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People Healing
정동진 숙소에 도착해서 그 다음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썬크루즈 공원’을 갔다 온 후에 하루 이틀 정도는 바닷바람을 쐬거나 근처의 카페에 가보았다. 여기 도착하자마자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마구 돌아다니는 관광보다는 그저 너무나 쉬고 싶었던 마음이 컸으니깐 말이다. 엊그제 썬크루즈 공원 산책에서 좋은 사람들을 우연히 많이 마주쳤던 것처럼, 이날 또한 오후의 조용한 휴식 타임을 보내고 저녁에 숙소로 들어가는 순간 정겨운 장면을 우연히 또 마주치고야 말았다. 내가 머물던 숙소는 4층 정도의 평범한 건물로 작고 아담한 편인데 들어가는 입구에서 외부에 있는 ‘바비큐 실’이 측면으로 비스듬히 보인다. 그런데 이날도 역시나 동네 주민들끼리 한잔 하면서 오순도순 모여 저녁 식사를 하시는 듯 했다.
정동진역 주변은 아무래도 작은 기차역이다 보니깐 주택가보다는 몇몇 식당들과 숙소들 위주로 분포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 모두 다 사장님들이다. 뭔가 ‘대표님’보다는 어감 상 ‘사장님’이 더 어울리는 업종들이다. 식당 사장님, 숙소 사장님, 카페 사장님 등등. 작고 소박한 가게 사장님들의 마을.^^ 몇 개 되지 않는 카페 사장님들은 이 마을에 사는 것 같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숙소와 식당 사장님들은 영업하는 건물이나 근처에서 살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다.
이런 사정들 때문인지, 대부분의 가게들은 영업을 좀 빨리 마감하고는 동네 주민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는 진풍경들이 벌어진다. 동네 모둠 잔치를 하듯이 말이다. 저녁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빠져나가는 시간이라서 손님들이 별로 없기도 하고 예전의 전성기 때보다는 조용해진 편이라서 평일에는 사람이 더 없으니깐 영업 마감 시간이 빠른지도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왠지 그런 현실적인 이유만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저 일찍 문 닫고 친한 이웃사촌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실컷 먹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자신들만의 그런 소소한 파티 시간을 오히려 더 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의 식당은 마감 시간 근처에 가까울 때 방문하게 되면 원하는 메뉴에 따라서 식사나 포장이 가능한지 혹은 몇 인 분의 식사를 원하는지 등을 체크하신 후에 응답을 해주는 편인데, 이곳 대부분의 식당은 문을 열기만 해도 바로 ‘영업 끝’이라는 반응이 즉각 돌아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몇 푼 더 벌려고 손님 더 받고자 하는 의지가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또 그게 그다지 서운하지 않은 이유는, 식당 문 열자마자 바로 그 진풍경이 시작된 것을 목격할 수 있어서다.
아, 벌써 또 몇몇이 모이셨네. 뭐, 같은 식당 사람들끼리 식사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근데, 어? 저 분은 여기 식당 사람 아닌데. 최소 두 팀 이상 모였군.
이렇게 그 동네 인맥 지도의 일부분이 좍 펼쳐지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저렇게 맛난 고기 몇 점과 함께 알코올 몇 병이 곁들여진 작은 파티를 매일 하면서 살아가는 저런 삶은 어떨까? 다들 그렇게 살아가나? 물론 그날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무리하는 일종의 세러머니(ceremony)처럼 그들에게는 단지 소박한 일상 중 하나겠지만, 내 눈에는 순간적으로 살짝 부러운 장면처럼 다가왔던 것은 왜 일까.
매일 매일 파티라니...오...재미있겠는 걸? 고단했던 그날 하루의 피로감이 싹 가시지 않을까?
매일 그러면 또 재미 없을라나? 아니, 그날 하루 열심히 일할 맛 날거 같은데?
다 끝나면 매일 신나는 작은 파티가 기다리고 있으니깐?
예전의 나는 ‘월화수목금금금’ 달리다가...
어떤 금요일은 늦게 들어가는 퇴근길이 유독 서러운 마음이 들 때면, 집에 치맥이라도 왕창 사들고 가서 치킨과 맥주를 실컷 배터지게 흡입하고 난 후에야 기분이 좀 나아지고는 했었지. 그렇게 간신히 자축 파티를 날 잡아서 한 번에 몰아서 할 때면, 나는 그 조차도 참 애써 행복할 수 있었는데 저들은 저게 일상이라니. 크... 파티가 일상?
하루는 그런 ‘그들만의 세상’이 궁금해서 우리 숙소 사장님한테 갑자기 물어본 적이 있다.
