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마지막 주 주말에 호주 멜버른 퀸 빅토리아 마켓(Queen Victoria Market)에서 열리는 아티스트 마켓에 참가했다. 퀸 빅토리아 마켓은 멜버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이 마켓은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 같이 크고 유명한 재래시장이다. 줄여서 QVM이라고 하고 빅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기념품, 과일, 옷가지 등을 판매하며 다른 곳과 비교하여 저렴하다. 멜버른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으로, 1850년대에 멜버른 동쪽지역에서 작은 시장으로 시작되어 점차 확장되었다.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상품으로 멜버른 시민들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들도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 아티스트 마켓이 열린다. 멜버른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나는 호주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스튜디오를 오픈하여 전시와 클래스 등을 기획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 당시 마켓도 많이 참여하여 작가로서 역량을 넓혀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2020년에 결혼하고 호주로 다시 돌아왔고 코로나로 인해 도시 전체가 봉쇄되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2022년에 코로나로부터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주춤하였다. 2023년이 되어서야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아티스트 마켓도 다시 활성화되고 멜버른은 점차 코로나 이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갖춰갔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
똑같이 0에서 시작하지만
내가 이전에 끌어올린 게 10이라면
10으로 올라가는 길이 단축된다.
호주 대학교에 다닐 때 성격과 작업 성향 등 모든 게 비슷한 친구가 있었다. 이제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가까운 사이이다. 친구는 호주 회사에서 마케팅 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일러스트에 열정이 있으며 약간의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아티스트 마켓에 함께 나가자고 제안했다. 나 또한 이에 목말라 있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아티스트 마켓에 함께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이미 많은 경험을 했기에 마켓 준비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단지 호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서 할 일이 많았지만 다 겪은 과정이기에 그 과정을 다시 밟기만 하면 됐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다. 했던 일을 또다시 반복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 똑같이 0에서 시작하지만 내가 이전에 끌어올린 게 10이라면 10으로 올라가는 길이 단축된다. 이전에는 1년이 걸렸다면 지금은 그보다 훨씬 빠르거나 쉽게 도착할 수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호주에서 참가한 마켓 후기를 이야기해 보겠다. 일단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모든 작가의 작품에 각자의 특성과 스타일이 담겨 있기 때문에 서로 비교하고 견줄만할 것이 없었다. 그 안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 자체로 이미 기분이 편안하고 좋았다.
앞으로 뚫어야 할 벽이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하나하나 하다 보면 언젠가 뒤돌아 봤을 때
내가 걸어온 수많은 길과 과정이
보일 거라 생각한다.
고객층은 다양했다. 빅마의 특성상 멜버른 사람들도 많고 관광객도 많았다. 어떤 관광객은 해외 배송이 되는 지도 물어봤다. 첫 마켓 참가인데 해외 배송까지 의뢰를 받다니 너무 감사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내 작품 중에는 다채로운 색을 담은 멜버른 건물 일러스트 시리즈가 있다. 그래서인지 멜버른 사람들도 좋아하고 관광객들도 기념품으로 사가고 싶어 했다.
한국 아티스트 마켓과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은 아트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호주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일반적으로 아트에 관심이 조금 더 많은 편이다. 호주 사람들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으며 어느 집에나 그림이 다 걸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터가 상당히 인기가 많은 편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 사람들은 엽서를 더 좋아한다. 간단하게 벽에 붙일 수 있으며 가격도 부담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 또한 지지할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한국에서 잘 안 팔렸던 캔버스 작품이 여기서는 쉽게 팔렸다. 고민 없이 사가는 모습을 보며 호주 사람들은 정말 이런 거에 망설임이 없다는 걸 느꼈다.
호주 사람들은 여전히 손 편지를 쓴다. 생일이나 어머니날(Mother's day),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이 있을 때 손으로 직접 편지를 써서 선물과 함께 건네준다. 우리나라는 엽서를 편지의 용도보다는 집 벽에 붙여서 꾸미는 걸로 더 많이 활용한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여전히 손으로 편지를 쓰기 때문에 이에 맞는 엽서를 많이 구매한다. 그래서 케이크 일러스트가 담긴 '얼마나 달콤한 삶인가(What a sweet life)' 시리즈가 생일 엽서로 인기가 많았다.
한국보다 높게 책정되는 가격도 나에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 2,000원에 판매하던 엽서를 호주에서는 $5(한화 약 4,400원, 2023.03.28 기준)에 판매했다. 호주 물가를 반영하면 일반적인 가격이다. 한국에 비해 2배가 넘는 가격으로 판매하다 보니 나의 작품 가치 또한 상승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또한 너무 즐거웠다. 호주 사람들은 이야기하며 소통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보며 '이건 너무 재밌다.', '너무 공감이 간다.', '정말 이쁘다.' 등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한국이든 호주든 마켓을 하다 보면 한참 구경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이따가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이런 부류 중 하나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이해한다. 보통 이렇게 가면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데 이번 마켓에서 이렇게 말한 사람 중에 90%가 다시 돌아와서 구매했다. 이것 또한 너무 신기했다. 그만큼 아트에 관심이 많고 이런 아트 제품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마켓을 통해 아티스트로서 한발 더 성장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싶진 않다. 매번 준비하고 짐을 싸서 나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나의 목표는 호주에 있는 아트샵에 가능한 한 많이 입점하는 것이다. 호주는 아트 작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많으며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와 대우가 좋은 편이다. 그렇다고 과정이 쉬운 건 아니다. 앞으로 뚫어야 할 벽이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하나하나 하다 보면 언젠가 뒤돌아 봤을 때 내가 걸어온 수많은 길과 과정이 보일 거라 생각한다.
마켓은 자주는 아니지만 이벤트나 프로모션 느낌으로 계속 참가할 예정이다. 다음 마켓은 5월을 생각하고 있다. 내 작품에는 엽서가 많은데 다음번에는 포스터를 판매해보려고 한다. 어찌 됐든 이번 마켓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너무 뿌듯하다.
*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퀸_빅토리아_마켓
+ 작년 6월에 <호주에서 열리는 아티스트 마켓에 나도 참여해 볼까?>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렸었는데 정말로 참가하게 되어 후기까지 올리게 되었네요! :)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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