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광 May 23. 2020

새하얀 커플 운동화

"신으라고 드린 거니까 신고 다녀요 엄마아빠"

5월은 돈이 많이 나가는 달이다. 이것저것 챙겨야 할 날이 많다. 


모처럼 부모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이전에 직장을 다닐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 찾아뵈었으니, 놀고 있을 때라도 꼭 마음을 쓰고 싶은 이유였다. 문득 두 분이서 같이 등산을 가고 조깅을 한다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운동할 때 같이 신으시라고 커플 운동화를 선물하기로 기획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동생에게 은밀하게 접선했다. 부모님 신발 사이즈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였다. 최대한 은밀하게 접근해서 부모님을 깜짝 놀라게 할 마음이었다. 


남동생은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빠른년생이어서 학년은 하나 차이가 난다. 그런데 작년 6월에 결혼을 하고 부모님 댁 근처에서 살고 있다. 그런 놈이라면 부모님 신발 사이즈 정도는 확실히 알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밤 9시쯤 동생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부모님 목소리였다. 동생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을 먹는 날이었던 거다. 또 다들 술을 좋아해서 달큼하게 취한 목소리였다. 



“형, 내가 엄마아빠 신발 사이즈를 어떻게 알아. 직접 물어봐. 엄마, 형이 신발 사준다니까 받아봐.”



동생은 내 계획을 딱 3초 만에 무너뜨렸다. 어릴 때부터 얄미운 놈이었다. 옆에 있었으면 새신랑이고 뭐고 쥐어박았을 텐데.


이렇게 된 거 부모님이 직접 보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는 게 낫겠다 싶었다. 곧장 영상통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옆에 있는 제수씨와 나란히 얼굴을 맞대고 내 화면을 쳐다봤다. 



“어머니, 검은 게 때는 덜 타도 흰색이 훨씬 예뻐요.”


“그렇지? 그래, 그럼 흰색 할게 아들~.”


사 준 사람이 봐도 너무 하얗다. 내 거였어도 막 신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그래도 신으셨으면 하는데.





그리고는 얼마 전 집에 갔을 때다. 부모님은 새하얀 운동화를 소파 아래에 나란히 놓아뒀다. 


“엄마, 신으라고 사준 건데 왜 안 신어.”


“흰색이라 아깝더라. 신던 거 떨어지면 신을게.”


“신발 그렇게 신으면 오래 못 신어. 여러 켤레 번갈아 신는 게 훨씬 오래 가는데.”


“알았어 알았어~.”


이후 10일 정도 지났지만, 아마도 부모님은 신발을 안 신으셨을 거다. 서울로 오기 직전에 “신발 그냥 신어요. 또 사드릴게”라고 했는데, 그래도 안 신었을 게 분명하다. 두 아들놈 고집이 어디서 왔겠는가. 



"엄마, 한 번 신어봐요. 신은 김에 춤도 춰봐요." 카메라를 들이대도 우리 어머니는 피하지 않으신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짓군즈, 가식 없는 청춘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