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_자기 사랑 방법

②&③_거울과 애정템

by Spring


문득 오래전 CF까지 생각나는 바람에 마음 표현의 중요성에 대해서 지금껏 실컷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아마도 ‘자기 사랑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앞의 광고처럼 때때로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대방한테 마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나 자신에게도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나랑 아예 분리된 다른 타인보다도 나랑 항상 함께 하는 나 자신이라서 오히려 더 간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 뿐인가. 나 자신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들 또한 다른 타인들과 비교해 봐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나랑 전혀 다른 타인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나를 잘 모를 수도 있는 만큼 오해를 더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진실을 말할지라도 왜곡될 가능성도 있어서, 보통은 편한 가족보다는 타인들한테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전달할 때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일상의 작은 의사소통조차도 그럴 때가 많은데, 어떤 감정 전달이나 애정 표현이라면 얼마나 더 하겠는가. 거의 항상 곁에 있어서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족들한테는 굳이 속마음을 많이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깐 무심하거나 소홀해지기 쉬울 수도 있거든. 개별 성향에 따라서 더 잘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으면, 아무리 애정이 넘쳐나도 서로에게 익숙해지다 보니깐 마음 표현하는 데 있어서 무감각해질 수도 있다. 그러하니, 언제나 나랑 일심동체로 딱 붙어있는 나 자신한테는 오죽할까나. 내가 곧 나인데 굳이 스스로 애써 나 자신한테까지 나의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발신자와 수신자처럼 이분법으로 각각 다르게 떨어뜨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 그만큼 나랑 제일 가까운 사이인 나 자신한테 내 감정을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무슨 개념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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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나 자신과 대화하듯이, 나에게 정성껏 내 마음 표현을 시도하는 사람이 솔직히 현실에 얼마나 많을까 싶기도 하다. 나 자신과의 교감이나 대화라는 것이 머리로는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가도, 직접 행동으로 실천해 보려고 하면 어찌해야 하는지 막연한 심정이 들 수도 있거든. 아니 뭐 일상에서 나 자신을 살뜰히 보살펴 주고 있다면 그 자체가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는 방법들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자신을 잘 챙기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평소에 물처럼 스며들어있는 습성 같은 특성까지 항상 ‘자기 사랑 표현법’으로 인지하면서 피부에 확 와닿게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에게 사랑과 지지를 전달하고 표현하는 수단에는 무엇이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막상 또 별다른 방법들이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 것 같아서 대략 난감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정녕, 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기 사랑법’이나 ‘애정 표현법’들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든 걸까.



나를 사랑하는 방법?
나의 감정을 나한테 전달하면서,
셀프로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이렇게 표현된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생각해 보면,

기껏해야 어릴 때 가끔씩 기분이 내키면 했었던 ‘거울 놀이’ 장난질 하나가 떠오를 뿐이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들 중 하나로서 말이지. 왜 그런 거 있지 않았나. 긍정의 마인드를 실천하기 위한 기법으로서, ‘거울 보면서 나 칭찬하기!’ 같은 것들. 왠지 한 번쯤은 누구나 해봤을 법도 한데? 아닌가? 에이, 해봤을걸? 거울 가지고 장난치던 나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게 진정 단 한 번도 없을까? 어디선가 자기 계발서 같은 책에서 우연히 보인 내용들을 괜히 한번 따라 해 봤을 수도 있고. 어느 날 거울 속 나의 모습이 유독 마음에 드는 날에는 자기도 모르게 한 번쯤은 해봤을 수도 있고. 혹은 아주 어린 시절의 유치원 숙제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유치원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 같은 것 말이다.


오늘은 집에 가면 거울 보면서
‘누구누구야 사랑해!’라는 말을 웃으면서
자신에게 10번씩 해보세요!

