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을 들락거리다
아픈 건 현실이다.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릴 새도 없이 질병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하나의 고쳐야할 문제. 시험들이 그랬고 취업이 그랬고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해결책이 필요한 문제. 거기엔 하염없는 대학병원의 대기와 그에 반비례하는 짧은 진료 시간, 나같은 환자를 다루는데 이골이 나서 지나칠 정도로 효율적인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비싼 병원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에서 의뢰서와 촬영CD를 받고 그 병원에서 연결해준 대학병원으로 진료를 보러 갔다. 대학병원은 많이 효율화되었다는 인상인데도 하염없는 대기가 필요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키오스크로 CD 영상 등록을 하고. 바로 진료과로 달려가 접수를 완료하고. 지정된 진료실 앞에서 기다려니 대기자 명단을 보여주는 화면에 내 이름이 보이지를 않는다. 11번째여서 아직 화면에 표시가 안되는 것이랜다. '상담지연'이라는 글자가 화면 아랫쪽에서 번쩍고 대기 시간은 30분을 넘어갔다.
‘상담지연’을 지루하게 기다리며 병원을 휘휘 둘러본다. 사람이 많다.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할 것 없이 별 사람들이 다 흘러 간다. 이 사람들이 다 아픈 걸까...어디가 아파서 평일 한낮에 정신 없는 대학병원 로비에서 이 방향으로 또 저 방향으로 떠다닐 수밖에 없는 것인지, 답이라도 찾을 기세로 면면을 곰곰이 뜯어본다. 물론,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아프면 세상이 달라보인다. 모든 얼굴이 묘한 느낌으로 읽힌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참 많구나. 살면서 한 번도 알지 못했던 세계가, 질병과 함께 갑자기 열리곤 한다.
의사나 간호사, 직원은 각오했던 것보다는 친절했다. 아니 친절하다기보다는 전문적이고 사무적이었다. 격무에 시달려서 그렇겠지, 해보려다가도 여전히 그 특유의 불쾌함이 남는다. 다들 자기가 아는 기준으로 말하고, 내 이해를 고려하지 않는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난 이 병도 처음이고 이 병원도 처음이고 당신도 처음이고 당신이 설명하는 일들도 처음이고 나한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게 없는데.
한 것도 없이 진료비는 24만원이 나왔다. 키오스크로 결제를 하려다가 깜짝 놀라서 대기표를 뽑고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수납 창구로 갔다. 어떤 구성으로 이 금액이 청구되는 건지 궁금하다고 물어보니 그건 진료상세내역서에 표시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일단 돈을 내란 말씀이시군요.
진료비를 내고나니 쓸데없이 돈이 아까워져, 무거운 짐에 우산까지 들고 버스와 지하철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얼마나 돈이 더 들까. 이럴려고 돈 벌었나. 돈 버느라 아프고 아픈 거 고치느라 돈 쓰고. 자본주의가 내 덕에 잘도 돌아간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는 점심 때 먹은 튀김덮밥이 탈이 났는지 한참을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기운을 뺐다. 기분이 울적하다고 괜히 기름진 음식을 사먹은 댓가가 크다.
이젠 기름진 음식을 감당하지 못하는 그런 몸이 되었군.
그렇게 먹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 아파서 소화 능력도 떨어져 간다니. 인생은 슬픔과 좌절의 연속인걸까.
무슨 사정이 있는지 회사 동료의 반려견이 갑자기 주말 사이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덤덤한 성격이었던 동료는 괜찮냐는 간단한 질문 단 한 마디에 순식간에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저 드는 생각은, 사람 기분이 저런데 무슨 일이냐, 하는 것. 슬픈만큼 슬퍼할 시간이 더 중요하지, 이게 뭐라고. 내 기분도 그렇다. 이 상황이니만큼 성실하고 싶다가도, 이 상황에서조차 그래야 하나 싶고.
마음이 깊은 바다에서 표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