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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지 Jan 16. 2021

기쁠 때는 기쁘게,

슬플 때는 슬프게 말이지! 날짜 미상.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기쁠 때는 기쁘게, 
슬플 때는 슬프게 말이지! 

그런데, 기분이 나빠도,
기쁘게 표정 지으면, 다른 사람 기분도 달라질 수 있거든. 

엄마.
(날짜 미상)




"기쁘다!"라고 진심을 다해 말해본지가 좀 되었다. 진짜 기쁜 일이 없었다기보다, 순간의 감정이 얼마 못 가는 걸 알고 난 뒤부터 오래가지 않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혹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심성이 생긴 탓이라고도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내 기쁨이 누군가에게는 슬픔이 되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한 감정 표현이 나라는 사람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했던 탓에 오해를 받고 싶지 않은 오기로 표현을 점점 더 줄여간 것도 있다. 


때로 일부의 감정들은 말을 내뱉기도 전에, 혹은 내뱉는 도중에 사라지기도 했다. 벅찬 감정으로 입을 여는 순간 허공에 흩어지듯 없어지는 마음이 스스로도 당황스러운데 그 과정을 설명하기란 더 어려운 일이었다.  평온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과 결합해 시간이 지날수록 실제로 느끼는 것보다 덤덤한 표현을 선택하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는 감정적인 부분은 정말 가까운 사람 외에는 잘 표현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본성은 못 버리는지라, 감정적인 덕분에 내면이 요동친다. 


그러다 보니 얼마 전 까진 "모르겠어."라는 말을 더 자주 했다. 예전엔 어떤 감정에 대한 원인도 단순하고 그 원인을 시작으로 결과에 이르는 감정까지 가는 길목이 매우 단순하고 길이도 짧은 일직선 차도였다면, 요즘에는 도착지를 모르고 달리는 산길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무 감정한 상태로 살 수도, 표현하지 않고 살 수도 없다. 혼자 감정을 삭히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주는 감정적인 영향을 전달하지 않는 건 로봇이 아닌 이상 어렵지 않을까 싶다. 아마 나만 겪는 일은 아닐 거다. 그러니 내 마음 찾기, 내 마음 깨닫기, 명상 등이 점점 사람들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겠지 싶다. 


우리는 언어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많은 감정을 전달하게 된다. 얼굴 표정에서 몸짓에서 온 몸으로 감정을 뿜어낸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내가 어떤 감정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 인지 깨닫는 것, 엄마가 말한 대로 '기쁠 때는 기쁘게, 슬플 때는 슬프게'를 아는 것 말이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 나의 상태를 알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이에 느껴지는 감정을 파악하고 내가 어떻게 할지를 정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게 정리가 되면 나에게도 감정의 여유 공간이 생긴다. 상황에 따라 진정한 공감이 아니더라도 한번 더 배려할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은 엄마가 말한 대로 '기분이 나빠도 기쁘게' 표정을 지어 볼 수 있는 마지막 여유다. 그 공간 속에서 생긴 기쁨은 감정을 파악하기 전에 무의식 중에 나오는 가식이 아닌, 내가 나를 정확히 알고 난 뒤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이 된다. 




다행인 건 엄마의 쪽지에서 '이렇게 해야 해.'라고 어떤 지침을 전달하듯 말을 마무리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엄마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기분 나쁜 순간에 내가 왜 기분이 나쁜지와 이게 기분이 나쁜 일인지를 파악하는 게 힘들다는 걸. 그리고 혹은 나를 상대로 기분이 나쁜 순간에 기쁘게 표정을 짓는 것이 힘든 체험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거든.'

딱, 여기까지. 


할 수 있는 선에서의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힘들면 그만 하도록, 그런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게 '그럴 수도 있거든'이라는 말이라 생각한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챙기는 억지 예의보다, 내가 나를 먼저 챙긴 뒤에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여유 가져 보도록 제안해 준 것이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RE : 

엄마, 나는 기쁠 때는 기쁘게, 슬플 때는 슬프게를 아는 사람이 되었지. 그리고 기분이 나빠도, 기쁘게 표정 지으면 다른 사람 기분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지. 그렇게 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나아가 '기쁘게'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도, 어떤 사람들은 기쁜 표정을 짓지만 그 표정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야. 


그래서 나부터 기쁜걸 기쁘게 받아들이고, 슬픈 건 슬플게 받아들이려고. 그리고 기분이 나쁜 걸 제대로 표현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돼볼까 해. 


2021.01.16. 예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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