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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noh Dec 03. 2023

누군가의 메타적 삶

중심


 


“일요일인데 산책 운동하러 나갈 거야?”

“응, 대공원으로 다녀오자.”

하지만 오후 일정이 있는 남편은 난감했다. 며칠 전부터 말해 놓은 일정인데 나는 딴 세상 다녀온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멀리 다녀오자고 한다. 이윽고 뭔가 생각났기에  가까운 둘레길을 다녀오자고 했다.



가끔 도는 둘레길. 한번 나오기가 점점 귀찮아져서 그렇지 오기만 하면 운동 할만 했다.

 전에는 두 바퀴는 돌았지만 점점 한 바퀴로 줄었다. 이상하게 그것도 욕심이라고 두 번을 돌면 발에 무리가 오는 것이었다. 걷기 운동마저 왜 그럴까.


 정오. 일요일이라지만 식구들은 모두 외출 중이다. 혼자서 뒹굴며 따듯한 오후를 보내면 된다. 문득 이렇게 평온하다가 어느 순간 떠나가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늑했다. 11월만 해도 뭔가 활기찬 12월 계획을 세우며 정신없어 했는데 막상 조용한 하루가 오니 이걸 제대로 쉬지 못하는 중이다. 심지어 심한 외로움을 느끼고 다차원의 세상 중 한 순간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풍요롭다가 허탈해지는 격변이 자주 올 수가.




 그 언젠가도 느꼈다 시공의 비틀어짐. 어느 차원에서는 또 다른 내가 활발하게 지내고 있을 그 시간에서 순간 이탈해 온 듯 잠시 머리가 아찔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타임머신을 탄 것인지 영화처럼 메타버스의 세상에 다녀 온 것인지 순간이동을 느끼는 때가 있다. 어쩌면 순간이동의 다중적인 이탈 속에 또 한 차례의 죽음에 다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다 내 헛소리인가.


 세상의 모든 것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사람들과의 소통에 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기계의 조작으로 쏟아져 버린 쓰레기통같은 현실의 더미 속에 허우적거리며 시공에 적응을 못하고 꾸역꾸역 살고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나를 인도해줄 뜻밖에 누군가는 없다. 그저 현실을 인정하며 살아져 왔다. 엉클어지고 무너져 가는 내 주변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이게 현실인지 뭔지도 모를 만큼 균형을 찾지도 못하면서 어느 덧 내 몸은 노화의 단계로 진입하고 말았다.


 계기판의 고장인지 초월자가 실수하신 건지 나는 그만 늙어야 하는데 이미 남들보다 빠르게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 까닭인지 메타세상의 이동을 스스로에게 들켜 버렸고 다만 원하는 세계로 진입하는 방법도 덩달아 잊었다. 마치 인터넷 정보 기입할 때 아이디와 비번이 기억나지 않아 수십 번 인증번호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가야만 했을 어느 세상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놓친  것에 대해 때로는 울다가 때로는 잊기로 하다가 또 다른 업무가 쌓이고 새로운 세상에 여전히 다녀오고 그러다 보니 뭔가 또 잊어버리고 슬픔마저 사라지고, 무덤덤하게 반복되듯한 상횡으로 몇 차례 발가락이 부러지는 일을 경험하면서, 자판의 어느 곳이 눌러지면서 이상한 문자배열이 주르륵 써지듯 난 또 그게 내 인생이 아닌 줄 알고 또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그러다가 요즘이 되고 말았다. 시공이 참  빠르게 지난다.




 금년도 엄청난 더위에 호흡곤란이 왔던 여름이 지나자마자 가을이 오나 싶더니 겨울이 되어버렸다. 이게 다른 사람들도 다 느끼겠지만 사실은 차원박리로 나타나는 기시감이었다. 때로는 비슷한 세계로 이동하기 때문에 몰랐던 그 사실을 잠시 틈이 벌어진 공간에 다녀오는 오류를 경험하고 나면 이상히 여겼다가 거듭 되는 오류에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모두 어떤 존재였는지 서서히 깨달아가게 되는데 대부분은 그러는데 어느 철딱서니 없는 이들은 여전히 그걸 모르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순간 그 꼴불견을 보고 순간이동을 통해 아주 눈깜짝할사이 인내의 혹성에 다녀오게도 된다.


 이런 현상을 눈치 챈 사람은 죽음이 어떻게 다가올지도 예상하게 되고 그러다가 삶의 비밀을 조금씩 알게도 되는데 또 어떤 사람은 그래서 너무 재미있게 자기의 남은 생을 연출해 보고, 좀 멋져지기도 하며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 대부분 우울증에 걸려 잠시 자신을 가두어 두기도 하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자신이 미리 예정해 놓았던 어떤 장치 때문에 다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한다.


 가끔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들은 이 모든 굴레에서 이탈한 시공이 무게중심을 못 잡고 너무 긴 고민을 한 나머지 생사의 갈림길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다음과 같이 왜 죽게 되는지 알 것도 같은 지경에 이른다.




 남편이 외출한 사이 따듯한 방에서 졸다가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누구랑 갈까 생각하다가 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때가 있다. 먹먹해지며 쫄아드는 세월의 파노라마에 차츰 몸이 녹아내리고 바닥에 드러누워 이제는 끝이 나는구나 하고 때를 받아들일 운명을 준비하던 여자가, 갑자기 남편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들어오는 바람에 그때를 면하고 오히려 벌떡 일어나는 순간 다른 세상으로 전환되어 그런 생각을 언제 했는지도 다 까먹고 튀어 나온 말이

 “밥 먹었어?”

하고 물어보는 거다. 밥솥에 밥은 남아 있는가? 궁금해 하는 순간 이제 밥은 그만 차리자는 속삭임이 들리며 그녀는 바삐 메타 세상에 다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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