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곰 May 29. 2024

제일 싫어하는 그것이, 결국 오고야 말았다.

드디어 겨울이 왔다. 

자연의 섭리이니 예상하고 있었지만 아침 찬 기온에 겉옷을 주섬 주섬 입을 때마다 나는 절망적이다. 창문은 습기가 모여 물방울이 흘러내려 바닥에 고이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보며 '나도 너처럼 울고 싶다.'를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이미 집 안은 밤새 창문 틈을 기어코 비집고 들어온 추운 공기로 가득 차 있지만, 창문에 맺힌 물방울을 없애기 위해 창문을 여는 일로 하루가 시작된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집 안에 찬 공기가 들어찬다. 아, 춥다.


한국의 여러 가지 문화를 해외에 살면서 새삼 감탄하곤 하는데, 그중 하나가 온돌이다. 우리나라 조상은 어찌 이렇게 지혜로웠을까. 아궁이로 음식을 하고 방까지 데웠다니, 정말 놀라운 생각이다. 방바닥이 까맣게 그을릴 정도로 데워놔도 한국 겨울 한파는 몇 시간 후 온기를 다 빼앗아갔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뉴질랜드의 겨울은 양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위에 대비하지 않았나 보다. 내가 사는 오클랜드는 북섬에서도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한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최저 기온은 6-8도 정도 된다. 뉴질랜드 남섬은 영하로 내려가는 지역이 많고 눈도 온다. 남극과 가까우니 펭귄도 있고, 물개도 있다. 남섬에서 살았다면 온돌 없는 겨울을 어떻게 견뎠을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마 추위에 울고 펭귄이나 물개를 보며 위안 삼았겠지.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소음인인 나는 겨울 동안 우는 날이 더 많았을 것 같다. 오클랜드에 살고 있는 지금도 겨울 내내 울면서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하늘을 뒤덮은 구름 사이로 파란 한 조각하늘이 보인다. 이내 비가 쏟아졌다.


왜 집안에 벽난로가 있고, 바닥은 왜 카펫인지를 뉴질랜드에 살면서 이해하게 됐다. 전에 살던 집은 집안이 모두 마룻바닥이었다. 뉴질랜드에서 살기 시작한 첫 해였고 나는 마룻바닥이 꽤 마음에 들었다. 청소가 간편하고 카펫보다 더 청결하다고 생각했다. 그 집에서 여름부터 살기 시작했는데, 겨울이 오면서 말 그대로 추워 죽을 뻔했다. 집 안에서 바닥이 두꺼운 실내화를 신고 생활했지만, 바닥의 냉기는 실내화 고무와 양털을 뚫고 내 발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겨울 동안 집안에서 파카를 입고 살았다. 그래도 추웠다. 그렇게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올 초에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집은 방과 거실에 카펫이 갈려있었다. 거실 벽 한쪽엔 예전에 사용했던 벽난로가 있었다. 지금은 히트 펌프(온풍기)라는 난방 시설이 집집마다 거의 다 설치가 되어 있어 벽난로를 사용하지 않지만 꽤나 운치 있었다. 천장이 높아 겨울에 곰팡이가 잘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에 지어진 뉴질랜드 풍 주택이었고, 난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카펫이었다. 전에 살던 사람이 개를 키웠기 때문에 카펫에서 개냄새가 났다. 청소 업체도 부르고 세제를 몇 통이나 사용했지만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그 냄새가 집안에 꽉 차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카펫은 먼지도 많고 냄새도 안 빠진다고 툴툴거렸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에 기대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인 건 여름에 이사를 해서 매일 문을 열어둘 수 있었다. 카펫은 우리 가족과 시간을 쌓아가면서 예전에 살던 사람들의 향기를 지워갔다. 그리고 가을이 왔고 겨울이다. 지금 나는 카펫이 집에 깔려있는 게 무척 감사하다.


카펫은 마루처럼 추위를 전하지 않는다. 발은 바닥과 항상 붙어있기 때문에 제일 먼저 추위를 느끼는 부위다. 아무리 두꺼운 양말을 신어도 수족냉증을 앓고 있는 나는 손발이 늘 차다. 그렇기 때문에 카펫의 장점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작년에 마루가 깔려있던 집과는 차원이 다르다. 올해도 내 발은 차갑지만 작년의 절반정도다. 영하의 기온은 아니어도 남들보다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추운 겨울을 잘 견디는 방법을 찾게 된다. 작년, 빌어먹을 날씨라고 욕하며 겨울을 보낸 덕에 올해는 여름부터 준비를 했다. 한번 겪어본 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배운다.


