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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10. 2022

이웃엔 농사 전문가들이 살고 있다.

(텃밭 이야기, 방울토마토)

자그마한 텃밭엔 10여 가지의 채소가 자라고 있다. 자그마한은 얼마를 뜻하는 것일까? 나름대로 짐작해서 사용하는 단어겠지만, 나의 텃밭은 대략 예닐곱 평정도의 밭이다. 여름을 빛내주는 갖가지 상추가 있고, 다양한 종류의 고추가 자라고 있다. 두 식구의 입을 즐겁게 해 줄 양이면 족하니 각각 10포기 정도면 충분하다. 거기에 대여섯 포기의 가지가 있고, 손녀의 입을 즐겁게 해 줘야 하는 방울토마토도 있다. 다양한 상추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두 입을 즐겁게 하고도 많은 양이 남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추와 쌈추라는 것도 심었다. 쌈추, 쌈을 싸 먹는 배추 맛이 나는 아삭한 채소다. 배추와 양배추를 교잡하여 만든 쌈추를 대여섯 포기 심었다. 몇 포기의 쌈추도 두 입으로 넣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 점차 시간이 지체되자 쌈추가 화가 났는지 잎사귀가 배추처럼 커졌고, 결국에는 꽃을 피우고 마는 것이 아닌가? 두고 볼 심산으로 내버려 둔 쌈추는 배추가 되었고, 쌈추로 호강하게 된 것은 이웃집 닭이었다. 아내가 뽑아준 쌈추는 20여 마리의 이웃집 닭의 풍성한 식사가 된 것이다. 순수한 아마추어 농부의 어설픈 농사 솜씨에 이웃집 닭이 포식을 했다. 

상추와 쑥갓의 싱그러움

상추와 쌈추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는 시기가 되었다. 장마철에 시달리고 두 입을 즐겁게 해 주느라 지친 모양이다. 지친 상추와 배추를 대신하는 이웃이 있었으니 토마토와 가지였다. 서서히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가지도 그냥 있을 리 없었다. 붉게 익어가는 토마토와 맑은 보랏빛을 자랑하는 굵직한 가지다. 노란빛으로 꽃을 피운 토마토와 보랏빛으로 꽃을 피우던 가지다. 여기저기서 열매를 맺고 색색으로 물을 들이며 여름을 노래하고 있다. 아침마다 눈을 뗄 수 없는 골짜기의 구경거리다. 처음 골짜기에 자리를 잡고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토마토와 가지는 심어 놓고, 물만 주면 저절로 달리는지 알았다.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물을 주며 보살폈다. 무럭무럭 키를 불린 토마토와 가지는 무성하게 키를 키웠다. 언제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까 아침마다 바라보는 텃밭이다. 초보 농부의 텃밭 토마토와 가지는 줄기만 풍성하고 주인의 기대를 외면했다. 이웃 텃밭엔 주렁주렁 달려 익어가는데 왜 그럴까를 고민하던 중, 이웃 전문가가 텃밭을 방문했다. 퇴비와 물을 주되 곁가지와 필요 없는 잎을 따 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곁가지야 알지만 필요 없는 잎이 어느 것인가? 참, 어려운 농사다.

씩씩하게 자라는 쌈추

가끔 고추의 곁가지를 따서 나물로 먹던 기억이 있다. 토마토의 곁가지를 따주고, 가지도 곁가지를 따주는데 열심이었다. 붉게 익어가는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렸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이슬이 내린 붉은 토마토를 한 개 딴다. 얼른 입안에 넣자 풍겨오는 맛은 잊을 수없는 맛이다. 깨끗한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맑은 도랑물에 닦아 먹는다. 시원함과 통쾌한 맛이었다. 점점 익숙해지면서 도랑물에 닦을 필요도 없다. 이슬이 묻은 토마토를 그냥 먹는다. 골짜기의 향이 가득한 토마토 맛이다. 잊을 수 없는 토마토의 맛, 어디서 이런 맛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가지는 소식이 없다. 싱싱한 가지를 기대했었는데, 어째 소식이 없고 잎만 무성했다. 허무한 가지 농사는 그냥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 잎과 줄기만 키운 가지밭이었기 때문이다. 

토마토의 아름다움

가을이 끝나고 새해를 위해 퇴비를 가득 뿌렸다. 삽으로 땅을 파 엎고 겨울을 보냈다. 초봄에 이르러 밭을 일구고 다시 각종 채소와 토마토 그리고 가지를 심었다. 지난해처럼 풍성한 상추와 쌈추를 맛보면서 토마토와 가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서서히 토마토가 익어 갈 무렵, 이웃이 텃밭 구경을 왔다. 토마토와 가지의 줄기 밑에 있는 잎을 모두 따주고, 토마토도 무성한 잎을 모두 따 버린다. 망설일 것도 없이 한 번에 해 치우고 만다. 이웃집 텃밭에 와서 화풀이를 하는 듯이 단번에 해치우고 만 것이다. 푸름이 좋고 싱싱함이 좋아 꽃처럼 기르는 토마토와 가지였다. 이웃이 후다닥 해치운 가지와 토마토 밭, 얼떨결에 당황했지만 보기엔 가뿐하고도 시원했다. 와, 저렇게 해도 보기가 좋구나! 햇살이 잘 비추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해야 한단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토마토와 가지의 모양이 달라졌다. 어느새 토마토는 붉게 익어가고 가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서서히 붉어가던 토마토가 아침마다 모양이 다르다. 어제의 크기와 오늘의 크기가 확연히 다르고, 색상이 달라졌다. 연한 초록이 어느새 붉음으로 물이 들었다. 꽃이 피던 가지엔 듬직한 가지가 달려 있다. 어느새 굵게 변한 가지가 보랏빛을 발하고 있다. 맑은 이슬이 내린 밭에 빛나는 토마토와 가지가 멋스러움을 겨루고 있다. 어리숙하게 기르던 텃밭이 이웃 덕에 부자가 된 기분이다. 

풍성함을 기약하는 가지

맑게 개인 아침, 얼른 일어나 텃밭으로 나선다. 붉게 익어가는 토마토를 꽃처럼 바라보고, 굵어지는 보랏빛 가지가 대견스럽게 바라본다. 어제의 모양과는 전혀 다른 텃밭이다. 이웃에 사는 농사의 고수가 만들어 준 텃밭이다. 심어 놓고 물만 주면 되는지 알았다. 하지만 작은 텃밭 농사도 깊은 경험이 있어야 했다. 붉게 달린 토마토가 그냥 달린 것이 아니었고, 굵직한 가지가 거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정스럽고 아기자기한 이웃 덕에 풍성한 텃밭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그렇다. 다정한 농사의 대가들 덕에 오늘도 행복한 골짝기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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