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새로운 취향의 변화

①_퇴근길 고양이

by Spring


앞서 살펴봤듯이 겉으로는 ‘반려동물 증가’라는 동일한 현상처럼 보일지라도, 개인적인 원인들과 사회적인 트렌드(trend) 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는 복합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 다음의 표 박스에 제시된 대표적인 요인들의 융합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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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 취향의 보완재

# 원인 : 트렌드 (동물 사랑)

# 유형 : 보완재


위의 표 박스에서 ‘취향의 보완재’ (1) 번은 트렌드(trend)가 원인이 되어, 일종의 보완재 형태로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트렌드(trend)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원인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동물 사랑’ 트렌드가 애완견의 증가 추세를 가져왔다고 보는 관점이다. 말 그대로 동물 애호가들의 비중이 높아진 현상이다. 다른 선순위의 원인들 간에 서로 상호적인 영향을 주고받아서 나타난 복합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오로지 동물 애호가들이 증가하고 있는 트렌드 하나만 유일한 요인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는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어느 날 동물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는 걸까?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의 시대적 흐름 변화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어도 왠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 또한 그런 취향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전혀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싫어하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하슬라 카페’의 고양이를 마주쳤을 때처럼 처음에는 어떤 동물이든 좀 낯설어서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그래도 고양이는 작아서 아담하기라도 하니깐 귀여워하는 마음이라도 있었지만, 만약에 어떤 커다란 짐승이나 특이한 곤충이 보인다면 자동 반사적으로 무조건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설령 엄청난 혐오감을 일으키는 험악한 짐승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인간이 아닌 낯선 생물체가 자꾸만 팔딱팔딱 움직일 때면, 좀 더 어린 시절에는 내 심장도 같이 펄떡펄떡 뛰면서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했었다.


그렇게 펄떡거리기만 하던 나의 심장이 언제부터인지 작고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 앞에서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듯이 ‘심쿵’하는 마음의 소리와 함께 따스한 온기의 심박수가 작동하는 게 느껴졌다. 동물만 보면 뒷걸음질부터 치던 내가 어느새 그 작은 인형 같은 생명체한테 자석처럼 끌어당겨지고 있던 것이다. 물론 여전히 적극적으로 같이 부대끼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호기심 어린 눈짓을 하거나 쓰담쓰담하면서 예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했다. 아니, 똑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는 건지, 나조차도 스스로가 되게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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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긴, 사람 입맛이 변하는 과정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는 것 아닌가 싶다. 가족이든 친구든 주변에서 보면 똑같은 동일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입맛이 변해있는 경우들이 보일 때가 있지 않은가. 가령, 조금만 매워도 잘 먹지 못하던 사람이 회사 스트레스가 쌓이기만 하면 너무나 매운 불닭이나 떡볶이를 마구 흡입할 정도로 매운맛을 선호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원래는 엄청 싸워(sour)한 귤만 골라먹을 정도로 신맛에 끄떡없이 강했던 사람이 신맛을 전혀 먹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갑자기 동물을 애정하게 되는 취향의 변화도 어쩌면 이런 입맛이 변하게 되는 과정과 유사한 것은 아닐까.


분명히 나는 예전과 똑같은 사람인데도 어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무언가 미세하게 작은 것들이 차곡차곡 누적되는 변화에 의해서 그런 취향의 변화까지도 일으킬 때가 있는 것 같다. 마치 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먼지의 누적 효과가 점차 쌓이게 되면 갑자기 어떤 시공간의 공기가 확 달라질 수도 있듯이, 오랜 시간 동안 개인적인 삶의 경험 조각들 하나하나가 쌓여서 발생한 미세한 감각 세포들의 누적 효과도 어떤 사람의 취향을 전혀 다르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입맛이 바뀌는 것도 어찌 보면, 여러 음식을 맛보는 경험을 통해서 미세한 미각 세포들의 변화가 차츰 누적되어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동물을 사랑하는 취향이 새롭게 생기는 것 또한 일종의 경험이 누적된 감각 세포의 변화일 수도 있을까? 그동안 나의 삶에서도 알게 모르게, ‘미세 먼지’의 누적효과와 비슷한 ‘미세 세포’의 누적효과라도 발생한 걸까. 문득 이런 느낌이 올라와서 잠시 내가 살아왔던 삶의 궤적들을 돌이켜 보았다. 커다란 시점 별로 기억을 더듬어보니깐 중간중간에 뭔가 세밀한 연결 고리까지는 느껴지지 않았어도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과거부터 최근까지 무언가 쭉 누적되고 있던 공통적인 현상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아... 내가 원래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온종일 회사에서만 지내는 시간이 오랫동안 지속된 이후로는 업무적인 관계로만 지내는 많은 사람들이 가끔은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언제부턴가 심적 피로감이 쌓여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퍼뜩 깨달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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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주변에 아무리 좋은 직장 동료들만 있었던 경우조차도, 거의 모든 사적인 인간관계는 어쩔 수 없이 일시 정지될 만큼 대부분의 삶이 회사에 메여 있었던 시간이 계속 쌓이게 되면서 그런 증상은 조금씩 더 두터워지고 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친분 관계의 편안함보다는 분주한 업무로 마주치게 되는 공적인 관계의 건조함에서 오는 다소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일상의 공기에 나의 생명력도 어딘가 모르게 자꾸만 말라가는 기분이 들었나 보다.