한국에 갈 때마다 일 년 치 꼭 필요한 짐들을 배로 미리 부치는데, 이번에는 5박스를 보냈다. 작년에 뉴질랜드에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거의 모두 갖췄는데 또 이렇게나 보낼게 많다. 이번에도 책이 많았고, 아이들 렌즈 용액(한국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것 중 하나다.), 그리고 늘 쓰는 화장품, 미술 도구 등이다. 거기에 방한 용품을 많이 보냈는데, 발워머, 두꺼운 양말, 담요다. 사실 두꺼운 양말은 한겨울에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을까지 찬 공기와 찬 바닥을 막아주는데 효과가 있으나 겨울엔 소용없다. 내 발은 내려간 기온만큼 차가워진다. 두꺼운 양말 속에 들어있는 얼음덩어리라고 표현하면 딱 맞다. 난로같이 열을 내는 무언가로부터 온기를 동냥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을 데우거나 난로를 킨다. 내가 유난히 추위를 타는 것 같기도 하다. 작년의 끔찍한 겨울을 보낸 후기를 다른 분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오히려 내 말에 너무 걱정을 했었는지, 겨울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한다. 오늘 낮기온은 15도인데 내 발은 여전히 난로 앞에서 온기를 나눠 받고 있다.


뉴질랜드 겨울은 6,7,8월인데 9,10월까지 겨울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겨울이 길게 느껴진다. 겨울엔 해가 일찍 지고 늦게 뜨고, 비가 수시로 오고,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많이 분다. 대게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여있고 우중충하다. 습하기 때문에 집안에 곰팡이가 자주 목격되고 따라서 환기를 자주 시켜야 한다. 뉴질랜드는 유독 겨울 날씨가 무척 변덕스러운데, 아침에 비 오고, 점심엔 맑았다가 오후엔 벼락과 천둥이 치고 밤엔 춥다. 혹은, 아침엔 쨍했는데 점심때쯤 비가 오기 시작하고 늦은 오후엔 다시 쨍했다가 밤엔 폭우가 쏟아진다거나. 오늘은 쨍했다가, 비가 쏟아졌고 다시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가 다시 우박이 쏟아졌다. 지금은 회색 구름이 하늘을 다 덮었고 바람이 불고 있다. 흔한 뉴질랜드 날씨 변덕이다. 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비가 그치고 날이 개었다. 얼마 후 다시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우박이 쏟아졌다.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겨울이 왔다.


겨울이 왔다. 빼도 박도 못하게 이제 겨울이 왔다. 나는 5월부터 춥다고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다. 이젠 정말 겨울이 왔다. 이제 시작이니 앞으로 몇 개월은 침울한 시간이 될 것이다. 겨울을 무척 싫어하는 나는 일 년에 두 번이나 겨울을 겪는다. 굳이 비교하 지면, 이런 애매한 겨울보다는 한국의 겨울처럼 눈도 오고, 얼음도 얼고, 칼바람도 부는 겨울이 낫지 않나 싶다. 다시 생각하니 온돌이 좋은 것이지, 영하 20도의 날씨는 역시나 싫다. 오늘도 생각한다. 나는 왜 따뜻함을 품지 못하는 사람인가. 나는 왜 이렇게 손발이 시린가. 뉴질랜드엔 왜 생강차가 없을까.(한인마트에 있다.) 나는 왜 차가 없을까.로 생각이 끝났다.


이번 겨울은 그래도 작년보다 비가 덜 올 거라고 한다. 매일 날씨 일기를 써봐야겠다. 어쩌면 겨울 내내 매일 비가 왔다.라고 쓸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늘은 비가 왔다가 그쳤다를 10번은 반복했다. 태풍이 오고 있는 것 같은데, 뉴스를 찾아봐야겠다. 여름이 시작되는 한국이 오늘도 그립다.

이전 14화 비싸고 오래 걸리지만, 훈훈한 공기로 꽉 찬 이곳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