“예전에 그리 큰 회사에서 엄청 치열하게 일하시면서 열심히 사셨잖아요? 새벽에 퇴근할 때도 많다고 그러셨고요. 그때가 더 좋아요? 아니면, 이렇게 매일 즐겁게 살고 있는 지금이 더 좋으세요? 다시 예전처럼 일하던 때가 그립거나, 뭔가 허전해서 공허하지는 않으세요?”
무언가 좀 더 철학적이거나 혹은 더 현실적인 답변이 돌아오지 않을까, 순간 살짝 기대를 했었는데 의외로 답변은 모호하게 돌아왔다.
“그때는 그 나름대로의 사는 맛이 있었고, 지금은 가족들을 위해서 이렇게 하루하루 내 사업 하면서 살아가는 게 좋은 거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뭐. 나는 지금 이 생활도 좋아요.”
그때 자리를 마무리 하면서 지나가는 소리로 얼핏 물어봐서 그런 건지 살짝 취하신 상태라서 그런 건지, 그리 진중한 답변은 아니었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좀 아리송하기도 했다. 진짜 솔직한 심정은 막상 회피하신 것일까.
그래서 더 좋다는 건가? 그냥 별로라는 건가? 덜 좋다는 건가? 둘 다 좋다는 건가?
So what?! 결국 인생의 답은 없는 건가. 특히, 인생의 행복도 측면에서는 더?
여기 이 동네의 이런 저녁 식사 문화는 나중에 점점 더 알게 되었지만, 그날은 엊그제 정동진에 도착했던 시점이라서 그런 분위기를 잘 몰랐던 터라 더 신기해 보이기만 하던 때였다. 그래서 일행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어제처럼 살짝 눈인사만 하고는 입구로 살그머니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숙소 사장님이 나의 식사 상태를 물어보셨다.
“저녁은 먹었어요? 아직 식사 안했으면, 여기 삼겹살 있으니깐 조금 먹고 들어가요.”
사람이 엄청 많으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적당히 거절하고 그 자리를 슬쩍 피했을 텐데, 마침 오늘은 사장님 이외에 딱 한 두 분만 더 계셨다. 어제처럼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건 아니었다. 거기다가 그 삼겹살 냄새가 어찌나 맛나게 풍기던지. 실은 어제도 여기 건물 관리해주시는 실장님 생일이라면서 점심 때 바비큐를 주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아직 그 감동이 오감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고기를 연달아 또 주신다니. 헤헤. 여행 오면 특히 고기 한 점이 더욱 소중한 법이다. 고기 값이 금값이다. 그만큼 고기 맛은 황금 맛이다.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한 더욱 그렇다. 음, 이런 횡재를 놓칠 수는 없지. 그래서 못이기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자리에 앉았다.
지글지글 익혀진 삼겹살 한 조각과 함께 알코올 한잔을 흡수했다. 오, 역시 맛있어. 근데 뭔가 맑은 이 느낌은 뭐지? 그 순간, 어제 나가기 전에 점심 때 잠깐 먹었던 그 바비큐 현장에서 주워들은 얘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이게 바로, 어제 그 말로만 듣던 ‘공기와 주량의 상관관계’인가? 실장님 남편이라고 하셨던 그 분이 말씀해주셨던 것 같다. 똑같은 주량의 술을 마셔도 희한하게 서울에서는 더 쉽게 취하는데, 여기 정동진에서는 잘 취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이곳 시골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여기서는 확실히 덜 취한다고 하셨다. 어제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금 현재 자동으로 실전 테스트 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느낌인지 실감나고 있는 중이다. 뭔가 감이 잡히는 기분이다. 이 맑은 느낌.
지금 마시고 있는 소량의 알코올이 평소처럼 쓰디쓴 맛이 아니라, 맑은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 몸에 해로운 술 같지가 않고, 마치 도수 없는 맑고 깨끗한 청하 같은 그런 청량감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잘 넘어간다. 목 넘김이 부드럽다. 자연스레 주량이 늘어나고 있는 기분이다. 나 원래 이런 디테일한 차이까지 느껴질 정도로 전혀 알코올 전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술이 센 편도 아닌데 알코올이 이렇게 맑은 물의 느낌이라니. 진짜로 지금 공기의 영향인가? 그저 이 자리가 마음이 편해서 현재 섭취 중인 알코올까지 매우 가뿐하게 느껴지는 것뿐인가? 진짜로 어제 그분의 말씀이 맞나 보다. 도심 한복판의 서울 공기가 아닌, 한적한 시골 공기의 위력 말이다. 역시 공기의 힘이란 이렇게 강력한 거구나. 원래 좀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꼭 회사 사무실 공기의 분위기까지 가지 않아도, 지금 여기 이 순간의 현실 속 진짜 공기에서도 그 내공을 자체적으로 발휘하고 있는 게 느껴지네. 분명 같은 회사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팀은 입구 문만 열어도 아주 무겁고 탁한 공기에 짓눌린 듯 자욱한 안개 느낌이 마구 흘러나오는가 하면, 바로 옆의 다른 팀은 들어가자마자 아주 산뜻하고 개운한 공기가 느껴지면서 내 발걸음마저 경쾌하게 만드는 곳이 있지 않은가. 이런 것처럼 아무래도 환경오염에 더 노출된 서울에서는 나에게 주어진 원래의 주량마저도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도록 더 탁한 서울 공기에 의해서 그 잠재성이 눌렸던 것일까. 여기 시골 공기는 더 깨끗하고 맑아서 그 무한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지금 이끌어주고 있는 것인가. 그동안 억눌려 있던 주량의 술빨?까지 끌어올려주는 공기의 위력이란, 진정 감탄할만한 것 같다.
