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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30. 2022

살면서 처음

수술 직후



천천히 의식이 또렷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동시에 수술 부위보다도 허리와 어깨, 목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너무 아파서, 도저히 그럴 상태가 아닌데도 죽을 힘을 다해 옆으로 돌아누웠다.

토할 것 같았다. 너무도 추웠다. 진통제를 더 투여받고 싶었지만 그건 병실에 돌아가서 주겠다고 해서 이를 악물고 간신히 버텼다.


숨 크게 쉬세요.


환자복이며 시트며 푹 젖어서 더 추웠다. 식은땀이 계속 났다.



간신히 내 병실로 실려온 게 저녁 전이었다. 엄마가 병실에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어놨었다. 날 데려온 간호사에게 소리를 줄이라며 경고를 받았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웬 여유, 라고 못나게도 조금 화가 났다. 그 와중에 노을이 참 예뻤다. 경황이 없었다. 드디어 진통제를 더 놔줬다. 그러고도 견딜 수가 없어 두 번째 진통제를 바로 더 맞았다. 



왼쪽 어깨가 너무 아파서 기실기실 죽어가는 소리로 엄마에게 주물러달라고 했는데, 이미 내 왼편에 있는 엄마는 허둥지둥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왼쪽은 이쪽이야, 하고 없는 힘을 쥐어짜냈다.



담당의가 와서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예상시간보다 훨씬 더 걸렸는지를 물었다.



어, 지방이 많아서 로봇이 제거 부위를 찾느라 시간이 걸려서요. 천천히 접근해야 되는 거라…


아픈 것 때문이겠죠, 아픈 것 때문에…그렇게 두 번을 민망한 듯 덧붙였다.

정신 없는 와중에도 웃기고 창피했다.



의사는 나서며 세시간 뒤에는 죽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절망했다. 병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저녁 시간이라 병동에 들어설 때부터 밥 냄새가 훅 끼쳤기 때문이다. 그 아프고 정신 없는 와중에도 순간 훅 죽을 것처럼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프다니? 어제 저녁 이후 24시간 넘게 금식을 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틈틈이 수액도 맞았을 것이고 어쨌든 겨우 하루 밥 안 먹는다고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닌데도 배가 고팠다.

밥을 먹고 싶고 안 아프고 싶고 살고 싶었다.



그 다음 숙제는 잠들지 않고 소변을 보는 것이었다. 엄마는 잠들지 말라고 나를 채근하며 티비를 틀어주었다. 몽롱한 상태로 오락가락하며 귓가로 흘러가는 티비 소리를 듣는데 엄마가 네가 좋아하는 프로를 한다며 애니메이션 채널을 틀었다. 성우의 아역을 연기하는 목소리가 낭랑하게 병실을 퍼져나가는데 창피하니까 그냥 꺼달란 말을 할 기운이 없었다.



어쩌저찌 쑤시는 옆구리를 붙잡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먹은 것도 없는데 뭐가 나오는 걸까. 엄만 수술하자마자 제 발로 일어나는 게 그래도 어디냐며 기특해했다.

주스를 한 통 마셨다. 24시간만에 첫 음식이 들어가자 기분이 상쾌했다. 영양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과 입으로 섭취를 못하는 것은 확실히 다른 문제인가 싶다. 그러고선 웬 식욕인지 누룽지에 볶은 김치를 야무지게 먹었다. 맛있었다.



수술 부위는 옆구리 쪽이라 엄마가 사진을 찍어준 다음에야 어떤 몰골인지 알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프랑켄슈타인이었다. 의학용 스테이플러가 철컹철컹 박힌 모양새가 딱 그랬다. 그 와중에 피주머니까지 덜렁덜렁 차고 있는데, 그 고무 호스 끝이 내 몸 속에 꽂혀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했다. 두들겨 맞은 것도 아닌데 수술 부위는 피멍이 잔뜩 들어서, 멍에 핏물에 노란 소독약에 수술 때 표시를 해둔 흔적까지 얼룩덜룩했다. 



진통제 주사를 또 맞고 영화를 한 편 보면서 잠들었다. 병실이 너무 더워 밤새 땀을 비죽비죽 흘렸다. 

밤새 간호사가 여러차례 드나드며 또 다른 주사를 놓고 바이탈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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