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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곰 May 22. 2024

비싸고 오래 걸리지만, 훈훈한 공기로 꽉 찬 이곳

뉴질랜드 우리 집에서 친구 집으로 가려면 총 3개 구역을 지나야 한다. 편도 6$, 왕복 12$가 드는 셈인데, 이런 상황이니 뉴질랜드에서는 역시 차가 필수다. 지난번 글에서 차 없는 자의 하소연을 늘어놨지만, 대중교통 요금이라도 저렴하다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차로 가면 25분 걸리는 장소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30분이 걸린다. 여러 가지로 대중교통으로 위안을 삼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차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곳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은 버스, 우버, 페리, 기차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는 교통 구역이 나눠져 있고 1 구역 안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가격은 현금가격 $4(NZD), 오클랜드 교통카드인 HOP카드로 결제하면 $2.6(2160원)이다. 하지만 대부분 1 구역을 이용하는 경우보다 2 구역 이상을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집에서 오클랜드 시티로 가는 길은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데 2 구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현금가 $6, HOP카드로 4.45$(3700원)이다. 나는 오늘도 $4.1을 내고 시티를 왔다. 다리 하나 건널 뿐인데, 3500원이라니. 다시 집에 돌아가야 하니 오늘 교통 요금으로만 7000원을 쓰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의 요금과 차이가 있으니 더 비싸게 느껴지는 것 같다.


2층 버스가 많다. 주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다. 비상 망치가 비치되어 있지 않고 비상시 창문에 부착된 표시를 주먹으로 내리치면 되게 애초에 설계되었다.


운 좋게 우리 집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 버스 정류장은 한 개의 노선이 운행되고 있다. 즉, 나는 유일하게 오는 버스 노선이 아닌 곳으로 가려면 환승을 해아 한다. 내가 주로 가는 동선은


1. 오클랜드 시티

2. 걸어서 20분, 버스로는 4 정거장 거리인 근처 타운

3. 한인마트


인데, 2번을 제외하고 1,3번은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한다. 그나마 운이 좋아 환승하는 곳에서 환승해야 하는 버스 시간이 잘 맞으면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다행히 나의 주된 동선은 버스를 이용해도 큰 불편이 없다. 하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안 가던 곳도 가야 할 일이 생기는 법이다. 얼마 전 지인의 모친상으로 장례가 치러지는 교회를 다녀온 일이 그중 하나다.


기독교 절차로 치러진 장례는 두 번의 예배가 있었는데, 기독교 장례도 처음 가보는 데다가 뉴질랜드에서 장례를 겪어본 적은 더군다나 없었기 때문에, 언제 방문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빨리 방문해 위로를 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음 날 저녁에 치러진 첫 장례 예배에 참석했다. 뉴질랜드는 지금 겨울이 오고 있는 중이라 6시면 해가 진다. 한 겨울인 7,8월이 되면 4시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이 나라는 어두워지면 길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낮에도 별로 없는데 밤엔 당연히 더 없다. 어둡고 무서운 밤 길을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행히 버스 정류장이 집 바로 앞에 있긴 하지만 버스를 탈 때까지 어둠 속에서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게 부담이었다. 코앞에서 버스를 놓치면 30분 동안 어둠 속에 혼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예배는 7시에 시작이었고 나는 5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혹시 한국처럼 장례식장에 항시 상주가 조문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위로 인사만 드리고 올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떻게든 혼자 어두운 밤에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가는 데는 차를 한번 갈아타고 1시간 10분이 걸렸다. 교회에 도착해서 지인을 만나고 위로의 인사만 전하고 돌아오는 게 마음에 걸려 예배당에 혼자 앉았다. 아직 예배가 시작되려면 1시간 정도가 남았기 때문에 아무도 없었다. 그냥 시간 맞춰서 올걸, 한국의 장례와는 역시 다르다. 혼자 1시간을 멍하니 보낸 후, 7시에 시작된 예배는 8시가 조금 넘어서 끝났다.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밖은 이미 무겁고 진한 어둠이 세상을 덮었다. 버스를 타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래도 다행히 교회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무척 운이 좋게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린 지 1분 후에 버스가 왔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버스는 손을 번쩍 든 나를 발견하고 급하게 정차했다.(뉴질랜드는 다가오는 버스에게 내가 탈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아니면 그냥 지나친다. 그래서 뉴질랜드살이 초반에 버스를 두 번이나 못 탔다. 다음 버스는 30분 후에 오는데!!!) 이 야심한 밤인 8시에, 주택가에서 버스를 세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버스 기사는 어제도 그제도, 타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속력을 내며 달렸을 거고, 버스 정거장에서 차를 세우는 나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것이다. 사실 예배를 보는 내내 집에 갈 일이 걱정이었다. 버스가 30분마다 오는 곳이 많기 때문에 나는 재수가 없으면 집에 아주 늦은 시간에 도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생소한 지역이라 버스 노선도 모르고 장례 예배가 끝나자마자 구글로 집에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밖은 어두웠고 버스 정류장도 그리 밝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도착한 버스가 얼마나 반갑던지. 내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급정거한 버스를 올라타며 나는 기사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버스 안은 환했고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버스에는 나와 어떤 남자, 둘이 승객의 전부였다. 일단 신나게 버스는 탔는데 버스 번호도 보는 둥 마는 둥 타버려서 가는 내내 맘을 졸였다.