그런 목마름에서 오는 일종의 심리적인 피로감이 아니었을까. 뭔가 수분 섭취가 필요한데 갈증이 난 상태에서도 계속 업무만 하게 되면 에너지 소모로 인해 목이 점점 더 바짝 말라가듯이, 나의 심리상태도 정서적 피로감으로 인해 바짝 말라서 지쳐있던 것처럼 말이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로 꿀잠 같은 휴식도 취하지 못하면서 계속 눈은 뜨고 있는 상태라면 얼마나 피로하겠는가. 이게 과연 신체적으로만 나타나는 증상일까. 심리적으로도 꽤나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수가 있다. 이런 현상이 바로 일상의 미세 먼지 효과이자, 미세 세포의 누적 효과가 아니고서야 뭐겠는가. 심리적 피로가 계속 쌓이게 되면 정서적인 감각 세포의 건조함이 누적될 테니깐 말이다.


이런 생활이 그리 길지 않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문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거의 반복적으로 꽤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이다. 그럼 결국 정서적인 만성 피로의 수준까지 이르게 되면서 일상에서도 마치 좀비처럼 더 무감각해지고 생동감도 점점 줄어드는 것을 문득 느끼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씁쓸한 기분에 사로잡히고는 했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시기일수록 회사의 그런 고정된 시공간을 잠시라도 벗어나게 되면,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도 굉장히 커다란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행복의 감각세포는 더욱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게 바로 ‘후천적 캔디’의 행복 감각세포 같은 것 아닐까?


야밤의 퇴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강아지나 고양이 한 마리가 너무나 친근하고 반가웠던 것도 바로 그런 행복의 감각 세포가 발동한 것이리라. 마치 오래전에 헤어진 베스트 프렌드를 다시 상봉한 순간 같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동네 고양이를 지그시 바라볼 때면, 묘하게 서로 무언의 대화를 하는 경지에 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나도 모르게 눈빛 교감으로 냥이 대화체 레이저라도 발산하고 있던 걸까.

일명..... 고양이 어(語)?!


‘안녕, 냥이야. 뭐 하고 있니? 까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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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나름 인간인척 하고 있지만 그 순간에는 같은 품종의 고양이가 되어서 친구처럼 같이 놀다가, 사뿐한 걸음으로 헤어지면 마음 또한 개운하게 가뿐해졌다. 일상에서 말라비틀어진 정서적 감각 세포들을 촉촉한 마음의 수분으로 다시 피어나게 해 줬던 건 아닐까.



아마도 그때부터가 미세 세포의 누적효과가 나한테도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던 시초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순간들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나에게도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꽃피기 시작했을 테니깐 말이지. 나의 이런 작은 경험의 조각들이 하나씩 모이면서 동물을 애정하는 감각 세포들의 미세한 누적효과가 결국은 나에게도 동물을 사랑하는 취향까지 새로 만들어준 것 같거든. 동네에서 아주 잠시 마주치는 동물들뿐만 아니라, 하슬라 카페의 저런 고양이들처럼 여행길에서도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들과 알게 모르게 은근 정이라도 들었던 걸까.


처음에는 무심하기만 했던 나한테 자꾸만 나타나서 놀라게 하고 앵앵거리면 완전 당황스럽기만 했었는데, 치열한 일상에 지쳐있던 나의 메마른 마음에 따스한 온기의 수분이 점점 스며들면서 스르륵 녹아내렸나 보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기억의 조각들이 어느새 한 편의 촉촉한 추억 앨범처럼 내 가슴 한구석에 존재하고 있는 것 보면 말이다.


그런데 조금 애잔한 측면은, 평소에 사람들을 못 보고 살던 빡빡한 일상 덕분에 원래는 나의 사람들한테 흘러갔어야 하는 애정이 엉뚱하게도 생전 처음 보는 동물들에게 대신 전이된 듯한 느낌은 차마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태생적인 동물 애호가는 아니었던 나로서는 그때만 해도 동물한테 별로 관심도 없었고 애써 친할 필요도 굳이 느끼지 못했다. 상반되는 두 개의 시절들이 뭔가 서로 은근 대조되는 장면의 한 쌍 같아 보여서 조금 쌉싸름한 기분의 이 느낌은 무엇일까.


나름 아스팔트 도시 출신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는 가정적 추정까지 덧붙여보자면, 나는 원래부터 동물이나 곤충을 그다지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더욱 굳건하게 뒷받침될 수 있으리라. 이랬던 내가 갑자기 어느 날부터 동물을 좋아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동안 나를 쫄랑쫄랑 따라오던 동물들 덕분에 마음이 조금씩 열리게 되어서 생긴 변화겠지만 말이다. 절대로 바뀔 것 같지 않았던 취향도 어떨 때는 나 스스로가 신기할 정도로 변화되는 모습이 가끔씩은 놀랍다. 이처럼 취향은 변할 수가 있다. 그것도 아주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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