 다른 사람 없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의사'에게서는 찌든 체취가 났다면 그녀에게서는 찌든 마음이 났다. 길지도 않은 내 드레싱 시간 동안 그녀는 그런 호출을 두 번이나 받았다. 



정산서를 받았다. 한 평생 한 번에 결제해본 적 없는 큰 금액에 마음이 떨렸다. 이미 며칠전에 이럴줄 알고 카드 한도를 늘려두었으나 그래도 떨렸다.  


짐을 정리하고 내복약을 기다리느라 또 한참을 병실에서 하릴없이 기다렸다. 참다 간호사실로 쫓아가니 이제 막 약이 나왔다며 약 한 뭉텅이를 손에 쥐어주는데, 성분이 내 약이 아니다. 간호사도 이상하다 싶었는지 보더니 약을 잘못 가져왔단다. 



들어올 때처럼, 정오가 되어서 나는 병원 정문을 나설 수 있었다. 

금요일에 들어와 목요일에 나가니 정확한 일주일이다. 가을 날씨가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그날은 또 날이 더웠다. 들어오던 날과 달리 단풍이 이 나무 저 나무 할 것 없이 내려앉았다. 빨갛고 노랗고 또 분홍색 같기도 하고. 


차량이 많아 정작 병원을 빠져나가는 데에는 또 한참이 걸렸다. 병원 주변까지 도로가 복잡했다. 병원에서도 평일엔 오전이나 오후내내 엘리베이터 타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나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구성원이 된 그 생태계는 그렇게 거대했다.



사실 그 때는 드디어 병원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기분이 신났다. 

얼마나 신났던지, 예전 버릇을 못 버리고 귀갓길에 엄마와 맛있는 이탈리안을 먹겠다며 외식도 하고 들어갔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전 07화 살면서 처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