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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30. 2022

마지막 잎새

응급실에 가다



피로감. 나른함. 무기력증. 


수술 예후에 대해 들었을 때 내가 당장 떠올린 것은 <마지막 잎새>였다. 파리한 흰 얼굴의 소녀가 마른 팔을 이불 밖으로 내놓은 채, 힘없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차가운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의 잎새 하나. 그것만이 소녀의 유일한 위안거리이다. 고통에 지친 소녀는 그 이파리마저 떨어지고 나면 자신도 같은 운명에 처해버릴 것이라고 믿으며 한껏 우울에 젖어 있다. 



나도 꼭 그럴 줄 알았다.

어느 정도는 그렇기는 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쉬는 게 내게 주어진 유일한 할 일이었으므로, 나는 소파에도 눕고 차에서도 눕고 침대에도 눕고 기회가 되는 대로 당당하게 여기저기 뻗어 있었다. 살면서 처음 내본-내가 내게 될 줄 몰랐던-병가는 수술 후 한달 정도였고, 날은 마침 <마지막 잎새>처럼 겨울로 접어드는 때였다. 거실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면 있노라면 소설의 배경같이 빛바랜 낙엽들이 찬 바람에 뒹굴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온갖 쓸데없는 것들을 탐독했다. 안보던 예능 프로그램을 예전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고 인터넷의 온갖 반쪽자리 지식들을 대충 머릿 속에 욱여넣었다. 책은 생각보다 손이 안갔다. 두통이 계속 되었다. 두통인지 아닌지 애매하지만 무언가 거슬리는, 토할 것만 같은 그런 상태. 식은땀이 죽죽 나는데, 언제 왜 그러는 것인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걸핏하면 복통이 생겨 화장실을 달려갔다. 괜찮나? 안 괜찮나? 하루에도 몇번씩 질문해봐도 잘 알 수가 없었다. 



하여간에, 아프다는 건 그렇게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창백하고, 나른하고, 무엇보다도 낭만적이지 않았다. 나는 무슨 대단한 착각을 했던지, 퇴원한 주말부터 긴 시간 상연하는 공연도 예매해 두었었다. 난생 처음하는 휴직이니까, 평일에 여유 있게 시간을 쓸 수 있으니까, 안전한 백수처럼 지내봐야지 했던, 순진한 생각이었다. 결국 식사 예약은 취소하고, 공연은 취소 불가라 식은땀을 흘리며 세시간을 간신히 앉아서 버텼다. 미용실 예약에 맞춰 집을 나섰다가 배가 너무 아파 급하게 상가 화장실로 뛰쳐가느라 예약은 취소당하고 선금을 날리기도 했다. 그 날은 그 돈이 너무 아깝고 내 상황도 분해, 길거리에서 서럽게 울어버렸다.   


또 다른 날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공연장으로 연극을 보러갔는데, 상태가 나빴다. 평일 저녁 도심의 어두운 뒷골목을 휘청거리며 지나가는데,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사람들이 문 밖까지 넘쳐흐르는 식당 앞에서 몇몇의 무리가 담배를 피고 있었다. 독한 연기가 온 몸의 세포에 아무런 저항 없이 마구 침투하는 게 생생했다. 저리 꺼지라고 악을 지르고 싶은 걸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참았다. 그러고선 내가 즐거운 문화 생활을 하는 건지, 불안해하며 고행을 견뎌내는 건지 알 수 없게 공연장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세시간을 갇혀있었다. 

아프다는 건 괴롭고, 당혹스럽고, 무엇보다도 현실적이었다.  




간신히 첫 주말을 넘기고 난 다음 날, 속이 너무 울렁거려 잠이 깨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밤사이 먹은 게 없으니 나올 것도 없어야 할텐데 웬 샛노란 덩어리를 게워냈다. 그게 위액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한창 술마시던 20대에도 본 적 없는 걸 이렇게 마주치다니? 목구멍이 미치도록 썼다. 


난 그대로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실려 응급실로 갔다. 살면서 첫 응급실이었다. 하여간에 아픈 이후로 별의별 첫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엄마는 정신없이 주차를 하고, 휠체어를 기어코 찾아내 나를 앉히고, 낑낑대며 그 휠체어를 입원실 앞까지 끌었다. 환갑도 넘은 엄마가 젊은 딸의 휠체어를 끄는 모양새가 제법 사나웠다. 나는 눈도 못 뜨고 기진맥진했지만 민망한 줄은 알았다.



입원 때도 그랬지만 응급실에 들어가는 것도 코로나 때문에 녹록지 않았다. 거의 겨울에 가까워진 날씨에도 여지 없이 코로나 검사를 해야만 했다. 야외 검사소에서 속성으로 검사를 하고 한참을 대기한 끝에야 겨우 응급실 한 구석의 침상에 누울 수 있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내 증상을 듣더니 약간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처방을 내렸다. 굳이 수술한 병원까지 달려온 거면 더 개운한 진단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렇게 툴툴거리며 누워있는데 응급실은 6인실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시장통이었다. 옆 침상의 할아버지는 급하게 입원할 병원을 찾느라 할머니에게 호통을 치며 시끄러웠다. 할머니는 초조하게 여기저기 병원 전화를 걸었고 할아버지는 서슬 퍼런 호령을 내리며 못마땅해 했다. 뭐든 조용했으면 좋겠다. 여기서는 나을 것도 안 낫겠어. 화낼 힘도 없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렇게 시장 바닥 같은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느라 어쩔 수 없이 몇 시간을 있는데 약 때문인지 쉬어서인지 어찌저찌 정신이 났다.



그렇게 개운한 마음으로 여기서 탈출했는데 삼일만에 응급실로 돌아와버리다니.

이 몸에는 함부로 기대를 하면 안된다는 것을 그렇게 배워갔다.




외과 의사는 수술이 잘되었다고 했다.

내과 의사는 한 술 더 떴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재간이 좋은 사람이었다.


몸이 힘들어요? 수술이 아주 잘 되어서 그래요!


속이 느글거리는 것은-옳은 표현이다. 계속 거친 파도를 타는 것처럼 머리도 속도 울렁거렸다-호르몬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니 호르몬 복용량을 늘리자고 하였다. 그즈음 피부도 하얗게 버짐이 피었는데, 그것도 호르몬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했다. 넌 참 많은 일을 했었구나.


그러면서도 회사 복귀는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아프면 복용량을 더 늘리고 괜찮아지면 알아서 줄여보라고도 했다.


그는 참 명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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