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얼룩무늬 감자에 대한 글을 쓰면서 다음 글은 차 없이 지내는 뉴질랜드의 삶에 대해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번 글은 뉴질랜드에서 차 없이 사는 게 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뉴질랜드는 차가 없으면 매우 불편한 나라다.'
라는 말을 뉴질랜드에 오기 전부터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차가 없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서 불편하냐고?
불편하다.
맞다. 뉴질랜드는 차가 없으면 매우 불편한 나라인 게 확실하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니야?라는 생각이 따라왔다가 한국은 차가 없어도 많이 불편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경우에 따라서 차가 꼭 필요한 순간이 있겠지만, 단순히 생활을 두고 생각했을 때 불편함은 뉴질랜드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뉴질랜드에 와서 차를 구입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했다. 뉴질랜드는 섬인 데다가 자동차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중고차 거래가 무척 발달한 나라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차를 구입하지 못한 이유다. 애초에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때 뭣도 모르고 차를 구입했다면 잘 타고 다녔을 텐데, 직접 보고 마음에 드는 차를 사려고 했던 게 잘못이었다. 나는 집도 남이 구해줬고 살림살이도 전에 살던 사람의 물건을 보지도 않고 모두 구입했다. 그게 편하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했다. (그 덕에 뉴질랜드 첫 집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차는 내가 직접 고르고 싶었다. 하지만
'차를 잘못사면 차를 되팔기 전까지 고생한다.'
라는 말을 많이 들은 나는 선뜻 중고차 구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떤 차가 관리가 잘됐고 문제가 없는지 모른다. 전문가를 고용해 점검을 받고 사거나 중고차 업체에서 차를 구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차가 없는 삶에 익숙해져 굳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어리면 이곳저곳 다녀야 할 곳도 많겠지만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여기저기 찾아다니지 않는 이유도 한몫했다. 저렴한 차는 마음에 들지 않고 마음에 드는 차는 부담스러운 가격인 것도 그중 한 가지 이유였다. 그냥 없이 살았으니 계속 없이 살자,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차 없이 첫해를 보내고 한국에서 긴 방학을 보냈다. 그래도 차는 있어야지.라는 생각에 한국에서 다녀오자마자 차를 구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전문가도 고용했고, 차를 사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선약자가 구입을 했거나 가격이 안 맞거나, 내가 사려고 예약해 둔 차를 아는 분이 결사 반대했다. 그 브랜드는 말썽을 많이 일으키는 차라고 하면서. 중고차량을 판매하는 딜러에게 차를 구입하려고 했더니 누군가 그런다. 개인거래보다 30%나 더 주고 사는 거라고. 안 들어야 할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다. 앞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도 나는 차 없이 살고 있다. 온 에너지를 차 구입에 쏟은 몇 주가 너무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차를 잘만 사던데, 나는 왜 이럴까 생각했다. 인생엔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 내 성격대로 일단 저지르고 봤어야 했는데, 차 문제엔 왜 이렇게 조심스러워지는지 모르겠다. 다행인 건, 작년보다 뉴질랜드 생활에 적응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도 배송을 시키면 다 집까지 가져다준다. 갑자기 웬 배송 이야기냐고? 차가 없어서 제일 큰 불편한 점이 바로 인터넷 배송이다. 나는 작년부터 뉴질랜드에 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두 가지가 충격이었다.
첫 번째는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수거하지 않고 일반 쓰레기에 같이 버린다는 점(2023년 중반에 음식 쓰레기통이 생겼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배송시킬 때 배송비가 반드시 붙는데, 그게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100달러 이상 구입을 하면 무료배송을 간혹 해주는 업체도 있는 반면 대부분은 물건을 배송시키면 배송비가 따로 붙는다. 심지어 내가 지난 글에 언급한 채소, 과일을 집으로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매번 배송비는 따로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Wonky box는 배송비가 7달러였는데, 한국돈으로 5760원이다.) 나는 처음에 이 시스템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반찬 배달을 주기적으로 배송받은 적이 있었는데 당연히 배송비가 무료였다. 반찬이 배달될 때마다 배송비가 든다면 나는 그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느낌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하면 구입하는 물건이 비싸든 싸든 평균 7달러(5800원) 정도의 배송비가 붙는다. 제일 불편한 건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인데, 동네에 있는 서점에 내가 구입하고 싶은 책이 없을 경우 인터넷에서 구입을 하는데, 책가격이 22달러인데 배송비를 12달러 지불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형 서점이 없고 애들 학습에 필요한 책은 더더군다나 방문한 서점에 없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구입을 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어느 커피 브랜드에서 커피 가루를 2주에 한번 배송받고 있는데 배송비가 5달러(4200원)이다. 나도 모르게 배송비가 너무 저렴하다고 기뻐했다.(달러-ND)
마트도 배달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마트 배달도 당연히 배달비가 있다. 뉴질랜드에서 체인이 많은 세 개의 마트가 있는데, Woolworths, Pak'Save, New world이다. Pak'nSave는 코스트코처럼 창고형 마트 같은 느낌이다. 가격도 세 마트 중 제일 저렴하다. 하지만 배달 서비스가 없다. Woolworth는 작년까지만 해도 이름이 Countdown이었는데 작년 하반기에 호주의 Woolworths의 자회사로 바뀌었다. 이곳은 배달비를 한 달이나 6개월치로 결제할 수 있는데 1달 가격은 23달러, 6개월 가격은 118달러이다. 배달 서비스를 결제하지 않은 고객은 매번 주문 때마다 9달러를 결제해야 한다. 게다가 배송비를 따로 결제하지만 물건을 80달러 이상 구입을 해야 배달을 해준다. New world도 200달러 이상 구입을 했을 때 배송비 9달러를 내고 물건 배송을 받을 수 있다. (9달러면 식빵이랑 사과 1kg을 살 수 있는 돈인데!)
