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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30. 2022

하나도 쉽지 않지

허리 통증으로 고민하다



한 가지 고난에 익숙해지려고 하니 예상치 못한 더 큰 고난을 마주친다.


허리가 이전보다 훨씬 심각했다. 몇 달 내내 나는 허리가 쑤시고 엉치부터 복숭아뼈까지 너무 저려서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이 끙끙 앓았다. 찾아보니 원래도 허리병은 점점 심해져서, 처음에는 물리치료 정도만 받아도 금새 낫지만 나중에는 다시 아파지는 주기가 짧아져서 종래에는 통증이 방사통까지 이어지는 거라고 한다. 딱 나다. 



나는 MRI를 다시 찍어보았다.



이전에 터진 크기와 비슷하네요? 원래 이게 자연스럽게 말라서 시간이 지나면 좀 줄어들 거든요. 그런데도 크기가 2년전이랑 비슷한 걸 보면 그사이에 더 터진 것으로 같아요(그래도 이정도면 거의 터질만큼 다 터진 것 같긴 하네요,).
전 원래 수술하지 말자는 주의지만, 이건 누가 보고 수술하자고 해도 이상한 수준은 아니네요. 요새는 안째고 내시경으로 긁어내는 정도로 수술을 하니까 생각해볼만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오랜만에 만난 영상의학과 의사는 또 물기 없는 표정으로 무시무시한 말은 했지만,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우는 건 한 번으로 족했다.




그렇게 허리 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아닌지, 온 의사의 소견을 받으며 몇 주가, 몇 달이 지났다. MRI 영상은 필수품처럼 늘 소지하고 다녔다. 처음 간 대학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야 되겠다며 엉겹결에 바로 입원 날짜까지 잡아버렸다가 도저히 이 체력으로 또 다른 수술을 받을 자신이 없어 취소를 했다. 또 다른 대학 병원에서는 내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듯 수술은 내가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충동적으로 들어간 낯선 동네의 정형외과 의사는 수술밖에는 답이 없겠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오래전 다니다 말았던 옆 동네의 정형외과 의사는 그렇지만 내 딸이라면 절대 수술 안 시킬 거라며 열을 올렸다. 



어쩌라는 거지?


솔직하게 말하면, 짜증스러웠다. 나에게 선택권따위는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나는 괴로운데, 자꾸 의사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듯이 굴었다. 나는 그들의 전문 지식으로 결정을 내리고 싶었지만, 결국 그건 온전히 내 몫이라는 소리뿐, 아무도 나를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물리 치료도, 진통제도, 주사도 듣지 않으니 사실상 나에게 남은 건 수술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술을 반대하는 의사와 뭇 온라인 환우들의 의견은 그런 것이었다-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정상 조직을 일정 부분 제거하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허리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허리가 약해지면 허리 통증은 또 재발한다. 


한편, 두번째 대학 병원의 의사는 수술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내 몫이지만, 마미총 증후군이 오면 반드시 24시간 이내에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신경이 죽어버려 하반신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마미총 증후군이 오면 대소변장애가 생긴다. 나는 버티고 버티다, 어느 날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게 되면 급하게 병원에 실려가야 할 판이었다.


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수술 후 컨디션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호르몬 상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호르몬 수치 검사를 무리해서 해보았지만, 아직 남은 기관은 세상을 떠난 제 짝궁의 몫만큼 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검사 때마저도 몸이 안좋아 검사를 대기하며 병원 의자 아무데나 벌러덩 누워 있었다. 아프면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가 없다. 체면이고 뭐고 당장의 고통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언젠가 병원 예약을 나서려는데, 그날 따라 컨디션이 정말 안좋아서 예약 시간을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 하필 병원도 먼데, 도저히 대중교통으로 한시간 거리를 갈 만큼 몸이 안정적이지 못했다. 결국 예약 시간을 미루고 한 시간 억지로 잠을 자다가, 이제는 갈 수 있겠거니 하고 샤워를 시작하는데 또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그대로 기절할 것 같았다. 나 지금 혼자인데, 단단한 게 많은 욕실에서 쓰러지면 대형 사고다. 어딘가 분명 깨지고 피가 터질 거야. 그런 위기감에, 젖은 몸도 채 닦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침대로 뛰어갔다. 그러곤 벌벌 떨면서 또 한참을 누워있었다. 이불을 축축하게 적시며 그렇게 누워있는데, 사는 게 뭔가 참 서러웠다. 



또 하루는 허리 때문에 먹는 소염진통제를 빈속에 먹지 않으려 억지로 아침을 먹은 날이었다. 그 동안 컨디션이 떨어져서 아침을 거른지 꽤 오래였다. 아침으로 먹은 것도 그래봤자 누룽지 끓인 것 정도였다. 뭐가 안좋은지 화상 회의를 시작하고 나서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이대로는 혼자서 쓰러질 것 같아서 침대에 누웠다가, 순간 구토감이 강하게 들어 노트북을 들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노트북에서는 동료가 열심히 업무 얘기를 진행하는데, 나는 변기를 붙잡고 죽는 소리를 내며 변변치 않은 아침을 게워내고 있었다. 그 부조화에 나는 내가 뭘 하는 짓인지, 이대로 계속 일을 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회의감이 몰아쳤다.



어쨌든 허리가 아프니 앉아서 일을 하는 게 불가능했다. 30분 이상 앉아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마음을 포기하고 가능한한 누워서 일을 했다.



이전처럼 일할 수 없었다. 나는 참말로 다시 휴직을 해버리고 싶었다.

이러고 있는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전에 하던 만큼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는 게 너무 괴로웠고,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회사 사람들은 충분히 나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었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링 밖으로 나가버리고 싶었다.

팀장님과의 면담에서도 울면서 울면서 그렇게 고백했다. 도통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그냥 다시 휴직하겠다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삶이, 절망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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