역시 우리는 이런 공기님의 소중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서 어디든 간에 내가 오롯이 존재하고 싶은 공간이라면, 오염된 공기일수록 소독을 해서라도 정화시켜야 하는 것은 필수 아닐까 싶다. 그게 실질적인 ‘자연 공기’의 실체이든 간에, 어떤 아우라가 형성되어 있는 분위기의 ‘소울(soul)적인 공기’이든 간에 말이지. 소독이나 정화가 절대적으로 힘든 경우에는 공간 자체를 이동하는 게 낫겠지. 앞으로 주량을 늘리고 싶을 때는 서울이 아니라 시골로 손수 행차해서 연습하고 싶은 것처럼!
이렇게 평소 때보다 더욱 막강해진 술빨과 안주빨 덕분인지 매우 초롱초롱하고 청아해진 소울(soul)로 무장한 채 알코올 한 방울의 영향도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그 분들의 소소한 대화에 집중하면서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 동네 주민들이 살아가는 소박한 이야기들을 하셨다. 그냥 평소에 사는 이야기들 말이다. 어떤 시기에 손님들이 많이 몰린다는 둥, 주로 어떤 음식점들이 어디에 있다는 둥, 전반적으로 그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사장님이 애지중지하는 그 무시무시한 개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을 시켜주셨다. 몸집이 꽤 크고 매우 매섭게 생겨서 항상 노려보고 있는 인상인데다가, 자기가 잘 모르는 사람이 근처에 가면 또 ‘으르릉’거리면서 경계도 한다. 원래 난 귀여운 동물을 보면 예뻐하는 편이기는 한데 가깝게 잘 다가가지는 못한다. 거기다 저렇게 무섭게 생겼으니 더더욱 근처에 얼씬도 안 하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의외의 친근한 얘기를 하나 더 덧붙여 주셨다. 저 아이가 겉으로 생긴 것만 저리 무서워 보일뿐이지, 도둑이 오면 도둑이랑 같이 놀고 있는 개라는 것이다. 그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참, 너무나 인간적인 개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물며 인간도 아닌 개도 저렇게 인간적인데, 어째 우리 ‘인간’들은 점점 인간적은커녕 더 반대로 날이 갈수록 오히려 ‘개’처럼 보이는 뉴스들이 종종 들리는 걸까. 인간들과 개들이 서로 바뀐 걸까? 설마, 이게 요즘 트렌드(trend)인가? 아, 언제 또 저런 험난한 트렌드가 찾아온 것이냐. 저런 트렌드는 아예 전통문화로 자리 잡아서 눌러앉기 전에 하루 빨리 청산되고, 미덕이 넘치는 아름다운 트렌드의 세상이 와야 할 텐데. 진짜 말세로다. 다시 한 번 속으로 헛웃음이 슬쩍 삐져나왔다. 그런데 뜬금없이 더더욱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갑자기 그 현장에서 펼쳐졌다.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어르신 사이에서, 너무 진지한 나이 배틀(battle)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진지 아닌 진지빨?이 터졌구나!
처음에는 두 분이 나이 가지고 티격태격 하면서 서로 가볍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얘기를 가만히 잘 들어보면 은근히 놀라운 팩트(fact)들이 점점 튀어나오는 바람에, 참 어이가 없어서 계속 웃음이 터지는 상황들이 연달아 발생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어린 아이들처럼 내가 한두 살 더 많다고 으스대는 게 아니라, 연세들이 있으신 만큼 반대로 한 살이라도 더 어리다는 자랑을 하고 싶으셔서 안달나신 그 순수함? 덕분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미소가 지어졌다. 근데 더욱 진정한 순수함은 따로 있었다.
