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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고집 Sep 04. 2023

부치지 않은 편지

나와 언어가 다르다는 너에게


J에게


그날 네가 정색을 하며 내게 했던 말은 지금도 생생하구나.

"너와 나는 이미 언어가 달라. 서로 세계가 다른데 어떻게 소통이 되겠니."
너는 그렇게 차가운 말로 편지조차 거부하며 돌연 작별을 했었지. 그냥 현관 앞에서.


네가 미국에서 십 년 만에 한국에 나와 내게 전화했을 때 난, 널 만날 기쁨에 소녀처럼 설레었지. 버스를 타고 네가 머무는 아파트 입구에 내렸을 때, 잔디 위를 걸으며 다가오던 너와 너의 두 딸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구나. 일곱 살, 다섯 살쯤 되었던가. 자매가 흰 바탕에 분홍의 작은 꽃무늬 원피스를 나풀거리며 옆구리엔 눈에 익은 성경책을 끼고 너와 함께 걸어오던 모습은 한 폭의 르노와르처럼 눈부셨다. 너의 바쁜 일정 때문에 우리가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채 반시간도 안 되었지. 십 년 만에 만나 30분이라니... 다급한 마음에, 너와 무슨 얘길 하는 게 가장 좋을까 십 년의 공백을 무엇으로 메울까 채로 거르고 또 걸러서 쏟아놓았던 것은, 늘 나의 마음을 흔드는 한 가지, 불교 이야기였다.


나, 종교를 갖게 되었어. 어떤 종교인데? 응, 불교야. 그리고 네가 교회에서 청년부 활동을 함께 해왔던 남자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부러워하였던가를 이야기하고, 종교적인 이상을 함께하는 부부를 꿈꾸기에 무신론자인 남편과의 갈등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내면화하기까지의 고통을 쉬지 않고 이야기했었지.


나도 스물세 살의 봄에 너처럼 귀한 종교를 갖게 되었어. 짙은 어둠 속에서 방향을 찾은 거야. 처음 불교 교리를 들었던 날을 기억해. 그날을 꿈엔들 잊을 수 있을까... 보잘것없는 내 인생에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는 가련한 엄마의 소망이기에 크게 효도라도 하는 양 탐탁지 않게 기초교학 시간에 참석했는데, 노인들이 대부분일 줄 알았던 그곳엔 내 또래의 젊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어. 막상 교리가 시작되고 자리에 앉은 후엔 어떻게 된 일인지 한 열흘간 음식이라곤 구경도 못한 사람처럼 극도로 허기져서 단 몇 초라도 놓칠세라 숟가락으로 시간을 훑어가며 게걸스럽게 빨아들이고 있었지. 숨이 멎는 듯했어.


"당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얼굴도 체형도 기억나지 않는 강사가 한 시간 내내 강의한 것은 이렇게 응축되어 내 허약한 가슴을 쾅 내리쳤던 거야. 내가 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나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허허. 변두리 어디에선가 그저 이렇게 피었다지면 그만이려니 했던 한 가닥의 생명을 두고 우주의 중심이라니. 나 하나쯤 사라져도 바람 한 점 불어 줄 리 없는 잔인한 이 세상이 나의 그림자일 뿐이라니. 허허. 허허허. 눈물이 괴더구나. 나의 작은 의식의 변화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며 나를 우주적 크기로 확대해 주었던 생생한 불교적 휴머니즘이 거세게 파동을 치던 순간이었어. 상상할 수 있겠니, 그때 비로소 나를 조이던 극도의 소외감에서 벗어나 말할 수 없이 충족되었던 느낌... 그날 이후 내 생명에서 꿈틀대며 일어났던 한 오라기의 의식 - 삶에 대한 외경은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구를 대하든 인생이 이토록이나 아름다운 것인가 감탄하게 했지. 동트기 전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바뀌는 가슴 설레는 기적을 바라보고 싶다고 했던 헬렌 켈러처럼. 우린 얼마나 그토록 경이로운 세상을 눈 감은 채 살고 있었던 것일까.


그 시간 내내 한없이 부드럽게 날 감싸 안으며 속삭이는 듯했지. 내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백천만 년 동안 어두운 곳에도 등불을 넣으면 밝아진다고 했던가. 웃음을 잃었던 얼굴에 비 온 뒤 솟아오르는 사막의 풀처럼 생기가 번지면서 비로소 세상은 내게 우호적이기 시작했어. 우연히 선배를 만나 멋진 일자리도 얻게 되었지. 삶은 놀랍도록 자연스러워졌고 순간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에 흥분되곤 했어. 난 느낄 수 있었어, 그게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런 거였구나. 대학 진학을 한다며 내 맘대로 회사에 사표를 내고 돌아오던 날, 생계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전혀 미동도 없이, 내가 신앙만 갖게 된다면 어떤 길을 가든 염려치 않겠노라고 해서 날 놀라게 했던 엄마의 진의. 미국의 인권활동가 베티 윌리엄스가 테러분쟁 근절을 위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들이 해준 말을 소개했었지. "어머니,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 우리가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해온 일은 우리가 죽지 않도록 우리 목숨을 구하기 위한 투쟁이었군요"라고. 나는 그날 마의 간절함으로 소생하고 있었어.


그래, 나는 다시 살아난 거야. 내가 할 일이 있었어. 이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은 제도의 개혁만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사회의 가장 심층, 인간의 내면을 개혁하는 일이지. 더 늦기 전에, 타인에 대한 존경을 실천하는 일, 그곳에 내 생을 바치리라고 서원했지.


눈을 감고 캠퍼스를 걷고 있었어. 마치 처음으로 산소 호흡기를 떼어낸 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호흡을 음미하며 걸었지. 가슴엔 노트와 책을 한 아름 안고 마치 유토피아를 거닐 듯이... 이것이 변화된 내 스물세 살의 삽화란다.


J, 잊혀진 나의 학창 시절의 모습들, 그 시절의 기억까지도 바로 어제처럼 간직한 채 여전히 날 아끼고 인정해 주던 널 말할 수 없이 사랑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그러니까 J, 네게서 내 종교적인 부분까지도 마음껏 대화하고 인정받을 수 만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하겠어. 결코 동조를 구하려는 게 아냐. ‘난 자네의 의견에 반대하네. 그러나 자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목숨 바쳐 지키겠어’라고 말했던 어떤 이 처럼 그렇게, 서로를 지켜볼 수 있는 그런 친구를 원해, 절절히.


언제라야 이 편지가 날개를 달 수 있을까.

J, 어서 손을 내밀어다오, 더 늦기 전에.




* 친구와 종교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 후, 놀랍도록 차갑게 변했던 그녀의 얼굴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던 날에 쓴 편지가 서랍에 간직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나와 언어는 달라도 지향점이 같은 것 같다면서 안부를 물어와 터질 듯한 기쁨으로 그저 말없이 수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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