이렇게 뉴질랜드는 집에서 편하게 물건을 배달받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처음엔 차 없는 설움과 너무 비싼 배달비에 괜히 화가 났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뉴질랜드가 배송비가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 땅이 넓기 때문이다. (지극히 나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한국 면적보다 1.5배 정도 더 크다. 그리고 인구는 한국이 뉴질랜드보다 10배 많다. 한국은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뉴질랜드는 넓은 땅에 적은 인구가 살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상점도 복합 쇼핑몰보다는 개별 상점이 많고 대부분 커다란 창고처럼 생겼다. 우리나라가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빽빽이 건물들이 모여있는 반면, 뉴질랜드는 단층의 큰 상가와 주택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물론 시티 중심가는 높은 고층 빌딩이 많다.) 이런 상황이라 배송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집 배달하고 10km 떨어져 있는 다음 집 배달을 가야 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차를 타고 마트를 가기 때문에 배달을 시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어쩌겠나. 가격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6개월 배달 이용권을 끊어서 사용하는 수밖에. 그래서 작년에 나는 Woolworths 단골이었다. 일정 포인트를 쌓으면 주는 15달러 쿠폰도 여러 번 받았다. 사실 New world 마트 물건이 더 마음에 들지만 나에겐 선택권이 없다.
차 없이 사는 삶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장보기가 제일 어렵고 그다음은 소소한 생활용품들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고장 나는 물건도 있고, 아주 작은 나사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리고 가끔은 한국 마트에서 파는 떡볶이 떡이 필요할 때도 있고(한인마트는 배달을 안 한다.) 정수기 필터나 가을이 오면서 마당에 떨어지는 수많은 낙엽을 모을 갈고리도 필요하다. 나는 버스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이런저런 용무를 보러 다녔다. 운동도 되고 일석이조다. 하지만 살면서 알게 된 건데, 길을 걷는 사람은 나,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목적지를 가는 사람(가방 없음), 그리고 운동복을 입은 달리는 사람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도 볼일을 보러 한 시간씩 걷지 않는다. 아마 넓은 땅에 적은 인구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살 땐 길에 혼자인 경험이 거의 없었다. 항상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모두 차를 타고 가는데 혼자 걷는 느낌을 이상하다고 느낀 적도 없다. 그러니 역시 뉴질랜드에서 혼자 걷는 게 이상하다고 느낀 건 내가 그들과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확실하다.
대신 뉴질랜드는 어딜 가도 트랙킹 코스가 있는데, 이들은 자연을 걷는다. 바다까지 차를 타고 와서 바다를 걷고, 트랙킹을 하기 위에 그곳까지 차를 타고 가서 트랙킹을 시작한다. 그들은 산과 들과 바다를 걷는다. 도로 옆 인도는 걷지 않는다. 게다가 한 시간씩은 어림도 없다.
사실 이런 것들을 다 제쳐두고 차가 없을 때 제일 불편한 건 뉴질랜드를 충분히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뉴질랜드도 교통수단이 다양하게 있지만 차로 20분 걸리는 거리를 버스를 이용하면 1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두세 번 갈아타야 한다. 버스를 타는 시간보다 갈아타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라 차가 없으면 집 근처가 내가 아는 뉴질랜드의 전부다. 이곳에도 명절도 있고, 기념일도 있다. 그럴 때마다 어디에서 무슨 행사가 진행되고, 무슨 날을 맞아 기념 이벤트가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차 없이 가기도 불편하고, 게다가 행사가 저녁에 열리면 집에 돌아오는 길은 더 험난해지기 때문에 아예 참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곳은 해가 지면 도로에 아무도 없다. 가로등도 그리 환하지 않기 때문에 어둠 속에 혼자 거리를 걸어야 한다. 버스를 타도 나 혼자이거나 나 외에 다른 한 명이 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키위들은 저녁 9시부터 잠자리에 드는 게 틀림없다.
장보기도 배달시키면 되고 전구도 배달시키면 된다. 배달비가 들지만 그건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과 기름값이라고 위로하면 된다. 차가 없어서 제일 아쉬운 건 뉴질랜드의 다양한 모습을 더 많이 담지 못하는 점이다. 어느 날은 훌쩍 다른 해변에 가서 걷다가 오고 싶기도 하고, 즐거운 축제에 참석하고 싶기도 하다. 놀고 싶다기보다 뉴질랜드에 사는 동안 뉴질랜드를 조금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차는 필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뉴질랜드로 여행이나 삶을 계획하고 올 예정이라면 차 렌트나 구입을 꼭 염두해 두길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 차를 살 계획이냐고?
모르겠다.
뉴질랜드를 떠나기 전 뉴질랜드를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둘러보고는 싶다. 그러기 위해선 렌트든, 차량 구입이든 둘 중에 하나는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뿐이다. 뉴질랜드에서 차 없이 사는 건 확실히 불편하지만, 이미 적응한 것 같기도 하고, 아마 내가 여태 차를 구입하지 못하는 건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갈팡질팡 한다는 건 그리 불편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없으면 불편하긴 한데 뭐가 그렇게 불편한지는 잘 모르겠고, 이게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인 건지, 무기력함 때문인 건지, 친구가 없어서 그런 건지, 에이,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