밖이 보이고 햇빛이 어느 정도 투과하는 유리창 광고. 덕분에 답답하지 않다.


버스는 내가 서있던 버스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처럼 빠르게 달렸다. 진짜, 엄청 빠르게 달렸다. 낮은 턱을 지날 때도 속도를 줄이지 않는 베스트 드라이버 때문에 내 엉덩이는 자꾸 의자와 떨어졌고 왼쪽, 오른쪽으로 몸이 쏠렸다. 한참을 달려 컴컴한 주택가를 지나고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내가 자주 가는 작은 타운에서 내렸다. 이 버스를 5분 더 탔으면 점심에 먹은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집 앞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찬 공기에 메스꺼운 속을 다스리며 집까지 가는 버스가 언제 오는지 확인했는데 2분 후 도착이다. 이럴 수가. 멀미 버스가 행운의 버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실 2분 후 도착하는 버스를 나는 타지 못할 예정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원래 속도로 매너 있게 버스가 운행됐다면 갈아타야 하는 버스는 이미 떠난 시간에 이 정류장에 도착했을 것이다. 구글도 이 정류장에서 30분 후 오는 버스를 나에게 안내했었다. 빠른 속도로 운전 한 베스트 드라이버 덕분에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고, 나는 갈아타야 하는 버스에 곧 탑승했다. 야호!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계속 새어 나왔고 내 행복을 감추지 못했다. 염려했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고 시간을 보니 정확하게 25분이 걸렸다. 차를 운전해 간 시간과 똑같은 시간이다. 버스를 타면서 이 날만큼 운이 좋았던 적은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버스의 불편함도 있지만 이곳의 버스에 감명을 많이 받았다. 그중 한 가지는 승객과 기사가 타고 내릴 때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버스를 탈 때 눈을 마주하고 Good morning!, Hello, Hi! 등의 인사를 하고 내릴 땐 Thank you! 하고 내린다. 나는 처음 버스를 탈 때부터 이 광경이 무척 새로웠고, 또 좋았다. 나는 그 후로 지금까지 쭉 기사와 인사를 나눈다. 모두가 느긋하고 행복한 기운이 버스 안에 가득 차는 느낌이다. 그리고 버스를 하차할 때 버스가 완전히 멈추고 문이 열리면 그제야 승객은 일어난다. 아무도 재촉하는 사람이 없고 싫어하는 기색도 없다. 뉴질랜드 버스는 느긋하다. 버스 기사도 느긋하게 인사를 건넨다. 작년 큰애는 12월에 한국에서 버스를 탔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내리지 못했다. 뉴질랜드의 버스 문화가 몸에 익어 버스가 멈춘 뒤 일어섰는데, 혼잡했던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지 못했고 버스는 그냥 출발했다고 한다. 