내일 숙제 검사할 테니깐 많이 연습해서 오세요.
누가 누가 가장 이쁘게 잘하는지 시켜볼 거예요. ^^



진짜로 이런 유치원 숙제가 있었다면 분명히 나 또한 열심히 했을 것이다. 거의 기억나지 않는 너무 어린 시절이지만 그때만 해도 숙제 정도는 잘하는 모범생이었을 테니깐. 그런데 아무리 자기 사랑법이라고 해도 솔직히 이런 유형은 좀 낯간지럽지 않나. 나만 그런가. 너무 유치해서 유치원생 시절의 숙제였을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유치원 시절까지는 나름 숙제라는 핑계라도 대면서 장난 삼아 재미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저런 어린 시절은 훌쩍 지나가 버려서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뜻과 마음이 우러나와야지만 할 수 있는 시기로 접어들었다면?

아마도 사람마다 타고난 비위가 달라서 저런 거울 놀이는 누구한테나 모두 다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더 이상 어린아이도 아닌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내키지 않는 날에도 억지로 그래야 한다면, 타고난 비위가 너무 약하거나 얼굴이 두껍지 못한 사람일수록 이미 그 자체로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너무 민망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깐 말이지. 그건 마치 전혀 행복하지 않은 날인데도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억지로 ‘나는 행복해!’라고 말해야 한다는 강제적인 임무라도 부여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행복한 날을 실제로 마주치게 된다면 오히려 반대로 나 스스로가 먼저, 그런 모습을 자발적으로 보일 때가 있기는 했다. 어떤 기쁜 일이 있거나 소소한 행복이 느껴지던 날에 우연히 스쳐 지나가듯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랑 대화하듯 미소가 절로 나오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했던 것 같거든.


오늘 무슨 일 있었니?

너는 지금, 참 행복해 보이는구나!

OO야~~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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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이렇게 행복이 넘치는 날에는 아무리 저런 기법이 효과가 있다고 할지라도, 사람에 따라서 그 효력의 발생과 정도의 차이는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자의 성향과 스타일이 서로 많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지도 모른다. 어쩌다 그 효과를 느끼는 사람일지라도 그럴 수 있다. 거울 놀이를 통해 억지로 사랑 표현을 하면서 행복한 척하는 것이 어떤 사람들한테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저렇게 나처럼, 엄청나게 매우 행복해서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더 그럴 수 있다. 저렇게 나처럼, 엄청난 꼬맹이라서 별다른 고통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던 행복의 어린 시절이 아니라면 더 그럴 수 있다.


솔직히 너무나 불행해서 미칠 것 같은 날에는 정직한 거울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많이 힘들지 않을까. 그런 날에는 아무리 좋아 보이는 척 연기를 하고 있어도 이미 그 거울이 너무 예리하게 자신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어서 날카로운 종이에 베인 것처럼 따갑게 쓰릴지도 모를 텐데. 눈에 보이는 건 그저 일그러진 우거지상의 모습만 보일 뿐인데 거기에다 억지로 긍정의 말을 내뱉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과연 예뻐 보일 수가 있을까? 오로지 자신밖에 없는 시공간인 거울 앞에서도 솔직 담백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 덕분에 오히려 자괴감이 몰려올지도 모를 텐데. 자신의 직업이 혹시 최면술을 수련하고 있는 마법사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 휩싸일지도 모를 텐데. 그럴 때면 정녕 그런 방법들이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을까? 굳이 왜 자신까지 속여가면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괜히 기분만 더 바닥을 내리칠지도 모를 텐데. 이런 경우는 긍정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 효과가 아닐까.



