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을 바라보면서)
나른한 봄날에 만난 풍경은 싱그럽다. 옅은 초록이 익어가는 아침은 황홀하다. 자연은 이런 빛을 만들 수도 있구나!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람, 수채화를 그린다는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색깔이다. 연한 초록에 진함이 드문드문 있고 그 초록에 햇살이 찾아온 것이다. 자연의 조합이라는 것이 이렇게 예쁠 수도 있다니!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현실에 수긍하고 마는 봄날이다. 봄날의 황홀함을 만난 후,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여름, 기나긴 여름비가 왔다. 그칠 줄 모르는 여름비를 장마라 했다. 어떻게 이렇게도 길게 올 수가 있을까? 봄이 준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쓸어가고 말았다. 긴 장마에 지칠 즈음에 햇살이 찾아왔다. 장마가 서서히 물러간다는 징조인데 더위는 아직도 극성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기력을 끌어올리려는 8월 즈음에 계절은 순식간에 변했다. 묵직한 초록이 찾아온 것이다. 봄의 맑고도 가벼운 초록이 묵직함에 익어가는 여름을 알려준 것이다.
계절의 순환은 신비스러웠다. 순간순간 변하는 계절의 조화는 숨을 멎게 했다. 서서히 가을이 오고 있었다. 가을, 모든 것을 이루며 정리하는 계절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계절을 따라온 한 해, 서서히 정리하는 계절임에 엄숙해진다. 맑은 하늘은 높이 올라갔고, 묵직한 초록은 서서히 빛을 발해갔다. 가을의 진한 물이 스며든 것이다. 가을이 익어가면서 생각은 깊어진다. 붉게 핀 코스모스가 미워지고, 묽게 물든 단풍이 서럽게 흔들린다. 서서히 한 해가 마무리된다는 순간이 아름다움을 넘고 말았다. 나의 계절은 어디쯤일까?
아침운동을 하는 체육관 창문에 햇살이 넘어왔다. 언제 찾아왔는지 창문 너머 산이 꿈틀댄다. 늦은 가을이 주는 성스러움이다. 붉게 물들었던 화살나무는 잎을 떨구었다. 아름답게 물들어 소리 없이 잎을 떨군 것이다. 잎이 떨어진 가지에 가을의 알맹이가 열려있다. 싸늘한 아침에 찾아온 햇살이 알려준 사실이다. 붉게 물든 가을이 있다고. 얼른 눈을 들어 바라보는 제방엔 쓸쓸한 벚나무가 일렁인다. 봄부터 갖가지 이야기를 남겨주고 앙상함이 가득하다. 초록과 붉음을 넘어 줄 것을 모두 줘버린 홀가분함이다. 갑자기 눈을 의심한다.
시냇가에 노닐던 두루미가 하늘 속으로 유영한다. 아름다움 속에 움직임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초봄에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이 늦가을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푸름이 넘쳐 가을을 맞이했고, 황금빛 낙엽송이 산 위를 차지했다. 초록이 순식간에 물든 황금빛이다. 황금빛 아래로 빛나는 초록이 있었으니 아직도 열정적인 잣나무의 초록이다. 자연의 어울림 속에 두루미가 날고 있다. 늦가을 산자락이 이렇게도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아래로는 넓은 냇가를 따라 물이 흐른다. 길을 따라 홀가분한 벚나무가 자리했다. 아침식사 중이던 두루미가 긴 여운을 남기며 날아간다. 두루미는 초록과 주황빛 속에 있는 것이다. 산 위로 흘러가는 맑은 푸름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여유로운 발검음이다. 늦가을이 이렇게도 어울릴 수 있을까? 허연 머리칼이 있고 위쪽으로는 미련이 남은 검은 머리칼이 있다. 늙음이 어울리는 조합을 앞 산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울리는 조합은 뜰앞의 소나무다. 푸름을 노래하던 소나무는 어느덧 주황빛 잎을 달았다. 주황빛 위로 흐르는 잔잔한 초록, 흰 머리칼 위로 흐르는 잔잔한 검은 머리칼이 이루는 조합이다. 주황빛과 초록이 어울리는 자연을 유리창 너머에서 만난 것이다. 나의 계절은 어디쯤일까를 고민해 본다. 늦가을은 넘어 초겨울쯤일까? 하니면 아직도 늦가을이라고 우겨볼까?
근력운동으로 40여분을 보내고 러닝머신 위로 올랐다. 10여분을 걷고 서서히 속도를 높여본다. 하프마라톤을 뛰던 기억을 더듬으며 뛰는 발검음이 무겁다. 할 수 없이 10킬로를 뛰었고 이젠, 5킬로를 뛰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숨이 차 오른다. 야, 큰일 났다! 이것도 숨이 차단 말인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바라본 초록과 주황빛이 어우러진 앞산은 신비스러웠다. 나도 저런 계절즈음이면 얼마나 좋을까?
소리 없이 연한 초록으로 태어나 세찬 비바람을 맞이했다. 여름이 온 것이다. 온갖 풍상을 겪어내니 진한 초록으로 물들었다. 진한 초록은 결실을 맺어야 했고, 서서히 주황빛이 물든 것이다. 아무 소리 없이 물 든 낙엽, 물이 흐르듯이 떨어진 단풍이 말이 없다. 여기에 비추어진 주황빛 햇살은 온전한 가을이었다. 저런 어울림으로 살아낼 수는 없을까? 넘침이 없는 작은 모자람, 복잡하지 않은 소소한 단순함이다.
아침에 만난 앞산이 그랬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과하지 않은 아름다움이었다. 단순함이 주는 그윽함이었고 섬세함이었다. 산 중턱을 유유히 흘러가는 두루미의 날갯짓에 눈이 멀었다. 아름다운 어울림에 점을 찍어 준 것이다. 맑은 햇살이 찾아와 어울림을 축복해 주었다. 단순함과 어울림이 조화로운 삶, 나는 어느 계절에 와 있을까?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로 가는 아침은 아름다움과 어울림이 알려준 나의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