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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Jul 02. 2024

프루스트와 오징어

본격 독서 장려 도서, 매리언 울프 《프루스트와 오징어》

뇌과학, 언어학, 진화론과 문헌학을 망라한 본격 독서장려도서. 읽고 나면 읽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책. 매리언 울프 없이 언어 습득과 문해력을 논할 수는 없다. 수려한 문장 속 활자와 텍스트에 대한 울프의 진심에 피곤을 무릅쓰고 아이들 독서통장을 꺼내 잠자리 독서도 기록했다.



“프루스트는 독서를 일종의 지성의 성역으로 보았다. 다른 데서는 결코 만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했을 수천 가지 실체와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곳, 각각의 새로운 실체와 진실을 통해 편안한 안락의자를 벗어나지 않고도 독서하는 사람 스스로 지적인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p.33


이 책에서 울프는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를 메타포로, 하등동물로 과소평가되어있는 오징어를 유추적으로 사용해 독서의 두 가지 측면을 묘사한다. 우리 뇌가 독서할 때 일어나는 작용과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방식을 연구는 과거의 초창기 신경과학이 오징어를 연구하던 것과 비슷하다고.


그래서 제목이 《프루스트와 오징어》다. 2009년 출간됐던 《책 읽는 뇌》가 재출간되며 원제 《Proust and the Squid》를 되찾은 셈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헤세의 지와 사랑, 엘리아데의 성과 속, 매리언  울프의 프루스트와 오징어까지. 어쩐지 맞춘 듯한 리듬감의 원제가 훨씬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기존에 출간된 제목 《책 읽는 뇌》 역시 내용을 잘 함축한다. 문자에 처음 노출되었을 때부터 숙련된 독서가가 되기까지의 뇌 발달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알파벳이 기준이라 한글과 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보편적 언어 습득을 다룬다는 점에서 양육자, 선생, 그리고 독자에게 스스로와 아이의 뇌 구조를 유추해 보는 흥미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가장 큰 수확은 역시 ‘독자를 기르는 일’에 다시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된다는 것.


연구에 따르면 유치원에 들어가는 연령이 될 때까지 ‘언어적으로’ 빈곤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풍부한 자극을 받고 자란 아이 사이에 이미 3200만 개의 어휘 격차가 벌어진다. 부모나 다른 어른이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보낸 시간의 양은 몇 년 후 그 아이가 성취할 독서 수준을 예견하는 좋은 척도가 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발달의 한가운데에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돌봐주는 사람의 무릎에 앉는 순간 독서라는 행위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합칠 수 있게 된다고. 그 고요함이 사랑받는 느낌이었다니. 8개월 아기에게 그림책이 더 좋겠지만 주식 가격, 도스토옙스키 소설, 무엇이든 읽어줘도 좋다고. 이것은 문해력과 학습 과정이라는 긴 프로세스의 출발점이며 교육학 박사라도 그보다 나은 환경을 조성해줄 수는 없다고 책은 덧붙인다.


흔히 영어 독서 커리큘럼을 적용할 때 영어 실력보다 모국어 독서력을 중요하게 꼽는데, 매리언 울프에 따르면 이는 당연하다. ‘이상적인 무릎’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영어 독서학습도 훨씬 수월하다. 영어 동화를 읽으며 제1 언어에서 친숙했던 단어, 개념을 제2 언어에 연결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시사점은 독서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울프는 강조한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발달하는 뇌의 모든 부분을 총동원해 독서 능력을 학습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2000일 동안 단어, 개념, 사회적 관례, 그 무엇 하나 무심코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이들의 향후 독서 발달과 그들의 삶 전체에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된다.” p.199


외람되나 어제는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이런 광고 카피를 보았다. “당신이 야식으로 치킨을 먹는 사이 부자들은 젊어지고 있다.” 하. 헛웃음이 났다. 물론 시선 강탈에는 성공.


끝 모르고 치닫는 배금주의 시대, 읽지 않는 세태를 우려해 재탄생되었을 이토록 아름답고 매력적인 독서장려책이 부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CCC의 최고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에 따르면 지적자본도 엄연한 자본이다. 무심코 숏폼을 보는 사이 부자들은 책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luv_minyu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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