차라리 타인들과 함께 있는 시공간이라면 저런 행복의 거울 놀이가 상대를 위한 일종의 배려 기능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 혼자만 있는 시공간의 거울 앞이라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배려 연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곳에서는 나의 기분이 아무리 별로라고 해도 상대를 위한 기분도 같이 배려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런 나의 부정적인 감정은 애써 숨기려고 할 때가 더 많게 된다. 그런데 오로지 나 하나만 존재하는 나만의 시공간인 거울 앞에서도 똑같이 내 감정을 숨기면서 반대로 변환까지 해야 한다면, 그건 좋은 순기능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쌓이게 하는 역기능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라는 노래처럼 ‘앉으나 서나 긍정 생각’만 항상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은 그런 방법보다는 그냥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더 좋은 방법 하나가 있기는 하다. 내가 행복할 때면 행복한 모습 그대로 혹은 내가 힘들 때면 힘든 모습 그대로를 받아줄 수 있는 그런 방법 말이다. 나의 심신 상태가 어떤 경우든 간에 그저 나의 모습이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일종의 ‘맞춤식 자기 사랑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듬어 주면서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아주 딱 좋은 방법이 바로 ‘애정템’을 활용하는 것이다! ‘애정템’이란, ‘애정’과 ‘Item’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용어로써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고 애용하는 물건이나 제품 등이 해당된다. 내가 현재 꼭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소유 여부와 무관하게 평소에 애정을 지니고 있는 아이템이라면 두루 포함되는 그런 포괄적인 선호 대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신조어는 주로 ‘애정하는 물건’ 같은 유형의 아이템을 가리킬 때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애정하는 취향’에 해당되는 물건이므로 다른 어떤 종류의 취향이든 간에, 꼭 물건 형태가 아닐지라도 좋아하는 것이라면 자신만의 ‘애정템’ 같은 취향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취향의 애정템’이라면, 거의 모든 종류의 취향이 다 포함될 수 있는 개념으로 사용 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만큼 ‘애정템’은 매우 선호하는 제품에 대한 일종의 애칭 같은 용어이므로, 자신이 매우 좋아하는 취향일수록 이런 러블리한(lovely) 애칭을 붙여서 즐겨 쓴다면 더욱 어울려 보일 것이다. 어떤 형태의 취향이든 간에 나의 애정만 가득하다면야, 이런 애칭이 어찌 어울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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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골 마을이나 해외의 다른 나라에 방문했던 경험만 잠시 떠올려 봐도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역 특유의 정취가 담긴 엽서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그런 엽서들 하나하나가 그 사람의 ‘애정템’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어떤 형태가 없는 무형적인 요소나 서비스들도 매우 특별한 애정템이 되어 줄 수가 있다. 꼭 반드시 어떤 물건에 해당되는 유형적인 형태의 아이템이 아닐지라도 가능하다. 가령 깊은 숲 속의 피톤치드 향기 나 혹은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 같은 것들은 상상만으로도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인가. 이런 무형적인 요소들 또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유형적인 형태의 다른 제품들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애정템’이 되어 줄 때가 종종 있다. 유형 자산의 물건 아이템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취향이라서 그런가. 오로지 그 시간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그런 유일무이한 시공간의 특별한 매력이랄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런 시공간의 존재감이 뿜어내는 매력은 참 독보적으로 느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쁜 만이랴. 다른 형태들 또한 많다.



특히 좋아하는 어떤 활동이나 특정한 장소들이 있다면 그 또한 나의 애정템 취향이 될 수 있다. 뭔가 꼭 아주 거창하고 화려한 것만 포함될 필요도 없다. 그냥 진짜 아주 평범한 활동일지라도 나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면, ‘소확행(小確幸)’처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작은 활동들도 충분히 나만의 애정템이 되어줄 수 있는 거니깐 말이다. 나의 그런 선호도를 잘 고려하기만 하면 의외로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 것들도 꽤 많이 찾을 수가 있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나. ‘동네 공원 산책하기, 서점에서 책 읽기, 템플 방문하기. 카페 거리 거닐기.’ 이런 활동들은 돈이 거의 들지도 않는 데다가 나의 마음에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평온함도 제공해 주는 취향에 가까운 것들이다.

물론 조금 더 약간의 비용을 들인다면 ‘맛집 투어’ 혹은 ‘공연 관람’과 ‘전시회 감상’ 같은 것들도 신나는 애정템 활동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멀리 이동까지 할 수 있다면, ‘기차 여행’ 같은 것도 너무 좋은 애정템의 체험 활동(Activity)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당연할 테고 말이다.





이렇게 잘 찾아보면 의외로 뭔가 엄청나게 대단하거나 꼭 특별한 게 아닌 것들도 은근 꽤 있는 편이다. 그저 내가 좋아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깐 정답은 없거든. 선호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그 뭐냐. 그 유명한 대사도 있지 않나.



