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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고집 Aug 28. 2023

일상으로의 초대에 응하다

네가 날 볼 때마다 난 내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져


"난 내가 말할 때 귀 기울이는 너의 표정이 좋아. 내 말이라면 어떤 거짓 허풍도 믿을 것 같은 그런 진지한 얼굴. 네가 날 볼 때마다 난 내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져. 네가 날 믿는 동안엔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내게로 와 줘, 내 생활 속으로.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새로울 거야.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해가 저물면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대며 그날의 일과 주변일들을 얘기하다 조용히 잠들고 싶어."

  -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일상으로의 초대'는, 1997년 넥스트 활동을 중단한 후 영국으로 떠났던 신해철이 1998년 현지에서 발표한 3집에서 유일하게 히트한 곡이다. 내가 이 곡을 알게 된 것은 2016년 4월 MBC 「복면가왕」을 통해서였다.  ‘우리 동네 음악대장’으로 출연한 국카스텐의 리드 보컬 하현우가 신해철을 오마주 하며 불러 가왕 타이틀 방어전에 성공했던 때였다.


하현우가 나지막한 저음으로 읇조리며 들려준 이 곡, 일상으로의 초대는 가슴에 화살이 꽂히는 듯한 아픔과 각성 주었다. 그날 이후 이 곡을 얼마나 집중해서 들었던가. 집에서 시청역까지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시립미술관을 지나는 정동 거리에서, 잠들기 전 잠자리에서 한 시도 놓치지 않으려고 이어폰을 쥐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스트레스는 좋아하는 음악을 귀에 울리도록 크게 듣는 것으로 풀어왔던 탓인지 유난했던 그해 유월쯤 되니 귀에 이상이 왔다. 이어폰은 물론 전화기조차 귀에 댈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무엇이 이렇게까지 나를 흔들어 놓았을까. 어떻게 신해철은 그토록 진정성 있고 아름다운 노랫말을 쓸 수 있었을까.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던 영국이었기에 가능했을까.  그 당시 나는 사이버대학 한국어과에서 한국어교원자격증을 따기 위해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그때 내게 생소하고도 특별하게 와닿았던 강의가 바로 '현대한국의 일상문화'였다. 그리고 거기서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과 마주쳤다.


'일상'은 그 반복성과 지속성에 의해 신선함이 없고 비루하고 저속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반복성과 지속성으로 인해 집단의 기억 속에 저장되고 일종의 버릇이나 사회적으로 체질화되어 아비투스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포도주보다 소주를 좋아하고 파스타보다 라면을 즐기는 것, 산지에서 자라난 아이와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와는 감정의 지평이 달라진다는 것과, 각 가정이나 지역별로 문화가 다른 것도 모두 비투스의 산물이다. 여기서 아비투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아비투스는 특정한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향이나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 체계를 의미하는 프랑스 단어로,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행위를 의미한다.'


그 반복성과 지속성이 '길들이기'의 효과를 만들어내고, 습관성과 예속성이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에게도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내면화된 성향체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일상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바꿔 말하면 일상을 달리하는 삶은 점차 커다란 문화적 감정적 차이를 가져올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격차는 각도를 달리하는 열차의 레일처럼 무한정 벌어질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까닭에 일상이라는 화두를 안고 끊임없이 고뇌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남편과 함께 연로한 어머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가지 못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서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마치 자유를 버리고 감옥행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얼마나 서울을 사랑하는지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울에 남을 당위성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돈을 버는 것이 더 이상 내게 만족감을 주진 못했다. 남편이 서울에 올라오면 하룻밤도 아파트에서 지내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답답하다고 했다. 점점 그는 이질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그 노래가 내게 다가왔다.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차마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그가 내게 고백하듯 말하는 것 같았다. 충격이라고 할까. 가슴을 찌르는 듯 아파왔다. 들으면 들을수록 나를 뒤흔들어 놓았고, 결국 나는 사표를 내고 집안 곳곳을 청소한 후,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짐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2016년 7월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가슴 벅찬 설렘과 기쁨에 젖는다. 한강대교를 지나며 출렁이는 한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로수 늘어선 아스팔트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눈물겹다. 하지만 나 역시 이젠 아파트 주방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부엌문을 열면 텃밭이 푸르게 펼쳐져있고 싱싱하게 익은 오이와 호박,  청양고추와 대파를 뽑아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오이냉국을 준비하고, 진한 깻잎향을 맡으며 갓 따온 깻잎을 양념장에 재서 바로 먹는 즐거움은 놓치기 아까운 일상이다. 그와 함께 풀을 깎고 꽃을 심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같이 웃고 일상을 공유하는 소중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일상으로의 초대는 그 후 나의 인생곡이 되었다.





"일상생활 속에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본질이 있고 의미가 있다. 그것을 등한시하면 진정한 행복도 평화도 없다. 아무리 화려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도 활기차게 그리고 착실하게 하루하루, 가치를 창조하는 인생은 행복하다."

- 이케다 다이사쿠, <여성에게 드리는 글 365일>



https://youtu.be/52N6pmiHu3k?si=G6eNmKO5LS6eDuz7

객석 가득 떼창이 울려 퍼지던 신해철의 라이브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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