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Apr 25. 2024

푸름을 만난 골짜기의 아침 이야기

(아침에 만난 세상)

창문을 열자 오늘도 어김없는 방문객이 많다. 산란기를 맞아 찾아든 산 식구들이다. 참새떼가 오가고, 산까지가 골짜기를 수놓는다. 여기가 그들의 터전인지는 알지만, 몇 년을 같이 살았으니 이웃으로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골짜기는 언제나 말이 많다. 집터 달라 재잘대고, 먹거리를 찾느라 또 옹알댄다. 집 터를 찾는 산까치가 허공을 맴돌고, 더러는 고라니가 텃밭을 어정거린다. 봄비가 멎은 아침나절에 푸름은 가득히 뜰을 찾아왔다. 골짜기를 가득 메운 푸름은 언제나 평온함과 푸근함을 준다. 


우선은 앞산에 푸름이 넘실댄다. 지난해 벌목을 하고 난 후, 줄지어 심은 자작나무가 살아났다. 젓가락 같은 묘목을 심었지만 일 년 사이에 사람 허리만큼 족히 자라났다. 큼직하게 자란 자낙나무가 푸름이 짙어지면서 산을 넘은 바람 따라 일렁임이 하얀 자낙나무 숲을 기대하게 한다. 하양과 검음이 어울리는 자작나무가 넘실대는 사이로는 푸른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아무것도 없던 산말랭이에 푸르른 초원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신기하리만큼 푸름에 발 디딜 틈도 주지 않는다. 산에서 푸름이 쏟아지는 사이에 울타리에도 푸름이 빼곡하다. 우선은 화살나무가 살아났다. 

붉음의 잔치가 한창이다.

지난해 가을, 이웃에선 울타리를 다시 만들었다. 울창한 화살나무를 뽑아내고 시멘블록으로 울타리를 했다. 야트막한 울안에 각종 꽃을 심는 작업을 한 것이다. 울에서 뽑아버린 화살나무, 새 울을 한 이웃덕에 무상으로 얻게 되었다. 혹시 살아날까 고심하며 심어 놓은 화살나무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났다. 초봄에 하루가 멀다 하고 살피는 사이 삐죽이 푸름이 솟아난 것이다. 신비스러운 자연의 조화다. 어떻게 겨울을 버티고 살아났을까? 푸름이 가득 안은 울타리가 듬직함을 보여주는 사이, 곳곳의 나무에서 푸름이 돋아났다. 우선은 산딸나무에서 꽃을 피우며 푸름이 살아났고, 작은 텃밭을 이루는 취나물 밭에서도 푸름이 가득하다.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윗집 뜰에는 참취가 가득했다. 나물로 삼으면서 화초로도 가꾸었던 취나물이다. 몇 뿌리를 얻어 심은 참취가 자리를 잡았다. 수돗가 가장자리 음지에 심어 놓은 취가 큰 잎을 나풀거린다. 작은 바람에도 일렁이던 잎이 어느새 손바닥만 하게 자라났다. 자연의 신기함에 눈을 멀게 하는 것은 텃밭에도 가득이다. 몇 알의 콩을 심어 놓은 것이 언제 나오나 궁금했다. 지나는 새들이 먹고 남은 것이 나온 것이다. 세알을 심어 땅식구가 한 알 먹고, 날짐승이 한 알 먹고 남은 것은 인간이 먹는다 하지 않던가? 얼마 전 외가를 찾은 손녀와 함께 심은 강낭콩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강낭콩, 줄을 지어 잎을 내밀었다. 손녀에게 알려주니 미안함을 덜었다며 좋아한다. 무슨 소리냐는 말에 사연을 알려준다. 


지난해 학교에서 강낭콩을 심었는데, 잠시 소홀한 사이에 강낭콩이 죽어 일 년 내내 미안했단다. 다행히 시골집에 심어 놓은 강낭콩이 살아났으니 일 년간 남아 있던 미안함이 조금은 줄었단다. 어린 손녀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강낭콩이 자리를 잡고, 상추에 쑥갓에 겨자채를 심은 텃밭도 가득해졌다. 가끔 찾아오는 고라니를 염려했지만 산속 먹을 것이 풍부한지 발길이 뜸하다. 뒤뜰에도 푸름은 넉넉하다. 아내의 작품인 머위가 뒤뜰을 수놓았고 이에 뒤질세라 바위취도 한몫을 한다. 바위취와 머위가 가득해진 뒤뜰, 돌나물과 초봄에 심은 맥문동도 동참했다. 뒤뜰에 가득 심었으니 여름이 찾아오면 보랏빛 꽃으로 화답할 맥문동이다. 

밤에 만난 골짜기 풍경

봄철에 이르러 대지를 뚫고 나오는 푸름도 만만치 않다. 겨우내 방치해 두었던 푸름이 나도 있다는 듯이 살아났다. 하양과 보랏빛으로 어우러지는 도라지밭이 그렇고, 음지에서 소리 없이 겨울을 버틴 더덕이 그러하다. 꽃을 보기 위해 심어 놓은 도라지요, 냄새를 위해 심어 놓은 더덕이다. 도라지가 꽃을 피우고 더덕이 향을 더하는 골짜기가 머지않아 찾아올 것이다. 산뜻한 바람과 함께 온 푸름의 잔치, 꽃들의 잔치가 서서히 물러가면서 자리 잡은 골짜기의 풍경이다. 서서히 사라진 꽃을 대신해 푸름이 자리했지만, 아직도 살아있음을 알리는 하얀의 꽃들도 피어날 것이다. 


서서히 준비 중인 수국과 불당나무다. 불쑥 올라온 수국이 준비 중이고, 불당나무도 세를 불려 놓았다. 하양이 가득해지면 말발도리와 때죽나무가 하양을 보여준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문 앞 칠자화가 화답할 것이다. 언제나 무슨 꽃이냐 묻는 아내처럼 늘, 꽃이름을 잊고 만다. 작은 정원에 가득한 꽃들의 잔치 따라 숨어 버리는 꽃이름, 세월의 흐름을 어찌할 수 없나 보다. 기어이 되새겨 봐도 떠오르지 않아 언제나 고민 중이다. 세월의 장난이야 누가 막을 수 있다던가! 어떻게 봄을 알았는지 삐죽이 내미는 이름 모를 새싹이 아름다워 오늘도 정원을 떠나지 못한다. 따스한 바람이 찾아온 골짜기의 정원은 오늘도 꽃과 푸름이 떠들썩한 아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래는 그들의 삶의 놀이터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