그저 한두 살 더 젊다고 자랑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 동네에서 ‘제일’ 젊다고 대결하면서 옥신각신하는 천진난만함이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애써 이 상황을 긍정의 마인드로 승화하고자 하는, 평소의 생존 습성이 또 나와 버렸던 것일까. 이렇게 또 나름 셀프 자축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머, 그럼 나 지금 우연히 함께한 이 식사 자리가 이 동네에서 가장 젊은 남성들의 모임이었어??
이런 우연한 행운이 있나. 역시 난 어딜 가나 행운이 가득하구나!
꼭 행운의 여신이라도 나를 따라다니는 것처럼 말이야.
근데 잠만...뭔가 좀 이상한데..? 육육... 오오...?’
그런데 이런 나의 희망찬 자축마저 더욱 어이 상실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바로, 그 분들 진짜 나이의 실체였다! 자신들이 이 동네에서 가장 젊은 청년? 이라면서 서로들 마구 밝히고 있는 그 어르신들의 진짜 나이는, 마치 기네스북이나 전래 동화에 나올 법한 전설의 나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 가장 젊은 청년의 후보였던 한 분은 50세였고, 다른 한 분은 60세였다. ^^; 50과 60이라는 수치 자체가 놀라운 게 아니라, 그 숫자가 가장 젊음의 나이라는 그 사실이 놀라운 거였다! 하지만 두 분은 이런 사실에 여념 없이, 각자 이 동네의 가장 젊은이는 바로 자신이라면서 목에 핏대 세우고 본인들의 주장을 그렇게 관철시키고 계셨다. 더구나 두 번째 후보자인 우리 숙소 사장님께서는, 애절한 조건문 한마디를 더 덧붙이시면서 말이다.
“너가 이사 오기 전에는, 내가 이 동네에서 제일 젊었어!
십년 넘게 계속 내가 가장 젊었다고!”
크크크. 여기서 어찌 더 이상 웃음보가 터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나 정말 그때 순간적으로 너무 웃겨서 내 배꼽이 빠질 뻔 했다. 아니 웃기다 못해 왜 사장님의 서러운 절규까지 느껴지던지! 같이 애절해주고 싶었다. 흐흑. 그렇게 잠시 출장 나간 내 배꼽이 돌아오자마자,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고 진중하게 생각해 보았다.
지금 이 정겨운 정동진 기차역 마을에서 가장 젊은 청년의 나이가 바로, 육...육...60세...?! 오...오...50세?! 오...오...오, 놀라워라! 지금 내가 진짜 현실적인 장면을 보고 있는 것 맞지? 그것도 이렇게 바로 내 눈 앞에서? 아니, 이건 거의 뭐,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의 수준인데? 아니, ‘세상에 이런 기이한 일이~!!’ ‘세상에 이런 기이한 동네가~!!’ 있을 수도 있구나?!
설마 지금 내가 개그 콘서트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미래의 저출산 실태 보고서’와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지금 보고 있는 건 아닌 거지? 오...혹시 조만간 곧 나타날 수도 있는, ‘저출산 국가’의 가까운 미래 모습인가? 오, 마이 갓...! 이런, 감탄사가 절로 연발로 나오네!
하지만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발 더 나아가는 모습들이 정말 애처롭게 패기 넘쳐 보일 정도로 말이다. 최근에 법이 바뀌었다면서 한 분은 본인이 아직 40대라고 자신만만하게 우기셨고, 다른 한분인 우리 사장님은 자신이 아직 절대적인 50대라고 끝끝내 강인하게 웅변하셨다. 그런 당찬 모습들이 꼭 오래 전 동네 친구들끼리 한 살이라도 자기가 더 많다고 서로 싸우던 그때 그 시절의 꼬마 아이들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가 않아서, 이 순간이 참 재미나고 있는 중이다. 이때 시점이 아마도, 그 새로운 나이와 관련된 개정법이 아직 발효되기 직전이었을 거다. 즉, 한국 나이를 깎아주는? 그 법이 아직 유효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직전 시점이라서 그런지, 이 어르신들은 너무나 설레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아이고, 저렇게 다들 해맑게 좋아하시는데 기왕 깎아주는 거...그거 뭐. 그리 큰 돈 드는 것도 아닐 텐데, 그냥 통 크게...한 5살 정도 왕창 깎아드리지 그랬어. 법이 못 됐구나. 짠돌이구만. 겨우 한 두 살만 깎아주는 건 뭐람. 하긴 그래도 저리들 좋아하시는 것 봐라. 안 그래도 우리 나라가 나이에 민감한 편인데 외국보다 더 많은 나이들을 가지고 살았으니, 이제야 좀 그 한이 풀리시나 보다. 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