또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은 뉴질랜드의 모든 버스는 계단이 없다. 계단을 오를 필요도 없고 계단을 내려갈 필요도 없다. 계단이 없어서 이미 낮은 버스는 유모차 승객이나 휠체어, 보행 보조기를 이용하는 승객이 기다리고 있으면 버스는 더 아래로 내려간다. 정확히는 승객이 탑승하는 쪽이 바닥과 가까이 기울어진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버스 기사가 아예 내려 승객의 탑승을 돕는다. 심지어 나는 이 장면을 매우 자주 본다. 뉴질랜드에선 버스를 타는데 불편을 느끼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건강한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혹은 아기나 엄마, 모두 버스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어느 날, 정말 느리게 한발 한발 아주 천천히 걸으시는 할머니가 버스를 타신 적이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사는 할머니가 의자에 앉고 나서야 출발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나는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고령의 노인이 버스를 탄 걸 본 적이 없던 것 같았다. 저 정도 나이라면 버스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들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외출을 할 일이 있을 것이고, 그냥 외출이 하고 싶은 날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대중교통만큼은 누구나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시설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시설의 문제만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조금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기다려주면 사회도 점점 닮아가지 않을까? 어쩌면 한국인의 특징이라고 하는 '빨리빨리' 때문에 버스도 급한 문화 속에 갇혀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배려만큼은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은데 말이지.


오클랜드 시티를 떠나 데본포트로 가는 페리

뉴질랜드는 섬나라 이기도 하고 내가 살고 있는 오클랜드 동쪽은 지형상 바다에 근접한 곳이 많기 때문에 페리도 흔한 교통수단 중 하나다. 현금가격 8$, HOP카드로 결제 시 6$이다. 의외로 버스와 가격차이가 별로 없다. 데본포트에서 페리를 타면 15분 만에 시티로 갈 수 있다. 자동차나 버스를 이용하면 지역적 특징 때문에 뱅 돌아서 시티로 가야 하기 때문에 페리가 유용하다. 오클랜드 주변에는 작은 섬들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는 페리 가격은 거리마다 조금씩 다르다. 와이너리가 여러 개 있는 와이헤케 섬으로 가는 페리는 편도 29.5$(HOP카드 기준)이다. 페리는 버스보다 비싸지만 거리 단축을 위해 이용하거나 날이 좋은 날엔 버스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 일부러 페리를 타기도 한다. 잠깐이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의 무료함이 아닌 여행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뉴질랜드 기차. 앉는 의자의 방향이 앞, 뒤, 옆 다양하다.

또, 택시와 우버가 있다. 택시보다 우버를 많이 이용한다. 택시는 뉴질랜드에 2년째 살면서 2번밖에 보지 못했다. 몇 번 우버를 이용해 봤는데 택시와 다른 점은 거의 없다. 내가 기다리는 곳으로 차가 오고 도착지에서 내리면 결제가 된다. 주로 짐이 많거나 공항 갈 때 이용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택시와 우버의 다른 점을 물었더니 택시가 조금 더 확실한 신분의 기사일 거라고 했다. 


2주 동안 교통수단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차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를 자주 이용할 일은 앞으로도 없겠지만 갑자기 생긴 일정이나 멀리 이동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자동차의 장점은 무척 크다. 작년처럼 '어차피  일 년 중 절반은 지나갔고 한국에 가는 여름에 내내 세워둬야 할 테니 새해가 오면 구입하자.'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아, 이러다가 뉴질랜드 떠날 때쯤, 뉴질랜드의 모든 대중교통 노선을 빠삭하게 알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음, 왜 나쁘지 않은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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