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noh Jun 11. 2023

십원 2

다시 소생되는 저 밑의 기억 (소설)

-끝낼 수 없는 관계의 굴레-


 “쌀이 떨어졌어. 여보.”

  이 집에서 아무도 쌀이 떨어지는지 관심이 없었다.

 “너가 사와.”

 “아아니. 내가 20킬로짜리를 들 수가 없잖아.”

 배달시킬 걸 그랬나. 려원은 어깨 근육이 파열되어 회기 당 침 한번 맞고 디엔에이 주사 맞는데 20만 원이 넘는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걸 비싸다고 했으면서 200이 넘는 돈을 들인 어깨를 다시 쓰라고? 심난하다. 남편의 무관심. 당분간 어떤 무게나 움직임도 감당하지 말라 주치의가 당부했었다.

 


 다음 날 새벽 이 집 주방에 덩그러니 20킬로그램짜리 쌀 포대가 놓여있다.

 려원은 쌀 포대를 뜯지 않고 냉동실에서 얼린 식빵을 꺼내었다. 쌀 포대를 무시하며 소심한 복수를! 밥충인 사람은 어디 밥을 먹어보지 못할지어다.

 토스트기를 사용하기보다 프라이팬을 달구어 식용유를 넣고 식빵을 구웠다. 이게 려원 스타일! 아참, 피자토스트를 만들기로 했지. 빵이 탈까 봐 불을 끄고 다시 냉동실에서 치즈를 꺼내어 빵 위에 얹는다. 아, 어제 그래서 피망을 사다 놓았지! 그제서야 주섬주섬 피망을 꺼내어 썰 준비를 한다. 토마토 스파게티 소스를 찾으러 한  더 냉장고 문을 열고...

 ‘한 번에 되는 일이 없어.’

정신의 쇠약을 느끼며 속으로 한숨을 쉰다. 이렇게도 정신이 없을까.




 어제만 해도 쾌청하던 하늘이 밤새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온 땅을 적셨다. 간신히 눈을 뜨자마자 어떤 패턴의 딱딱 소리가 이어진다. 회색빛 보도블록 위에 반사되는 휠을 돌리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온 것이다. 새벽부터 놀이터 운동기구에 오른 주민이 열심히 어깨운동을 하며 휠을 돌리고 있었다. 그 소리에 이제 일어나야지 하며, 간신히 창밖을 내다본 것이다. 오늘은 늦잠을 잘 수 없는 일요일이다.

 오전에 도서관에 일을 해주러 가야 하고 오후에는 딸아이의 진도를 봐주어야 한다. 남편은  어젯밤 천둥이 치고 한바탕 쏟아진 자정 무렵 부스럭대며 들어와 던진 한 마디가

 “나 내일 시골 간다. 엄마 텔레비전이 고장 났대.”

였다. 그럼 그러시지요. 일요일에 그를 위해 내어 줄 시간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냥 내 일을 보면 되는 것이다. 남편이 들고 온 부스럭 봉투 안에는 바나나 우유가 들어있었다.



 아차, 프라이팬의 토스트가 타고 있다. 늘 그렇듯 잠깐 딴생각을 챙긴 것뿐인데 불시간을 못 맞춘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아직 새까맣게 탄 것이 아니어서 살릴 수 있다. 그대로 건져서 반밖에 녹지 않은 치즈가 흘러내리도록 개인 접시에 담아 다시 레인지에 돌릴 생각이다. 딸애가 예뻐하는 빈티지  접시를 꺼낸다.

