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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Nov 28. 2024

골짜기가 하양으로 물이 들었다.

(눈 내리는 아침, 새벽에 만난 풍경)


엊저녁, 화실을 다녀오는 길은 험난했다. 비가 오기도 했고, 눈이 오기도 했다. 기온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 속을 바라보는 골짜기 삶은 심란하다. 문단속과 난방을 하고 맞이한 한 밤은 요란했다. 거친 바람이 불어왔고 눈보라기 치는가 했는데 갑자기 조용해졌다. 초겨울이지만 싸늘함이 가득한 골짜기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아침에 맞이한 골짜기의 모습은 하양으로 덮여있다. 땅에는 하양이 하늘에선 눈발이 내려왔다.


운동을 나설까 말까를 망설이다 우선은 눈을 쓸어야 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추위를 무릅쓰고 쓸어낸 집안이 개운하다. 얼른 차를 몰고 나선 운동길에도 눈은 여전하다. 언제나 아름다운 길을 선사하는 아침 녘의 시골길에 눈이 가득 내렸다. 계절에 상관없이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벚꽃길로 접어들었다. 굵직한 벚나무가 100여 미터 늘어서 언제나 선호하는 길이다.


벚꽃길로 들어서자 숨이 멎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단풍을 달고 있던 나무에 하양이 물든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발이 잠시 쉬어가는 듯이 하양으로 가득하다. 얼른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싶지만, 서두르는 차량이 오고 있다. 눈으로만 가득 담고 체육관으로 들어섰다. 눈이 오는 날에 날씨가 싸늘하다. 체육관이 텅텅 비어 있는 이유다. 눈이 오는 아침, 침대를 벗어나기는 힘에 겹다.


따스함이 가득한 이부자리를 어떻게 벗어날까? 늘 고민하는 겨울철이지만 어김없이 벗어날 수 있음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다. 일주일에 세네 번은 반드시 가야 한다는 체육관 출입을 어길 수가 없어서다. 언제나 고집스레 지키는 덕에 나름대로의 불편함도 있다. 어떻게 벗어날 수는 없을까? 왜, 그렇게도 고집스레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하고 있을까? 덩달아 고달픔도 있고, 어길 수 없는 삶이 힘겹기도 하다. 가끔은 잊어 볼까도 생각해 보지만, 고집스러운 생각이 버티고 있다. 한 번쯤은 어겨볼 만도 하지만 조금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드는 세월이다. 늙어서 고집이 세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들어선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사람이 다양하다는 것은 언제나 실감하는 체육관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동네 우물가를 연상케 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김장을 했다는 소식에 오늘 해야 한다는 이웃, 삶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한다. 러닝머신 위에 올라 오늘도 살아있음을 확인해야 했다. 수년간을 버티어 온 고집 아닌 고집이다. 창을 통해 눈이 오는 풍경이 들어오고, 산에는 하얀 눈이 내려 겨울임을 실감 나게 한다. 야, 저런 그림을 여기서 만나는구나! 갑자기, 첫눈이 오는 날은 공휴일이라는 부탄이 생각난다. 무엇이 그렇게도 행복할까를 확인하고 싶어 찾았던 히말라야 속의 은둔의 나라 부탄이었다. 첫눈이 오니 마음이 설레는데 일이 될 수 있느냐는 설명이었다. 첫눈이 오는데 왜 나는 덤덤한 생각이 들까?


눈을 치워야 하고 운전이 불편해서일까? 부산에 사는 손녀는 눈을 좋아한다. 휘날리는 눈을 보면 날아갈 듯이 좋아한다. 어린 손녀도 세월이 흘러가면 나와 같은 생각이 들까? 러닝머신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다웠다. 산이 그러했고 눈 속 시냇물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이 물을 보내주고 있다. 한없이 바라보며 운동을 하는 아침, 이웃은 텔레비전 화면에 눈이 멎어있다. 이런 풍경을 두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구나! 사람의 삶의 모습은 다양하고 또 그래서 재미가 있나 보다. 죽을힘을 다해 운동을 하고 샤워를 끝냈다. 이것 보다 더 후련함은 만날 수 없다. 썰렁함 대신 후련함을 안고 오는 길엔 여전히 눈이 오고 있다. 야, 첫눈이 이렇게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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