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앙상한 가지들만 남긴 채 죽은 나무들에게 시선이 오래 머무는 건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여름 끝에서 가을을 오매불망하기 때문이겠지요. 너무도 간절히 선선한 계절을 기다린 후유증 때문에 헛것이 보이나 했습니다. 한라산 영실 탐방로에 함박꽃나무 꽃이 피었거든요. 봄꽃이 어쩌다 더운 여름 끝자락에 다시 오셨을까요? 봄의 그것보다는 조금 작아 보이지만 군더더기 하나 없는 꽃술과 하얀 꽃잎에 발이 묶인 채 잠시 계절을 잊어봅니다.
무더위에 시들해가는 호장근 잎에는 상아잎벌레 무리들이 악착같이 매달려 있고, 산호랑나비, 작은멋쟁이나비, 줄점팔랑나비는 진분홍색 꽃꿀을 먹느라 신이 났습니다. 꽃이 아닌 이파리 사이로 주둥이를 꽂은 먹그늘나비는 무얼 먹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더위를 핑계로 탐구심을 포기했습니다. 아니 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조사를 끝내야 하기에 더 궁금해하지 말기로 했습니다.(왜 변명거리를 찾고 있는 거지?)
문득 탐방로 바닥에서 화끈한 열기가 다가오는 듯해 아래를 찬찬히 훑어보니 은점표범나비 한 쌍이 충생(蟲生) 최대 거사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 넓고 넓은 산중에 하필 탐방로에서 이러는 건지 참. 자주 염탐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기에 사진 몇 컷 찍어두고는 탐방로를 벗어나기로 합니다. 발소리에 놀라 거사를 그르칠까 노심초사하면서.......
함박꽃나무의 꽃을 만난 것에 이어 귀하디 귀한 나그네 나비를 만났습니다. 주로 해안가 마을숲이나 오름에서 보았던 남색물결부전나비가 오름샘 근처 곰취 꽃에서 목을 축이고 있었지요. 자리를 옮길 때마다 코발트블루 빛의 윗날개가 돋보입니다. 같은 꽃에 앉은 은줄표범나비의 덩치 큰 멋스러움이 작고 왜소한 나그네 나비의 기세에 눌립니다. 화려한 광택의 날개로 지긋지긋한 여름 기세까지 눌러주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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