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하슬라 카페 고양이들
피노키오 박물관까지 모두 다 둘러보게 되면, 멋지게 층층으로 이루어진 외부 계단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는 길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외부로 나오게 되면 눈앞에 바로 보이는 게 있는데, 야외 전망이 좋은 ‘하슬라 카페’가 하나 있다. 이 카페 입구를 보니깐 갑자기 일 년 전의 기억이 흐릿하게 얼핏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다른 장소로 급히 이동을 해야만 했기에 마음이 분주했던 것인지 정말 좋았던 그곳의 추억은, 카페를 지나 약간의 경사진 언덕길을 내려와서 주차장에 도착하니깐 그제야 그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의 일 년 전 이맘때쯤이었다. ‘하슬라 아트월드’ 건물 내부 자체만 관람하는데도 꽤나 볼거리가 많아서 시간도 은근 많이 소요됐기 때문에 어느새 나는 좀 지쳐있던 것인지, 마침 무언가 먹고 싶었던 찰나에 ‘하슬라 카페’를 발견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밖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매우 좋아서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페 내부보다는 외부에 자리들을 잡고 있었다. 나 또한 커다란 건물 안에서만 계속 돌아다녔으니 시원한 바람 좀 쐬고 싶어서 밖에 있던 테이블로 나왔다. 늦게 나섰던 길이라 점심은 거의 스킵한 상태로 온종일 신나게 돌아다녔으니 허기가 져서 음료뿐만 아니라 토스트 빵도 함께 시켜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앉은자리가 이미 높은 위치였기 때문에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다. 맛난 음료 한 모금으로 갈증 나던 목을 축이고는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잠시 멍 때리고 있던 걸까.
갑자기 어디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에 퍼뜩 놀라는 바람에, 그 멋진 전망에서 눈을 떼고는 테이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나는 진짜로 기겁을 하고야 말았다. 아니, 어디서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씩이나 갈색 빛을 띠고 있는 오동통한 고양이들이 내 자리 테이블 안쪽으로 기어 들어와서는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마음에 그 순간 비명이 절로 나왔다. “앗!! 깜짝이야!!” 잠시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인지, 저건 두 마리의 고양이가 아니라 혹시 두 마리의 칙칙한 누런 황소가 저렇게 덩치가 좀 작아져서 내 자리로 몰려온 것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테이블 아래쪽의 빈 공간을 아주 꽉 채우고 있었다. 내 다리 근처까지 바짝 다가와서는 거의 딱 붙어서 껌딱지처럼 말이다! 그것도 가만히 얌전하게 웅크리고 있던 것도 아니고, 마치 그 작은 바닥을 접수하고 있는 작은 꼬맹이 건달들처럼 둘이서 아주 늘어지게 어슬렁거리면서 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악! 뭐여 이건?ㅠ
고양이여!? 작은 미니 황소여?!
이런... 나는 지금 식사를 해야 하는데,
너희들 여기 와서 뭐 하고 있는 것이냐.
나는 조용히 내 빵 좀 먹게 저리로 좀 가면 안 되겠니?’
나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갑자기 몰려든 그 고양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그 카페에 있던 주변의 많은 다른 사람들은 나랑 정반대의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서로 몸집의 크기는 달랐지만 엇비슷한 색상이었던 그 한 쌍의 고양이들이 신기했는지, 자꾸만 관심을 가지고 귀여워하면서 다들 조금이라도 친해지려고 다가왔던 것이다. 카페에서 팔고 있던 고양이 전용 간식까지 사서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두운 갈색 빛깔의 고양이들은 그렇게 인기 스타처럼 카페 사람들한테 사랑을 한가득 받고 있었는데, 그 녀석들이 모두 나한테 다가와서 그 자리를 절대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고양이들을 보러 내 자리로 자꾸 몰려들거나 나에게 말을 시켜서 얼떨결에 나도 같이 스타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상반기 시상식의 톱스타 자리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하나. 저 고양이들이 꼭 내가 수상한 대상 트로피 같아서, 사람들이 그걸 축하해 주려고 트로피 구경하러 내 자리로 몰려드는 것처럼 말이야. 상을 두 개나 받은 건가. 쌍 트로피?! 나참, 가시 방석 같은 꽃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나는 저 고양이들이 자꾸 신경 쓰이고 부담스러워서 계속 내쫓으려고 했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고 있으니깐, 그럴수록 오히려 사람들은 그런 내가 부러운 것처럼 내 자리로 더 몰려들고 있었거든. 어휴.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고양이들한테 관심과 애정을 듬뿍 주고 있는 장면이 나한테는 좀 인상적으로 보였다. 평소에 동물들과 그다지 친숙하지는 못한 나로서는, 고양이들과 너무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작고 아담한 애완동물은 무척 귀여워하지만, 그런 속마음과는 다르게 마구 터치하거나 매우 가깝게 막역하지는 못한 편이다. 그냥 살짝 쓰담쓰담 하면서 호기심으로 쳐다보기만 하는 정도랄까. 아마도 곤충이나 커다란 짐승처럼 인간 이외의 살아있는 생물체는 좀 낯설고 두려워하는 편이라 그런지, 아무리 작고 귀여운 동물일지라도 처음부터 쉽게 불쑥 다가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고양이들이 속으로는 내심 귀여워서 같이 놀고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역시나 편치 않고 어색한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었는지, 동시에 두 마리가 한꺼번에 쌍으로 달려드니깐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흠칫 놀래서 또 내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내 모습과는 달리, 요즘은 저런 애완용 동물들을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저녁에 잠시 동네 벤치에만 앉아 있어도,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주민들이 자신이 키우는 동물들을 데리고 나와서 산책하는 모습들이 예전보다 부쩍 많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커플이나 여러 가족들이 애완견을 데리고 나오는 모습도 있기는 하지만, 주로 1인 가구처럼 혼자 나와서 애완동물과 단 둘이서 산책하는 경우들이 더 많아 보인다. 밤늦은 시간이면 직장인 정도로 보이는 연령대의 사람들이 혼자서 애완견을 데리고 나오는 모습들도 종종 보인다. 특히 외국에서는 공원이나 거리에서 커다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이고는 했는데, 우리나라도 이제는 그런 풍경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고 점차 보통의 일상 중 하나처럼 되어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이 존재하던 마음속 공간이 동물에 대한 사랑으로 대신 채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사람들 사이의 인간적인 사랑이 점점 줄어들고 있거나 부재중인 경우가 늘어나면서 그 자리를 동물들이 대신 차지하여, 인간들의 사랑을 가득 받고 있는 반려동물들이 많아진 것 같다. 결혼과 출산이 감소함에 따라 점점 1인 가구는 증가하고 있는 만큼 자연스레 연인이나 배우자와 자녀의 자리도 공석인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예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에게 애정을 퍼부었다면 요즘에는 점차 반려동물한테 그 사랑을 대신 쏟아붓고 있는 게 아닐까. 자신들의 외로움이나 쓸쓸함으로 공허해진 마음 한구석을 동물에 대한 사랑으로 채우는 현상 같아서 조금은 서글픈 트렌드처럼 보인다.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