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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지 Apr 01. 2020

엄마에게도 참을 수 없는 것

어디서나 정당했으면 한다. 1994년 12월 6일

엄마에게도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단다. 

그중에서도 바르고, 반듯해야 할 내 자식이,
눈속임을 하는 것이다. 

눈속임은 쉬울 지몰라도 그것은 금방 탄로가 나거나, 
자신도 함께 매일 속이는 일이다. 

엄마는 예지가 어디서나 정당 했으면 한다.
1994.12.6 엄마 

   


4월 1일 만우절. 


이제는 학창 시절만큼 실감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에서 알려주는 위트 있는 장난들 덕분에 만우절 느낌이 좀 난다. 비록 네이버 웹툰 담당자들이 오늘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먼저 떠오르는 천상 직장인이 되었지만 말이다. 


만우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거짓말'. 


공식적으로 거짓말을 해야 되는 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는 교육을 받는다. 엄마는 거짓말 대신 '눈속임'이란 단어를 더 자주 썼는데, 그 단어는 내가 하는 거짓 말이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언젠가는 다 알게 된다. 




어린 시절 가장 크게 혼난 이유는 단연코 거짓말이었다. 보통 체벌을 하지 않는 부모님은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거짓의 크기와 경중과는 상관없이 얼굴 표정이 굳으시며 꼭 짚고 넘어가셨다. 나는 꽤나 많은 이야기했던 수다쟁이였고, 수다를 떨면서 흥분하는 만큼 본래 있었던 사실에 허풍과 상상이 덧붙여지곤 했는데 가끔은 그 때문에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거짓말을 하곤 했다. 


유치원쯤일까, 친구의 친구 생일 파티를 갔을 때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줄을 잡아당기면 회전하며 날아오르는 피터팬과 팅커벨 인형 세트가 막 출시되었었다. CF 속에서만 보던 그 인형을 생일을 맞은 친구가 선물을 받았다. 줄을 한번 돌릴 때마다, 온 친구들의 관심과 흡모를 한 몸에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일이니까 그 친구가 주인공이 되는 건 당연한데 그 피터팬 인형이 빙그르르 돌면서 어린 내 이성도 같이 돌았는지 그 친구가 순간적으로 부러워졌었다. 나는 "저거 우리 집에 세트로 다 있어"라는 거짓말을 했다. 관심이 나에게 몰려들면서 누군가 우리 집에 가서 그 인형을 보자고 했고, 그게 거짓말이라고 하지 못했던 나는 그대로 집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들어왔던 것 같다. 당연히 우리 집엔 그런 인형의 날개쭉지도 없었다. 


우르르 친구를 끌고 집에 들어온 나를 보고 난 뒤 엄마는 내 뒤에 선 친구들의 말을 듣더니, 내가 스스로 친구들에게 거짓말이라는 걸 밝히라고 했다. 쪽팔리고, 서럽고, 무서웠다.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친구들이 다 빠져나가고 난 뒤 엄마와 단둘이 남아서 또 혼났던 기억이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엉엉 울었다. 기운이 쏙 빠질 때까지. 


그게 내 기억 속 첫 거짓말과 혼남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어린 나에게 가서 말하고 싶다. '그렇게 뻔히 걸릴 그런 거짓말을 왜 해 대체?' 그때도 엄마는 친구들에게 눈속임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어린아이 심경에 이해하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 있겠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면 안 되는 것을 명확히 알려줬다.



정당하게 살기 힘든 세상이다. 


때론 오래가는 거짓말도 있다. 아주 잘 짜여서, 모두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심지어 거짓말을 한 사람 조차 깜빡하고 넘어가 그걸 진실같이 느끼게 된다. 그럼, 그렇게 하고 넘어갈까? 하는 잔꾀가 생긴다. 그게 쉬운 길이니까. 그러나 결국 다른 모든 사람의 눈은 속이고, 스스로가 아무리 외면해도 자기 자신은 안다. 엄마가 말한 대로 자신을 매일 속이는 일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처음이 힘들지 자주 하면 어렵지도 않다. 나쁜 것은 늘 내성이 생긴다.


엄마는 거짓말이란 단순히 사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듣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기만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알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딸이  잠깐의 기분에 휩싸여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이고 넘어가는 모든 행위를 하지 말았으면 했던 것 같다. 


친구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좋다.'라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다른 사람 눈치를 봐서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은 별로라고도 덧붙였다. 그랬더니 친구가 '맞아, 자신의 품위를 지켜야지'라고 답하더라. 정당한 사람은 잠깐을 위해 자신의 품위를 버리지 않는 선택을 한다. 



엄마는 예지가 어디서나 정당 했으면 한다. 

엄마, 나도. 



RE : 

엄마, 

엄마가 여전히 참을 수 없어하는 것이 눈속임이지. 그리고 나에게 거의 유일하게 용납하지 않는 것도 눈속임이지.  


이제 어이없는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살면서 더 교묘하게 스스로에게 눈속임을 할 때도 있지 않을까 싶어. 심리학에서는 거짓말을 합리화의 적응 기재라고도 표현하더라. 


최소한 스스로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말들을 돌이켜 보며 정당하지 않게 살고 있지는 않는지 검열해볼게 


엄마 딸, 품위 있는 편이잖아. 

2020.04.01 예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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