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다운 고집 Aug 10. 2023

서(恕)를 알다

종신토록 행해야 할 한 가지


자공이 물었다.

"한 마디 말로 종신토록 행할 말이 있습니까?"

이에 공자가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恕) 일 것이다. -논어, 제15 위령공 


논어를 읽다가 자꾸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문득 부산에 계신 여고시절의 선생님, 대학 강단에서 중국사를 가르치시고 많은 저서와 역서를 내신 선생님이 생각났다. 내년이면 팔순을 맞이하시는데도 여전히 강연 준비에 바쁘시다. 선생님의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선생님, 유월도 벌써 중순이네요. 뻐꾸기 우는 계절입니다.

요즘 논어를 읽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 읽으니 예전과는 달리 아프게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런데 한 단어의 번역에 계속 시선이 머무네요. 제 생각대로라면 다르게 번역할 것 같아 선생님께 여쭙고 싶었어요. 다음 부분입니다.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其所不欲 勿施於人

자공이 물었다.

"한 마디 말로 종신토록 행할 말이 있습니까?"

이에 공자가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일 것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한다."


왜 종신토록 행해야 할 것이 하필이면 ‘서’일까,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과 '서'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머물다가 무언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닌 지 찾게 되었어요. 서(恕) 에는 용서라는 뜻 외에도 인자, 사랑, 어짊, 남의 처지에 서서 동정하는 마음 등의 뜻이 있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써 보았습니다.

"그것은 나와 같이 남을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서(恕)를 '나와 같이 남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쓰고 이해해도 될까요?"

잠시 후 선생님의 답글이 올라왔다. 논어의 목차 제1편 학이(學而)부터 제20편 요왈(堯曰) 까지를 상세히 나열하시고 그중 어느 편인지 물으셨다. 제15편 위령공(衛靈公)인데 몇 번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고 말씀드렸더니 바쁘신 와중에도 직접 찾아내 답을 주셨다.

"15장 23번이네... 네가 번역하고 싶은 대로 하면 맞다. 서(恕) 자를 보면 마음이 같다는 것이 아니냐. 한자를 잘 새겨봐. 같을 여(如) 밑에 마음 심(心)이니까 남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뜻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말한다. 즉, 서는 덕의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단다."

아, 그렇구나.... 서(恕)에는 마음이 같다, 마음을 같게 하다는 뜻이 숨어있구나! 그 순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마음의 벽이 쌓여 있던 시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3년 전 나는 서울에서 짐을 싸서 시골로 내려왔다. 아들과 딸이 독립하게 되면서 더 이상 일찌감치 귀농한 남편과 떨어져 살고 싶지 않았고, 기력이 없으신 구순의 홀어머니 봉양에 힘겨워하는 남편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 같은 공간에서 숨 쉬며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멀리 떨어져 살 때는 순박하고 성품이 훌륭하신 분이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는 시어머니는 약간의 치매가 있는 고집불통의 노인이었다. 나는 본 적도 없는 그릇이든 옷이든 찾다가 없으면 모두 내가 버렸다고 탓하셨고 심지어 돈이 없어졌다며 나를 의심하실 땐 가슴이 쓰라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위험하다고 아무리 말려도 비탈진 밭두렁에 매달려 풀을 뽑거나 산기슭을 헤치며 낙엽들을 쓸어 담느라 몸을 다쳐도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어느 여름날엔 몰래 밭일을 하시곤 기운이 없어 밤에 변을 보러 일어나지 못해 뒤척이느라 방안 곳곳에 흔적을 남겨 악취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비위가 약한 나는 밥을 먹는 것조차 힘들어 그간 어머니는 몸무게가 5kg이 늘었지만 나는 7kg이 빠졌다.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음에 짜증을 내시며, 남편과 한 편이 되어 밭일을 못하게 한다고 오히려 나를 원망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도대체 왜 저러실까, 내가 어머니라면 저렇게 살진 않을 텐데 라는 마음이 눈처럼 쌓여만 갔다. 급기야 가슴이 답답해 숨을 쉬기조차 힘들어 병원을 찾았다. 위내시경을 해보고 의사의 권유로 복부 초음파를 찍어보기도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결국 의사가 우울증 약을 처방해 주겠다는 말에 놀라서 황급히 병원을 나와 버렸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선배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 "이 짐이 아니면 저 짐이 있다"는 말이 잠시 진통제가 되어주었을 뿐이다.


조선시대 신흠은 ‘모든 병은 다 고칠 수 있지만, 사람이 속된 병은 고치기 어렵다. 속된 병을 고치는 데는 오직 책이 있을 뿐이다 ‘라고 했기에 좋아하는 책 읽기에 다시 몰두했다. 덮어두었던 독서록을 펼치고 간절함을 담아, 예전처럼 알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실천하기 위한 독서를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협심증 환자가 응급 시 니트로글리세린을 입에 넣어 순식간에 막힌 혈관을 흐르게 하듯 나를 위한 처방을 찾고 있었는데, 오늘 논어를 읽다가 바로 그 니트로글리세린을 찾은 것이었다.


공자가 평생토록 실천해야 할 한 마디가 서(恕)라 했는데, 나는 어머니와 마음을 같게 하려는 노력을 지난 3년간 얼마만큼 해왔는가. 인간은 누구나 나이 들면 병들고 늙어가는 것인데 나는 저렇게 늙어가지 않으리라고, 늙어도 추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석존이 지적한 젊음의 오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도 구순이 되면 어머니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집착하고 더 고집스러울 수 있으리라고 왜 생각지 않는가. 내 마음도 어머니와 같으리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그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서(恕)라는 한 마디는 평생토록 행해야 할 지침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느꼈다. 뜨겁게 기쁨이 차오르면서 내 마음속의 빙벽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선생님, 서(恕)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알게 되니 너무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종신토록 행해야 할 한 마디로 삼겠습니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용서라는 말이 특별하게 느껴지네요."  

곧이어 선생님의 답글이 올라왔다.

"그래.... 나도 용서할 서(恕) 자가 내 마음과 같다는 뜻풀이에 감동했단다.... 그러니 용서의 진정한 뜻을 알게 했구나."라고 하시며 한자의 뜻풀이가 다양하고 오묘하기가 이를 데 없음을 배워가면서 점점 느낀다고 하셨다.




이전 14화 일상으로의 초대에 응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