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Feb 16. 2024

봄이 왔나 했는데, 눈이 왔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입춘도 지났고 구정도 지났으니 이젠 봄이려니 했다. 잔디밭 가장자리 꽃잔디는 아직도 푸름을 머금고 봄을 준비하고 있다. 혹독하게 추운 골짜기의 겨울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추운 겨울을 이겨낸 것은 꽃잔디뿐이 아니다. 여름내 골짜기를 환하기 비추어주던 황금낮 달맞이도 아직 성성하다. 대단한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며 봄을 준비해야 했다. 우선은 자그마한 텃밭이지만 밑거름을 해야 한다. 밑거름을 주어야 모든 식물이 힘을 받고 무성함을 과시한다. 골짜기에 자리를 잡는 어려움 중엔 현지인들과의 어울림이었다. 


언제나 조심스러운 일, 현지인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일이다. 대단한 일이 아닌 같지만 얼굴을 붉히며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끔 만나는 어르신들께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눈에 거슬리는 일을 가능하면 피하며 살아간다. 모두가 바쁜 농사철에 허송세월하듯이 얼쩡거리지 않으며, 현란한 복장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서지 않는다. 먼저 인사하고 다가가며, 그들의 삶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동네 어르신들과 그리고 이장님과도 허물없이 지낼 있는 이유다. 

봄이 올자리에 눈이 왔다.

지난해, 자그마한 텃밭이지만 퇴비가 필요했다. 소량이라 사 오기도 불편하기에 지나는 소리로 이장님한테 말을 하자 선뜻 자기네 퇴비를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값으로야 얼마 되지 않지만 동네에서 퇴비를 얻어다 쓰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 되지 않는 퇴비지만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어렵지만 어울리며 살아가는 방법이기에 너무 고마웠다. 올해는 만날 기회가 없어 구입하기로 했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주문한 퇴비, 비록 다섯 포대지만 하루 만에 대문 앞에 놓여있다. 세상 살기가 너무 좋아졌다. 


무거운 것을 주문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택배인,  택배를 주문해 주니 자기들도 살아간단다. 우문에 현답을 해줌이 너무 고마웠다. 살기 좋은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며 봄을 준비한다. 동네 어르신들이 그렇고, 이장님이 그러하며 택배원이 고맙기만 하다. 작은 텃밭이지만 퇴비를 듬뿍 주고 삽으로 파 엎는다. 그런 후에 작물을 심거나 꽃을 심으면 언제나 싱싱함을 과시한다. 비록 10평 남짓한 텃밭이지만 언제나 마음은 충분히 부자다. 모든 것을 손수 해야 하는 텃밭, 더 넓으면 노동이 된다. 비록 작은 텃밭이지만 상추와 쑥갓을 심고 토마토를 심으며 고추를 심을 수 있다. 


여기에 다양한 쌈채소를 심어 삼겹살과 충분한 조합을 이룰 수 있다. 그래도 넉넉히 남아 이웃에게도 인심을 쓸 수 있고, 친구에게도 나누어 줄 수도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퇴비를 주고 텃밭을 갈아 놓을 예정이었다. 엄청난 일은 아니지만 백수가 과로사한다 하지 않았던가? 하는 일도 없이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간신히 토요일에 시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다. 비가 오는 듯했는데, 어느새 눈으로 변해 하얀 세상이 되었다.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 골짜기의 삶은 어쩔 수 없다. 자연이 주는 대로 받고 살아야 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입춘이 지나고 설이 지나 봄인지 알았는데, 골짜기 바람은 눈을 몰고 왔다. 추위가 지나갔는가 했지만 골짜기의 모습은 겨울이다. 꽃잔디가 푸름을 과시하고 황금낮달맞이가 기다리는 봄은 아직 더 있다 오라 한다. 하지만 골짜기엔 하얀 눈을 뚫고 서서히 오고 있었다. 지난해에 뿌려 놓은 시금치가 푸름을 과시하고 있고, 뒤뜰 언덕에 있는 황겹매화가 푸름으로 움직이고 있다. 어느새 영산홍도 봄볕에 움찔하고 있다. 하루 이틀 지나면 하얀 눈도 봄을 막을 수 없을 터이니 텃밭에 퇴비를 주어야겠다. 텃밭에 주고 남은 퇴비는 꽃잔디에도 인심을 써야겠고, 뒤뜰에 심어야 할 맥문동 자리도 듬뿍 주어야겠다. 


지난해에 준비한 뒤뜰의 맥문동 자리, 장마철이면 흙이 흘러내려 어렵게 둑을 쌓아 만든 자리다. 적어도 몇백 뿌리는 족히 심을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 퇴비를 주고 준비해 놓아야 맥문동을 심어 보랏빛 꽃을 만날 수 있다. 어서 햇살이 밝아오고 따스해지는 날, 텃밭에 퇴비를 주고 파 놓아야 한다. 다시 손녀가 좋아하는 화단에도 퇴비를 주어야 하고, 잔디밭 가장자리에 있는 구절초와 산국도 지나 칠 수 없다. 서서히 오고 있는 봄에 꽃을 보고, 텃밭을 채울 준비를 해야 하는 계절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겨울바람도 따스해지는 골짜기 풍경, 풍성한 텃밭을 그려보며 하루이틀 더 기다려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머니, 다시 입춘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