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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레야맘 Jun 07. 2023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는 아이,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음악 교육에 대한 생각

 2년 전, 우리 가족이 포르투갈에 살 때였다. 남편 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3주간 머물게 됐는데, 그곳에 사는 아이 친구를 따라 경험 삼아 3주만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첫날, 수업이 끝나자 원장 선생님이 나를 찾으셨다.

 이 아이는 피아노에 재능이 있으니 꼭 피아노를 시켜야 한다, 포르투갈에 돌아가면 좋은 선생님을 찾아주고, 자신과도 그 선생님을 연결해 달라, 그러면 자신이 발견한 아이의 재능에 대해 직접 얘기해 주겠다...라는 그야말로 너무나도 감사한 말씀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두근거렸다. 당시 스페인에 살지도 않는 우리에게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칭찬도 아니었다. 본인의 오랜 경력을 걸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진지한 말투와 태도에서 알 수 있었다. 우리 아이가 피아노 영재라도 되는 걸까? 만약 이 아이가 영재라면 어떡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학원을 보내볼까 어떡할까 고민을 하던 나는 많은 생각 끝에 우선 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지도, 선생님을 찾아주지도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냥 작은 키보드 건반 하나만 샀다. 나는 아이가 악기를 배우기보다는 음악을 먼저 즐기게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아이가 피아노가 배우고 싶다고 먼저 말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급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가도 늘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리면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그 일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과제가 되어 버린다는 것을 나는 이미 수차례 경험을 통해 배웠지 않은가. 어린 시절 처음엔 즐겁게 시작한 피아노 학원을 몇 년 후 하기 싫어 울면서 다녀야 했던 나처럼 아이도 변하게 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학원이라는 일정이 짜인 곳에서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원할 때, 원하는 만큼만, 재밌는 만큼만 하게 하기로 말이다. 악기라는 것은 연습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실력이 빨리 늘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지난 2년엄마표 피아노 카페의 도움을 받아 아이와 도레미부터 시작해 쉬운 곡 하나씩을 함께 치고 노래도 불러가며 우리만의 피아노 수업을 해왔다. 어떤 땐 몇 주간 피아노 앞에 한 번도 안 앉기도 하고, 어떤 땐 틈만 나면 치기도 해 가며. 그저 내가 아는 만큼만 알려줘 가며 아이도 나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피아노를 쳤다.

 얼마 전 아이 학교에서 작은 연주회가 있었다. 방과 후 음악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그동안 배운 것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딸아이는 학교 방과 후 피아노 수업을 가보고 싶다고 해서 마침 한 달 전부터 수업을 듣고 있었다. 주 1회 수업이라 사실 딱 4번 수업을 갔을 뿐이지만 감사하게도 기회를 주셔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딸아이의 피아노 연주는 감동적이었다. 선생님과의 수업으로 자세도 좋아지고 빠르기, 강약 조절까지 완성도가 조금 높아지긴 했지만 사실상 우리집표 피아노의 결과였기 때문에 내겐 더 의미가 있었다. 아이는 떨지도 않고 즐겁게 연주를 했다. 만약 지난 2년간 피아노 선생님께 제대로 배웠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실력을 뽐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내 눈엔 너무 훌륭했고 대견했다.

 혹시 내가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지 못하고 방치하는 것일까 봐 걱정한 적도 있고, 지금도 사실 좋은 선생님을 찾아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난 지금 아이의 모습이 만족스럽다. 아이는 음악을 사랑하며 더 다양한 악기를 배우고 싶어 하고, 자기가 듣는 노래를 연주해보고 싶어 건반을 눌러가며 그 음을 찾아 멜로디를 연주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기고 행복해한다. 피아노 학원을 다녔더라도 이런 기쁨을 느낄 틈이 있었을까.

 앞으로 나는 아이가 원하면 선생님께 수업을 받게 하고, 원하지 않을 땐 쉬게 하면서 피아노를 즐겁게 하도록 도와줄 생각이다. 피아노뿐 아니라 다른 여러 악기들도 아이가 흥미를 보이면 접해보게 할 것이고. 아이가 음악에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 보다 아이가 얼마나 음악을 즐길 수 있느냐가 아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데 더 중요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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