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 Oct 30. 2022

무언가 이상하다

수술을 통보받다



어딘가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꽤 오래되었다.



일단 살이 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확찐자’같은 말장난이 성행하였고 나도 그 중 하나이려니 했다. 아무래도 활동량이 줄고 집에만 있는데 달고나 라떼같은 게 유행하니 별 수 없지. 활동량이 줄었다고 먹는 걸 소홀히 한 것도 아니니 당연하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몸무게가 야금야금 늘어나 인생 최대치쯤 이르자 약간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소극적인 체중 감량을 시도하였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 또한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니, 속상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두 해 전 가을을 넘기고 겨울이 되니 확실히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 얼굴에 두둥실 살이 올랐다. 아무리 살이 쪄도 늘 얼굴이나 손목, 발목은 빼쭉 말라서 남들을 속이기 참 쉬웠는데, 볼살이 빵빵하게 차올랐다. 얼굴에 살이 오르니 이목구비가 상대적으로 옹졸해졌다. 그렇게 체중계의 눈금도 난생 처음보는 데까지 한 칸 한 칸 착실히 올라갔다.



이상한 징조는 또 있었다. 멀쩡히 길을 가다가 넘어지지를 않나 버스를 탈 때 한번에 계단을 올라 설 수가 없었다. 워낙에도 성미가 급해 여기저기 부딪치는 일이 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번화가 한복판에서 약간 파인 홈을 밟았다고 그대로 데구르르 자빠지다니? 꼬부랑 할머니도 아닌데 버스 출입구의 단차 한 칸을 한 번에 올라서는 게 버겁다니?



제일 이상한 건 눈에 띄게 피부가 얇아지는 것이었다. 푸른 정맥이 거미줄처럼 뻗은 게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할 정도여서, 해부학 교실 책상 위에 대짜로 뒤집어진 개구리가 된 것 같았다. 난생 처음 투명한-창백해진-피부에 우쭐하다가도 두려움이 몰려왔다.



호르몬의 문제이지 않을까? 그런 짐작을 하고는 병원에서 MRI를 찍고 혈액 검사를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살이 쪄서 그럴 거라고, 별일 아닐 거라고, 대충 생각하고 말았던 게 분명하다.



설마 무슨 문제가 있겠어?



태평하게도 교외에 새로 생긴 아울렛을 둘러보고 있던 평일 오후였다.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MRI 결과… 3cm 가량의 선종이 발견되어서…내원해서 의뢰서를…상급병원 정밀 검사가…”

앉아 있던 벤치가, 옷가게에 가지런히 정렬된 옷들이, 단단한 입구문이, 깨끗한 돌바닥이 아득해졌다. 형형색색 온갖 사물들이 마구 뒤섞였다. 철렁. 마음이 바닥으로 급강하했다.    

그 때 하필 엄마와 같이 있었는데 그렇게 눈 앞이 뱅글뱅글 도는 와중에도 어떻게 이걸 잘 전달하지, 그 걱정이 앞섰다. 눈물이 왈칵 솟았던가?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애써 그것들을 욱여넣었다. 잘 되었는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서 온 전화였는데, 뭐가 나왔대. 와서 진단서 받아가라고…

혹이…있대.


수술해야 될 거래.






낯선 이름의 질병을 알아가는 데에는 하루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 지식 너머에 참 거대한 세계가 있었다.


복강경. 배에 구멍을 뚫을지도 모르는, 내 인생 초유의 사태. 늘 건강검진을 위한 사전문진에서 수술 경험 유무를 묻는 질문에 0.1초도 안 걸리고 ‘아니오’를 대충 체크하곤 넘어갔는데, 이제 더는 그럴 수 없다.

이렇게 매번 인생 첫경험을 갱신하며 사는구나.



배에 구멍을 뚫을지도 모른다는 아찔함 이전에 한 가지 의문을 해결할 수 없었다.



왜 나야. 왜 하필 나야.



불치병 환자가 등장하는 영화 속 대사들이 참 진부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고작 저런 말밖에 쓰지 못하는지 투덜댔는데, 아니었다-이렇게 늘 반성한다. 나는 인생을 잘 몰랐고 그래서 늘 화나고 답답하고 냉혹하였지만, 실은 내가 인생을 모르고 이해심이 부족한 멍청이였을 뿐이다. 누구든 사람이 아프면, 큰 병을 갑자기 선언받으면 그런 기분이 들고 그런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답을 해줄 수 없는 질문만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그냥 그런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서러운 기분이 파도처럼 몰아치고 사그러 들었다가 다시 몰아쳤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의학백과가 알려주는 이런저런 원인을 쭉 탐독하고 머리를 굴린 결과 결국 만성 스트레스가 제일 그럴싸한 원인으로 낙점되었다. 그것 참 현대인이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아주 뻔해서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어느 질병 때문에 어느 병원을 가도 어느 의사든 기본값으로 늘 하나씩 끼워넣는, 그 흔한 이름! 나는야 인간 개복치!



마음이 붕 뜬 것 같았다. 

병원 밥은 맛있을까. 나는 평소에도 저염을 하는 편이니 그렇게 못먹을 맛은 아닐 거야. 책을 가져가는 게 좋겠지, <돈키호테>  어때. 두꺼워서 한 권이면 충분할 것 같고 뭔가 헛소리를 잔뜩 읽고 싶은 기분이군. 쟁여두고 아직 못 읽었던 과학 상식 만화 3권짜리도 괜찮지 않을까. 뭐 어차피 글씨가 눈에 들어오겠어?


쓸데없는 망상이 두서없이 머릿속을 흘러갔다.



이전 01화 일상적인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