 레인지에 넣어 돌릴 생각을 하다 보니 혹시 접시 바닥에 여직 스티커를 붙인 채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의 촉은 거의 맞다. 주로 샐러드만 담았던 것이라 미처 딱지를 떼지 못했는데. 아니 잊고 썼던 거지. 드디어 레인지 속에 들어갈 테니 점검을 하라는 계시는 하늘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증거이다. 어쩜 몇 달을 사용한 접시의 스티커가 이렇게 깔끔할까? 물에 젖지도 않았나 봐. 새것 같아. 심지어 접시 바닥에서 슬슬 잘 떨어지는 것이 고급종이를 사용한 듯하다. 만약 스티커의 전문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반론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접시 바닥에 스티커는 손톱으로 긁어내도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골치를 썩는 법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정신없이 토스트를 완성하기 위한 빈티지접시 바닥에 붙은 스티커가 멀쩡히 살아있었고 손톱으로 살짝 긁었을 때 찢어지지도 않고 잘 떼어내 진다는 사실이 너무나 훌륭하게 감사할 지경이었다. 뜯어낸 자리에 ‘메디인 코리아’를 발견하는 순간, 아, 역시. 88 올림픽의 감격이 살아나듯 한국산이 최고구나 싶은 만족감에 아침이 다 뿌듯해지는 것이었다.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된다는 자체가 기분을 망치지 않고 그럭저럭 아침을 넘길 수 있다는 것.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려원은 얼마 전 정신과를 찾았다. 려원보다 스무 살은 아래일 듯한 앳된 얼굴의 전문의는 순진해 보이는 눈망울을 꿈벅거리며 하실 말씀 하시라고 기다렸다. 이게 뭔가 싶으면서도 3회를 다녀왔고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의미 하나를 간직한 채 상담회기를 멈추었다. 이야기를 좀 더 할라치면 의사는

 “저어, 다음 대기 환자가 있어서요.”

하는 것이었다. 젊은 전문의가 30분 동안 내 이야기를 들음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어딘지 공허했다. 이런 것이라면 려원이 맘카페 익명방에서 신랄하 솔직한 감정을 질문하는 것보다 시원하지는 않았다. 물론, 인터넷 익명방은 목숨을 담보할 정도로 무례한 댓글이 오고 가는 걸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곳은 어찌 보면 분열된 자아로 살아가는 또 다른 려원과 같은 평범한 인물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보루인지도 모른다. 익명의 무책임함이 제거된다면 조금은 성숙한 대답을 듣기는 할 수 있을 텐데. 무례한 갈김의 댓글이 수두룩하지만 간혹 아주 사려 깊은 댓글이 위안을 줄 때도 있기에 려원 또한 사려 깊은 댓글러가 되어줄 요령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준다. 음, 그런데 이 고소득의 전문의는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너무나 밋밋하여 유리벽을 마주 보고 앉은 것 같은 심정이 되어 려원은 다시 마음을 닫아 버렸다. 의사에게서 남은 말은 “요즘은 약도 나쁘지 않다.”는 것뿐. 그래서 내담자의 입장에서는 필요하다 싶으면 언제고 다시 와 처방을 받으리라는 마음으로 다른 자구책을 찾는 것이었다. 그게 남편과의 힐링시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인공지능이나 다름없는 정서를 가지고 있기에 려원은 그에게서도 멀어진다.

 자꾸 남의 편이 되어버리는 남편은 려원의 탈출구가 되기에는 너무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 보인다. 그의 별은 어떤 것일까? 가끔 어쩌면 어린 왕자같이 천진난만한 것이 진짜 소행성에 살고 있는 어린 왕자가 아닐까 싶다. 기승전결 무엇보다 먼저 본인의 엄마가 우선순위인 이 어린 왕자의 철없음에 려원의 우울은 점점 깊어지고 그럴 때마다 눌러둔 저 밑에 과거의 그가 살아난다. 제발 그러지 않기를! 나오지 마.

 이때 남편이 다가와 말을 건다.

 “이번 달 동생 생일이니. 20만 원을 보내겠어.”

 “음, 근데 이번에는 왜 20만 원이야?”

 “아들 기숙사비도 보내줬으니까.”

 “그럼, 이제부터 매년 20만 원이야?”

 에구 또 따지고 말았다. 그의 별 사람들은 그가 알아서 하도록 해야 하는데...

 하하, 유난히 자기 식구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챙기고 드는 남의 편. 려원이 정신과에 다녀온 것은 관심이 없는 남의 편이다. 려원은 순간, 가슴속 경태를 당당하게 다시 꺼내어 들었다. 그가 지금 자신의 남편이었다면 그도 시동생의 생일과 시어머니의 텔레비전이 자신보다 먼저였을까.


작가의 이전글 혼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