“나를 왜 사랑하세요?”

“그냥요. 사람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나요.
나도 당신을 왜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진짜 그냥 좋아요.”


정확히 어떤 작품에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적인 뉘앙스는 저런 분위기였던 것 같다. 얼핏 볼 때는 미사여구가 전혀 없어서, 이게 되게 멋이 없어 보이고 무미건조한 문구 같아도 이것만큼 진솔한 답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유명해진 것 아닐까.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는 말이야말로 진짜 진실이 아닐까 싶거든. 왜 사랑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명확하게 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는 이미 감성적인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고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 아닐까. 그런 이성적인 사고의 논리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면 사랑하는 현상 또한 일종의 인과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므로 그때는 이미 ‘찐(real)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상대방을 진짜로 사랑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이미 자신을 위한 사랑에 더 가까워진 거잖아. 자신을 위한 잣대와 계산이 포함되어 들어가 버린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면 그건 진짜 사랑이라기보다는 그저 나의 만족도를 위한 필요 도구가 되어버린 거지. 그런 자기만족에 더 가깝겠지. 마치 이런 인과관계의 논리라고나 할까.


“어떤 나만의 사랑 공식이 있는데
거기에 어떤 변숫값을 투입했더니,
그 산출값 결과가 마침 평균값 이상이 나와버렸어요.

그래서 당신을 사랑해요.”


이거랑 뭐가 다를까 싶은데 말이야. 근데 이건 무슨 과학책 공식 같잖아.



조금 더 듣기 좋게 살짝 완화해서 표현해 보면 이 정도로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떤 특성을 좋아하는데
당신이 그 요건을 충족하는군.

그래서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냥~!’이라는 말보다는 조금 더 성의 있어 보이기는 해서 잘만 더 꾸며서 다듬으면 겉으로는 나름 괜찮아 보이겠지만, 이건 엄밀히 말하면 이미 자신을 위한 사랑이 되어버린 것과 다름없지 않나. 이 또한 사랑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나의 선호도에 따른 호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가령 자신과 비슷한 유대감 같은 ‘전우애’나 ‘친밀감’ 일 수도 있고 평소의 이상형에 따른 ‘우상 숭배’의 감정일 수도 있으니깐. 이런 감정도 애정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실질은 나를 사랑하는 감정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것 같다. 그러면 거기서 파생되어 형성된 상대를 향한 사랑은 그 정도가 조금 덜 할 수도 있다는 것뿐이겠지. 비록 겉으로 발열하는 사랑의 온도는 뜨겁게 높을지라도 그 사랑의 내면 본질은 좀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겉으로는 티가 확 많이 나지는 않는다고 해도 디테일은 본인만이 제일 잘 알지 않을까. 다만 본인조차도 그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고 처음에는 그저 저런 종류의 감정이 출발이었는데 갈수록 진짜 더 커다란 찐사랑으로 발전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간에 그 열병에 빠져버리면 그런 세세한 차이까지는 감지하는 게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뿐이지.



아무튼 뭐가 됐든, 그 이상으로 더 넘치는 진짜 찐사랑이라면 오히려 이유가 없을 때가 더 많다는 사실이 어찌 보면 참 미스터리하지만 그래서 더 낭만적으로 들리는 진실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거든. 그만큼 아무리 남들한테는 삐까뻔쩍하고 멋져 보일지라도, 내가 굳이 싫어할 만한 별다른 이유도 없는데 그다지 영 끌리지가 않는다면 나한테는 그냥 바로 ‘땡!’ 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런 것들은 절대로 나의 애정템이 될 수가 없다. 이와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것. 아무리 작고 평범해 보여도 나한테 만큼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너무 좋은 특별한 느낌을 준다면, 그거야말로 나만의 진짜 애정템이 되어 줄 자격이 충분한 거지.



‘얘야, 너는 ‘딩동댕!’ 이리 오련! 합격~!^^’


이렇게 어떤 여유가 많지 않을지라도 나의 상황에 맞게끔 나만의 크고 작은 애정템들은 얼마든지 구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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